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목요일, 강좌가 있는 날.
서둘러 일과를 마치고 오늘은 조금 일찍 안산길에 올랐다.
매번 빠듯한 시간에 도착하여 급하게 김밥 한 줄을 사먹고 강좌를 들었던 터라 오늘은 좀 여유가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왠걸.
서울외곽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해안선과 만나는 '조남'분기점에서 '안산'방향으로 갈아탔어야 하는 건데,
라디오를 들으면서 가다 지나치고 말았다..
겨우겨우 광명으로 빠져 왔던 길을 다시 돌아 한양대에 도착하니 평소와 다름 없는 시간. 흑흑...
오늘은, '황동규' 선생님의 강좌여서,
쉽지 않은 선생님의 시 탓인지 강좌를 듣기 전부터 정신적으로 매우 고양되어 있었다.
여태까지의 강좌가 모두 내 생각과는 다른 내용으로 진행되었긴 했지만, 그래도 선생님의 깊고 심오한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머리도 좀 열려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허나,
강좌를 하시는 선생님은 매우 소탈한 모습에, 너털 웃음이 매력적인 분이셨고,
여태까지 들었던 강좌 중에서 가장 문학강좌라는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로만 1시간을 채워주셨다.
훌륭한 문학은 가장 아름답게 쓰여진 문장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삶의 진실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쓰여진 것이라는 말씀.
서유럽에서 전파되어온, '허무주의', '아나키즘'이 만연하던 러시아 사회를 개탄하며 러시아 '정교회'의 힘으로 그 모두를 물리쳐야지만 러시아가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에 '허무주의'와 '아나키즘'을 비판하고자 쓰여졌던 '톨스토이'의 '악령'과 같은 소설에는 '허무주의자'와 '아나키스트'가 너무나 인간적이고 매력있는 인물들로 그려진 것이 바로 그러한 예라고 말씀하셨고,
히틀러와 같은 극단적 관념주의자들을 비판하고자 쓰여진,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역시 결말에서 '인본주의자'와 '관념주의자'의 권총대결이 그려지는데, 사람을 쏠 수 없었던 인본주의자가 허공에 대고 총을 쏴버리자, 그런 사람을 쏠 수 없었던 '관념주의자'는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자살함으로써 훨씬 의미있는 모습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바로,
'삶의 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의도와는 다르게 쓰여질 수밖에 없었던 것.
그것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말씀하셨다.
이후 6편의 자작시를 직접 낭송해주시며 시안에 담겨있는 의미라던가, 시를 창작하게된 배경, 느낌 과 같은 것들을 소상히 설명해주셨다.
중학교 때부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서울대 문리학부에 수석입학하신 엘리트.
'황순원'이라는 아버지를 둔 '시인' 아들로서의 고뇌.
음악을 너무도 사랑하여 작곡가의 길을 꿈꾸었으나, 발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길을 접으셨다는 이야기.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기인이라고 하기엔 좀 뭣한 그런 면이 수재들이 보여주는 '자기'속으로의 몰입의 결과라면, 선생님은 그런 면을 자신에 맞게 잘 받아들이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린시절, 자신이 만약 작곡가가 된다면 '베토벤' 정도의 작곡가는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베토벤'의 나이만큼은 살아야겠다 생각하셨는데, 지금은 그 나이보다 10년은 넘게 살아서 '덤'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
사람이 자기 몸을 너무 아끼면 큰일을 할 수 없고, 작은 일도 제대로 못하게 된다는 말씀들이 좋았다.
강의를 듣고 나오며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선생님의 언변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이야기가 맴돌았던 것에 아쉬움을 느껴고,
열정적으로 강의하시고, 끊임없이 창작하시는 모습이 매우 모범적이었으나,
'죽음'이라든지, '삶의 고통'이라든지 를 모두 받아들이고
'쓰리고 아픈것은 그냥 쓰리고 아픈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은
한 편으로 봤을 땐, 삶의 단순한 진리이면서도 깨닫기 어려운 진리를 얻었다고 볼 수 도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수재였고, 유명한 아버지를 두었고,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았던 생활에서 가질 수 있었던 타고난 긍정적 태도가 영향을 미쳤던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해보았다.
당연히 나에게는 선생님의 문학적 업적이라던가 그분의 생애라던가, 시의 가치에 대해서 정당한 비판을 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하다는 판단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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