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마트이야기 2편입니다.

  음..
  미리 말씀드리지만, 어제와는 다른 마트에요.
  어젠 'E마트'를 갔었고, 오늘은 '롯데마트'에 갔죠. (오해마시길,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사건이.. 와 같은 생각은 절대 안했음)

  오늘부터 중간고사를 치르느라 일찍 끝났답니다.
  원래 2시면 퇴근해도 되는 건데, 내일 시험 준비하랴, 주관식 채점하랴, 어쩌구 저쩌구 하다보면, 3시를 훌쩍 넘기게 됩니다.
그래서 4시쯤 학교에서 나왔습니다.
  일찍 끝난김에 부모님집에 가서 저녁이나 축내고 올까.. 하다가,
  저번주 토요일에 갔었기 때문에 그냥 재끼기로 했습니다. 너무 자주가면 희소성이 줄어드니까.. 호호..
  그러고 나니, 역시 저녁이 문제가 되더군요.

  어제 몇 가지 반찬을 사놓긴 했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 찌개나 국이나 뭐 떠먹을 것이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앞으로 며칠 간은 일찍 끝날 테니까, 좀 많이 해놓아도 상해서 버리는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마트로~

  식품관을 돌아다니면서 찌개거리를 찾았어요.
  마침 집에 조금 맛이 간 김치가 있으니까, 김치찌개를 끓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참치는 집에 있으니까 됐고, 마늘 다진 것도 있고, 왠만한 양념은 다 있으니까, 두부랑, 파 조금만 사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 밖에 반찬이 될만한 것들을 두리번 거리다가 '훈제 연어'가 있는 코너에 가게되었어요.
  매번 마트에 갈 때마다 '훈제 연어'를 들었다가 놨다가 하거든요.
  뷔페 같은 곳에 가면 꼭 빼놓지 않고 먹을 정도로 좋아하긴 하는데, 이걸 가져다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오늘도 들었다가 놨다가.. '한 번 도전을 해봐?'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다음에 정확히 필요한 것들을 알아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역시 내려놨습니다.

  그러고 돌아나오는데, 마침 시금치가 보이더군요.

  '오~ 시금치 된장국. 맛있겠는데?'

  결국, 김치찌개를 포기하고 시금치 된장국으로 메뉴를 변경하였습니다. 비교적 간단한 요리니까요. 정식으로 만들려면 멸치로 육수도 만들고 집된장도 풀고 어쩌구 해야겠지만, 제게 그런건 사치죠.
  생각해보니 집에 사두었던 양념 된장이 있었어요. 요샌 참 세상이 편리하죠. 그냥 끓는 물에 잘 풀기만하면 어느 정도의 맛은 내주니까요.
  그래서, 시금치 구입.
  대파도 한 단 사야했는데, 안깐 대파는 너무 많아서 역시 썩혀버릴 것 같아 조금 비싸지만 양이 적은 깐대파로 구입.
  옆에 보니, 느타리 버섯이 있어서 나중에 된장찌개나 라면에 넣어먹으면 되겠다 싶어서 그것도 구입.
  김치찌개에 넣어 먹을 두부도 구입.
  김도 한 봉지 구입.. 그렇게 사고서 계산을 하려고 보니까..글쎄, 생각지도 못하고 들른 길이라, 장바구니가 없더군요.

  장바구니가 없다니 큰일이었습니다. 이제 마트에서는 더이상 1회용 봉투를 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자칫하다가는 계산대 앞에서 포장하는 곳 까지 볼썽사납게 몇 번을 종종거리고 옮겨다녀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어쩔수 있습니까, 어떻게 들어봐야죠..
  계산을 마치고 꾸역꾸역 챙겨 드니까 어찌어찌 들 수는 있었는데, 가슴 한 가득 찬거리를 안은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오늘 그래도 시험 첫날이라고, 나름 예의를 갖춘다고 벨벳 자켓에, 가디건까지 입고, 바이올렛색 타이에 구두까지 신고 갔거든요...
  아마도 누가 유심히 봤다면, 쟤 뭐하는 건가 싶었을 것 같아요.. ㅠㅠ

  여튼, 차에 싣고 집으로 와서 열심히 시금치를 다듬었습니다. 시금치를 다듬고 파를 썰고,,그리고 된장을 물에 풀려고 보니까...아뿔싸...

