이미지 출처- Yes24(www.yes24.com)
* 침대와 책
* 정혜윤, 웅진 지식하우스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정혜윤'의 첫 번째 책을 봤습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그녀의 최근작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읽고, 1년도 안된 사이에 책을 두 권이나 출판했다면 분명히 뭔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과 함께, '그렇다면 첫 번째가 좋았기 때문이다'라는 나름이 판단을 가지고 구입했던 책입니다.
어느 리뷰에서 보았는데,
'가장 관능적인' ,'침대' 라는 단어를 그냥 지나칠 남자가 어디있겠느냐고 써놓았더군요.
맞습니다.
저는 그냥 지나칠 수도 없었고, 책을 집어드는 순간 손에 닿는 감촉도 좋았습니다.
분명히 사진이긴 한데, 파스텔톤으로 처리된 표지 사진(더군다나 작가의 사진이라는)은 더더욱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침대에서 자기 전에 책을 펼쳐들고, 저 역시 마찬가지이고,
침대를 이리저리 뒹굴거리면서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 만큼은
세상 안에 자신만이 있다고 여겨지는 시간,
자신만이 세계에서 본질적 자아와 만나는 순간일 것입니다.
이 책에 담겨있는 내용 또한 그러합니다.
침대 위에서 쓰여진 독서기, 혹은
책과 함께 더불어 쓰여진 일지, 단상
혹은, 침대 위에서 만난 친구에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같은
세상 만사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반응들이 스스럼없이 풀려 이야기됩니다.
하지만, 작가가 의도하였든 아니든 간에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기 보다는 다분히 자신과 친밀하거나, 작가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대상(친한 친구), 좀더 심하게 말하면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쓰여진 글들에 감정이입을 하기는 쉽지 않은 듯 합니다.
물론,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보다는 덜 난해하여 읽는 중간 중간, 작가가 어떤 사람이겠구나, 저 소설의 주인공은 내스타일인데, 정도의 느낌을 가지고 쉽게 넘어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만은 역시나, 후반부로 갈 수록 이야기는 자기 속에 빠져들어서 '독백적 다이어리'에 가까워 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두 권의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 문득 든 생각은,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책이 아니라,
'책 속의 인물' 혹은 '책 속의 문장'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던 몇 일동안 컨디션이 제멋대로였던 내 탓도 없진 않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평소 그렇게 불신하여 조심하면서 읽었던 출판사의 '리뷰'가 이 책의 내용을 더 체계적으로 잘 분석해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싶은 아침' 중에서 '니컬슨 베이커'의 <구두끈은, 왜?>의 주인공 에게는 호기심이 가던 걸요?
그는 우리 대한민국 남자들의 분신 같다. 펜트하우스 같은 잡지를 사면서 주의를 분산하려고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더 고른 적이 있고, 여자들이 옷을 입은 채 브래지어를 벗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입 냄새를 확인해보려고 일부러 기침을 하는 버릇과 혀를 닦는 버릇이 있고, ...음반 케이스나 담뱃갑의 비닐 포장을 벗기려고 가는 끈을 잡아당겼는데 비닐 포장은 그대로 있고 끈만 떨어져 나갔을 때 낙담했다. 휘파람 불기, 손가락으로 딱 소리 내기, 물구나무서기, 한 손으로 달걀 깨기, 에스컬레이터 계단 한가운데 발을 안전하게 놓기, 손으로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를 가늠하기야말로 인간의 지혜라고 생각하고, 편의점의 여직원이 작은 봉지를 꺼내더니 손목을 터는 것처럼 벌리는 것을 보고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체온계를 털 때와 같은 동작을 연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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