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보너스로 생긴, 열정문학강좌 마지막 날.
섭섭한 마음을 안고 '한양대'로 향했다.
급한 사정으로 일정을 뒤로 미루신 탓에, '나희덕'시인을 뵙게 해주셨던, '황지우'선생님.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이셨다.
공직에 계신 바쁘신 몸이신지라,
어쩔 수 없이 예정된 시간대로만 강좌를 하실 수 없다는 말씀으로 누차 양해를 구하셨다.

나에겐 '황지우'하면 떠오르는 시가 두 편 있었는데,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두 편의 시가 바로 그것이고,
 나는 그 중에도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너무 좋았다. 여튼,

강의가 시작되자 '시의 희롱'이라는 주제로
'한예종' 총장님 답게 직접 준비해오신 PPT를 보여주시면서 강의를 시작하셨다.


먼저 보여주신 것은, '파브로 네루다'<詩>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 파블로 네루다, <詩> 中

'파블로 네루다'가 모델이 되어 만들어진,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았을 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시는 쓰려고 해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시가 다가왔을 때, 저절로 쓰여지는 것이라는 말씀.

누구에게나 시는 찾아오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순간을 잡아낼 수 없고,
마음에 '시'라는 피사체를 순간적으로 담아 낼 수 있는 '감광판'을 가진 소수의 사람만이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또한 시는 처음부터 의미를 가지고, 작가의 의도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울리고 지나 갈 때 가지는 그 '애매함', '어렴풋한', '먼지 모를', '순수한 넌센스=애매성'으로 인해 쓰여지고 의미는 나중에 뒤따라오게 된다는 말씀.
따라서 우리가 교육현장에서 가르치고 있는 방법, 다시 말해 '시'를 의미로 환원시키는 작업은 매우 잘못된 방법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여튼,
그렇게 어떤 이유에서든 처음 시에 빠지게 된 뒤에, 시가 더욱 발전하게 되는 계기는 시에 대한 좌절이며, 좌절 뒤에 새로운 발견을 통해, 그 전까지의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어야 시에 대해서 하나씩 배우는 과정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당신의 경우를 예로 들어 자세히 말씀해주셨는데,
매우 재미있는 예화였으나 여기서는 생략.

그렇게 발견한 시,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시'
우선, '소리'라는 것.
우리말이 가진 울림은 매우 적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서구 유럽의 시들, <일리아드>에서부터 <신곡>을 거쳐, '릴케'까지 이어지는 시들의 리듬과 운율과 강세와 음운들을 일일이 열거하시면서 시가 하나의 구조물, 건축물과 비슷할 정도의 고도의 계산과 압축적 표현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설명하셨고,

두 번째, '미당'<冬天>을 예로 들어
시가 상상력과 메타포를 통한 창조력의 산물임을,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선생님의 단정적이면서도 느릿한, 그리고 단어를 고르는 듯한 말씀을 듣다보니, 얼마나 시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계시고,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시고 계신지가 느껴져서 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나름 문인으로서의 자유로운 모습(강의실에서 담배를 태우시거나)도 보여주셨지만, 한 편에 배어있는 학자로서의 면모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강의 중간 중간 당신의 이야기를 하실 때에는 얼마나 유쾌하고 수줍어 하면서 말씀을 아끼시는지 나중에는 조금 귀엽다고 느낄 정도였다.

내가 좋아했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창작배경을 설명해주실 때에는 정말이지, 무릅을 치면서 웃을 정도였는데,

당시 80년도에 수배를 받아 여기저기를 떠도시는 동안 잠시 중앙일보 도서관에 은신하고 계셨는데, 알고 지내던 여성잡지의 기자가 빵꾸난 지면을 채우고자 부탁한 것을 볼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에 5분 정도 걸려 완성한 것이라고...
그런데, 그 시가 의도하지 않게 라디오 방송을 타고 유명해져버린 탓에, 굉장히 부끄럽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 정도였던 시라고 하셨다. 
물론, 후에 어떤 계기에 의해서 이미 발표된 이상 시의 운명을 당신이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런 생각을 거두셨다고 말씀하셨지만,

당시 선생님께서 진짜 기다리고 기다리던 것은,
사모님이 오해하셨듯, 어떤 '연인'도 아니고,
선생님이 변명하신대로 '조국'도 아니었고,
도피자금을 가지고 올 후배,
'돈' 이었다는 말씀에는 정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의가 끝나고 한 선생님의 질문을 받아 당신께서 시를 창작하시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는 비록 어두웠던 시대상황 때문에 '시'라도 쓰지 않으면 안되었고, 이제는 '시'에게 갚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실 때에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시대상황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시'의 힘이 느껴져서 감동을 받았다.

열심히만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한예종'에 입학하고 싶지만,
아..
멀고도 먼
공부의 길이여...

총5회의 강좌를 마무리 하면서,
총 15시간 동안, 많이 배우고, 많이 깨닫고,
그것이 시였든, 문학이었든, 삶이었든,
아직도 많이 모자라고, 더욱 더 성숙해져야 함을 알게 되어서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설문조사를 보니,
내년에는 소설가들을 초청할 계획인가 본데,
내년에도 와야지...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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