  제가 가지고 있는 된장은 그냥 양념된장이 아니라, 찌개용 된장이더군요...
  아무래도 시금치 된장국은 좀 맑은 된장 국물에 구수한 맛이 나야하는 거지, 찌개처럼 걸죽한 맛이 나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양을 조금 적게 넣어볼까...'

  물을 올리고 된장을 한 숟갈 떠서 물에 푸는데.. ㅠㅠ
  국물 색깔이 어찌나 먹음직스러운 찌개색인지...밝은 황톳빛이 나야할 국물이 진한 고동색의 찌개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하지만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죠. 어찌됐든 된장은 된장이고 저는 저녁을 먹어야만 하니까요..
  마저 다 풀고 끓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국물이 끓기 시작하자, 미리 다듬어놓았던 시금치들을 한 가득 넣었죠. 어차피 숨이 죽으면 얼마 안될테니까.. 그러고도 사온 시금치는 반 이상이 남았어요. 데쳐서 무칠까..하다가 그냥 다음 기회에 먹기로 하고 넣어 두었습니다. 시금치가 한소끔 끓고 난 뒤에는, 다진 마늘을 반 숟갈 정도 넣고, 또 한소끔 끓인 후에 대파를 넣어서 마무리 했습니다..
  그리고 떠 먹어보니.. 역시나, 그윽히 퍼지는 된장찌개 맛...
  결국은 물을 좀더 넣어서 국물의 양을 늘렸더니, 색깔도 옅어지고, 맛도 좀 먹을만해 지는 선으로 타협을 보았습니다..

  '자, 이제 밥을 먹어볼까?'

  하고 생각을 했는데, 뭔가가 빠져있었습니다..
  처음엔 몰랐죠..
 
  '반찬들도 다 덜어서 담아두었고, 찌개도 준비했고, 마실 물도 떴는데, 뭐가 빠진 거지?'

  네... 밥...밥이요..
  밥이 없었습니다. ㅠㅠ

  어제 아침에 마지막으로 밥을 먹고, 나중에 해야지.. 하다가 까먹어 버린 겁니다.. ㅠㅠ
  한심한 기억력을 탓하며 또 열심히 밥을 했습니다.
  이미 국도 아니고 찌개도 아닌 그것은 식어가고 있었지만, 밥은 있어야 하니까요..
  쌀을 씻고, 안치고, 취사 버튼을 누르고, 아쉬운 마음에 사온 '새우깡'을 한 봉지 뜯어서 먹었습니다. 하지만 허기진 배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기다리던 밥이 다 되었다는 알림소리.

  '음.... 근데, 이 밥솥이 칙칙, 칙칙, 하는 소리를 내야 하는 건데, 그게 들렸나? 못들었나?'

  조심스레 밥솥을 열어 봤습니다. 보기엔 아주 먹음직스럽더군요.

  '괜한 생각이었나 보다, 못 듣고 지나갔나부지..'

  밥을 뜰려고, 주걱을 밥에 꽂았는데, 바로 그 순간 느껴지는 불길한 손끝의 떨림..
  밥이 설 익었더라구요.. ㅠㅠ

  아.. 이상합니다. 제가 예전부터 밥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었거든요. 압력밥솥으로도, 전기밥솥으로도 아님 야외에 나갔을 때 코펠에 하는 밥도 제가 도맡아 하다시피 했었습니다.
  그런데, 왜인지 지금 우리집에 있는 밥솥은 저와 궁합이 맞지 않는 것 같아요..벌써 몇 번째인지....

  어쩔 수 없이 뚜껑을 다시 닫고, 재가열을 눌러서 밥이 먹을만 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5분 쯤 지나니 다되었다는 소리가 나더군요.

  잘 안되었으면 어떻게 하나, 밥도 많이 했는데,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레 밥을 열어봤습니다.
  다행히도 밥 맛은 좀 이상했지만, 먹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밥을 먹을 수 있었죠...


