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 공식 포스터

이미지 출처 - 다음(www.daum.net)



When : 2008년 09월 27일 21시 30분
Where : 씨너스 (천안)
(★★★★☆)


  '이윤기'감독의 영화는 <여자, 정혜>를 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러브 토크>도 보고싶었지만 못봤고, <아주 특별한 손님>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자, 정혜>에서 보여준 '이윤기'의 독특한 시선만큼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평이 '여성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였다는 것으로 기억하는 데요. 롱테이크와 클로즈업 내지는 표정을 잡아내는 장면 들에 강한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이 영화 <멋진 하루>에서도 감독의 역량은 멋지게 발휘됩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빌려준 돈 350만원을 받기위해 1년만에 헤어진 남자친구를 찾아 '경마장'을 찾게 되는 '희수(전도연)'는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고 그다지 돈을 갚을 생각도 없는 것 같은 '병운(하정우)'을 닦달하는데요. 수중에 돈이 없는 '병운'은 또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100만원, 20만원, 10만원 이런식으로 돈을 빌려내 '희수'에게 쥐어주게 됩니다. 원치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돈을 받아야만 하는 '희수'가 마지못해 '병운'을 따라다니면서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입니다.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는 굉장히 인상적인 샷으로 시작을 합니다.
  한 커플이 차를 세워두고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화의 주제는 땅투기를 통하여 이익을 얻은 것에 대한 부러움입니다. 그들이 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경마장옆 주차장이구요. 그 사이를 스쳐지나며 '희수'가 경마장으로 들어가게되는데, 처음에는 '희수'를 따라가는 듯하던 카메라가 이내 '희수'의 불안정한 시선과 표정을 주의깊게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들의 금전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돌아가는 '경마장' 그 안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불안하게 서있는 '희수' 어쩌면 그것이 '희수'의 지금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고, 바로 영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멋진 하루> 스틸샷

<멋진 하루> 스틸샷 : 이미지 출처 - 다음(www.daum.net)


  이윽고,
  '희수'는 '병운'을 따라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운'과 직간접적으로 알고 지내는 '여자'들입니다.
  그 중에는 복부인처럼 보이는 중년의 여성도 있고,  이혼하고 딸아이와 살아가는 초등학교 동창생도 있고, '병운'이 스키강사를 할 때 제자였던 사람, 술집에서 일하는 것같은 젊은 여성, 무단결석을 해서 징계를 받고 있는 사촌 여동생, 오토바이족인 사촌형의 장애를 가진 부인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들은 하나같이 '희수'의 얼굴을 보고서는 조언 아닌 조언을 하게되는데요. 때로는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때로는 연민과 같은 감정을 가지면서도 '희수'는 그들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현재, 혹은 과거, 아니면 가까운 미래의 모습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렀던 패스트 푸드점 화장실에서 듣게 되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한효주)술집에서 일하는 여성과의 만남을 통해서 잊고 싶었던 '병운'과의 이별의 순간들을 떠올리고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멋진 하루 스틸샷

<멋진 하루> 스틸샷 : 이미지 출처 - 다음(www.daum.net)



  어쩌면 그 순간부터 '희수'가 희망했던 재회는 의미를 잃게 됩니다. 더이상 돈을 받을 의미도, 왜 왔었는지에 대한 의미도 잃어버리게 되는 거지요.
  갑자기 달라진 '희수'의 태도에 '병운'이가 핵심을 찌르는 듯한 한 마디를 더하게 되죠.
  '너 돈때문에 나 찾아온 거 맞어?', '내가 보고싶어서 랄까...'

  하나도 달라진 것 같지 않은 '병운'의 능글맞은 모습들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끝까지 '병운'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희수'는 어쩌면 '병운'이 이야기 하는 대로 겉으론 강해보이지만 약한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다급해진 상황 때문에 '병운'을 찾기는 했지만, 원래는 자신이 변심했던 탓으로 이별했었기 때문에 얼굴을 보기 민망했던 거였고, 때문에 어쩔수 없는 이유를 찾고자 '350만원'이라는 이유를 찾아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제가 오버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우리 내부에는 그런 심리가 한편에 자리잡고 있음을 부정하기엔 힘들 듯합니다.  그래서, 더 모질게 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병운을 따라다니는 동안 자신의 허물아닌 허물들이 한 꺼풀씩 벗겨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희수'는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왜 '희수'가 '병운'을 찾아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답도 점차 밝혀지게 되는 것이죠.

  때문에 영화는 거의 대부분을 '희수'의 시점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포스터를 보시면, '희수'가 선명하게 나와있는 반면, 뒤로 처진 '병운'은 희미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거라 생각되고, 영화 속에서 '병운'의 심리를 표현하는 듯한 대사나, 상황, 또는 '병운' 혼자 나오는 장면이 거의 없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희수'의 심리와 감정을 포착해내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인물에 밀착되어 있음을 보시는 분들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어쩔수 없이 롱테이크나, 인물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화면들도 다수 보여지고 어찌보면 좀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시고 관람하신다면 나름 의미있게 두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멋진 하루> 스틸샷

<멋진 하루> 스틸샷 : 이미지 출처 - 다음(www.daum.net)

  짧고도 긴 하루의 시간 속에서 미세하게 변해가는 한 사람의 심리를 아주 잘 표현해낸 '전도연'의 연기는 정말이지 정점에 올라있는 듯 멋있고,
  영화의 심심함을 상쇄해주는 역할이면서도, 실제에 있을 법한 '한없이 착하고', '완전한 낙천주의자'에다가 '귀엽기까지'하여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를 표현해낸 '하정우'의 연기 역시 만점을 주고 싶습니다.

  역시나 '여성'의 심리를 포착해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듯한 '이윤기'감독의 연출력도 최고인데요. 이번 영화에서는 '여성'의 심리를 통하여 '사랑하고 이별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이야기까지 표현해낸 듯 하여 그의 영화적 지평이 더 넓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순전히 개인적으루요...)

  이 영화에서는 음악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듯한데요, 서울을 무대로 하여 펼쳐지는 영화는 중간 중간 이동의 과정이나, 다소 늘어지는 듯한 부분들 마다 보사노바풍의 주제곡을 적절히 삽입하여 아기자기한 느낌을 잘 살려주고 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크레딧과 함께 몇 장면이 더 나오는데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정도쯤 되는 내용이 나오니까 끝까지 주의깊게 보세요.
  정확하게는 열린 결말을 취하고 있는 마지막이지만,
  제 생각으로 <멋진 하루>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에 가까운게 아닐까 합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런 거 같아요...^^)

<멋진 하루> 스틸샷

<멋진 하루> 스틸샷 : 이미지 출처 - 다음(www.daum.net)



  아무튼,
  사랑이 지나간 뒤에 다시 만난 연인들의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한 영화는 여지껏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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