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강좌를 들으러 갈 생각에 혼자 설렜다.
평소와 달리 주문해 놓은 책을 기다리지도 않았고,
수업시간도 지겹지 않았다.

빨리빨리 시간이 흘러가서 오후 5시가 되면,
칼 퇴근으로 손도장을 찍고
한양대로 가서 '이성부' 시인을 만날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그렇게 서둘러 찾아간 안산길.
200석 가량 되는 강의실이 꽉차있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배우고자, 지혜를 얻고자, 말씀을 듣고자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제껏 혼자서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부딪혀야하는 거고, 그게 젊다는 거라는 생각.
아직도 젊음은 한창인데 말이다..

'이성부'시인은,
중앙일간지 기자였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하셨고, 해맑으셨고, 다소 수줍어하시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문학과,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산'이 가지는 의미를 조근조근히 말씀하셨다.

강연 내내, 자신이 말주변이 부족하여 재미없는 강좌가 될 것임을 강조하셨는데,
아직도 컴퓨터와 친하지 않아서, 자필로 마련하셨다는 원고지 65매 분량의 원고를 대부분 보지 않고 강연하시는 모습에,
말보다 중요한 건 진실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하신 말씀들 중에 기억에 남는 건,

당신의 초기 시들을 '민중시'라고 분류하는데, 자신은 한 번도 '민중시'라는 것을 써본 적은 없고, 다만 '서정시'일 뿐이라는 말씀.

수업시간에 <벼>를 가르칠 때, '민중들의 연대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하면서, 미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또,
'산맥'이란 개념은 일본인들이 지하에 묻힌 '광맥'을 위주로 그어 놓은 개념일 뿐, 우리 나라 산의 지형과는 맞지 않는 다는 것.

또,
산을 오르는 일의 힘겨움은 조만간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편안함으로 오고,
내려가는 일의 편안함은 또 머지않아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이라는 말씀.
그것은 되풀이되는 세상의 이치와 같은 거라는 말씀.

대학교 때, 지리산을 횡단하며 느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고,
내가 말로 미처 다하지 못했던 감정을 시로써 표현해주시는 '이성부'시인의 말씀에 깊이 공감했다.

다음 주는 '나희덕'시인..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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