  밥을 다 먹고, 설겆이을 마치고, 음식물쓰레기까지 모두 처리하고 난 다음에 이 자리에 앉은 지금 시간이 7시 30분쯤.
  제가 5시 30분부터 준비를 하기 시작한 거니까, 2시간 남짓이 걸린 거네요.
  참 어머니들을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저혼자 좌충우돌 하면서 해먹는 것도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온 집안 식구들의 밥을, 그것도 삼시 세끼를 준비하고, 정리하고 하시니까요...

  저도 조금 더 지나면, 밥을 준비하는 시간이 줄어들까요?
  허긴, 내일은 그냥 데워서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군요..

  흑...살림은 어려워ㅠㅠ...


 
사진사진

상기 이미지는 연출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Trackback Address >> http://cha2.co.kr/trackback/34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애독자j 2010/10/04 20:4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노래는 재주소년인데..오빠는 비재주청년인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래서 언제 시집갑니까?????
    에공공공공

    • 차이와결여 2010/10/04 20:56  address  modify / delete

      그나마 내 재주정도 되니까 찌개용 된장으로 국도 끓이고, 설익은 밥도 먹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험..ㅠㅠ

      그래도, 집에서 밥을 해먹었다는 것에 의의를 둡니다..ㅠ

  2. 실버제로 2010/10/05 03:1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식단이 참으로 부럽군요 ㅠㅠ
    다 맛있게 보이는걸요~~~

    • 차이와결여 2010/10/05 07:01  address  modify / delete

      헤헤헤... 그런가요?

      저 중에 제가 만든 건 국 한 가지 밖에 없답니다..

      나머지는 다 마트에서 사온 반찬..ㅠㅠ

  3. 괜찮아 2010/10/05 21:2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비슷한 경험이 있는 저에게는 남일같지 않은 포스팅이예요.
    음... 가끔 집밥 해 먹을 때 언젠가부터 대략 시간을 정해놓고 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해요.
    가령 6시에 밥을 하기 시작했다면 최대 7시 반까지 설거지 완료하고 침대에 눕기 미션. ㅎㅎ

  4. 성* 2010/10/06 10:4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결혼해서 처음 밥할때 2시간 걸려서 했던 때가 생각나네요...
    결과물은 너무나 초라했지만 정성만은 대단했었는데...
    그래도 저 밥상 보니 결혼하면 사랑 많이 받겠어요... ㅋㅋ
    저랑 친한 어떤 분(?)은 절대 상상조차 못할 밥상입니다...

    저두 저 노래 너무 좋아해요...

    • 차이와결여 2010/10/06 21:03  address  modify / delete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요..
      저는 그 친한 어떤 분(?)보다 다른 것을 못하겠지요..

      그나저나, 결혼하면 제가 사랑을 받을까요?? ㅋㅋ
      난 반찬투정하지 않는 남자가 되어야겠다고 10년 전에 다짐을 했었다는 사실..두둥!!

      아.. 진짜.. 나는 완벽한 신랑감인데 말야.. ㅋㅋㅋㅋㅋ

  5. clovis 2010/10/06 18:1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렇게 공감하긴 또 오랫만 입니다..전 밥 물 조절을 못 해요 ㅠㅜ(압력밥솥이 아니라서요....)식단 부럽습니다! 전 귀찮아서 밥 김치 끝 이거든요...

    • 차이와결여 2010/10/06 21:02  address  modify / delete

      아.. 이런.
      저는 밥 잘했는데, 진짜로 잘했는데, 아.. 밥을 해드릴 수도 없고..ㅠㅠ
      'clovis'님도 혼자 사시는 거에요??? 오잉?

    • clovis 2010/10/06 23:46  address  modify / delete

      아뇨..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삽니다.^^;;그런데 제가 제일 일찍 일어나니까요...

    • 차이와결여 2010/10/07 09:50  address  modify / delete

      ㅎㅎㅎ

      상황상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저보다 더 낮은(?) 생활을 영유하시는 듯한 이 오묘한 느낌은 뭘까요..ㅋㅋ

      아무리 그래도, 영양상으로 볼 땐, 저보다 훨씬 좋은 생활일 거에요...
      저게.. 저래 봬도, 살로 안 가는 식단이랍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