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가자미'와 '전광수커피'에서...
어제 밤에 포스트를 올리고 나서,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바로 옆에 있던 CD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 책장에는 작게 CD장이 달려 있는데요. 책들은 이사했을 때 작가별, 내용별로 나름 분류를 해서 꽂아 놓았었고, 얼마 안되는 CD들은 그냥 마구 꽂아 놓았었지요.
너무나 대중없이 꽂혀 있는 탓에 정작 듣고 싶은 CD를 찾느라 한참을 헤매기도 하고, 없어진 줄 알고 포기하고 있던 CD가 '메롱'하고 쳐다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정리를 해야겠다고 맘은 먹고 있었는데, 제가 또 한 번 손을 대면 대충하지는 못하거든요. 다 뽑아서 내용을 확인하고 정확히 CD가 들어 있는지도 열어봐야하고, 나라별로, 음악 종류별로...그렇게 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첨에 잘 꽂아놓고, 잘 관리를 하면 될텐데... 이상하게 CD들은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여튼,
생각만 하고 있던 차에 할 일도 없고, 한 번 정리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봤자 몇 장 되지 않았어요. 한 5~60장 정도 될라나...차에도 한 열 댓장 있으니까...합치면 한 7~80장 정도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손을 대놓고 보니, 정식 발매된 음반보다 제가 구워서 만들거나, 누군가 구워서 줬던 것들이 더욱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ㅠㅠ(나중에 다 채워놓고 보니, 정발 음반만 100장..ㅠㅠ)
그렇게 CD들을 꺼내놓고 분류를 하다 보니, 여기 저기서 옛 기억들이 불쑥불쑥 튀어 나오더군요.
'오~ 이것은 누군가가 선물해줬던 거네... 한 번 들어볼까?'
'이야.. 이 CD가 여기 있었네. 풋.. 제목이 '내려놓다'가 뭐야...그래서 뭘 내려놓은 건데..ㅋㅋ'
'이건 내가 사달라고 졸랐던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
하나 하나 CD 케이스를 열어보고, 그 안에 적혀 있는 노래들의 제목을 보고, 누군가가 적어 놓은 글들을 읽어보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별로 이지만, 예전에는 기억력이 참 좋았더랬어요.
거짓말 안 보태고, 오래간만에 들른 커피숍에 앉아도, 무슨 날 누구와 어느 자리에 앉아서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 그날 옷은 무엇을 입었었는지, 불쑥불쑥 떠 올라서 힘들곤 했지요.
물론, 그 땐 나이도 어렸고, 만났던 사람이 한 둘 밖에 없었고, 그 사람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진짜 이유는 그 사람들을 모두 버리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 놓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땐, 옛 기억이 떠오르면 가슴이 아팠거든요.
자꾸 잘못했던 일들만 떠오르고, 다음에는 같은 잘못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아쉬움만 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당연하게도
이제 기억이 잘 나지도 않고, 언제 헤어진 기억이건, 어떤 기억이 떠오르건 더이상 가슴이 아프진 않더라구요.
허긴, 이 나이먹고 그런 것에 가슴아프거나 흔들리는 것도 말이 안되긴 하지만...
여튼, 우연히 CD들을 정리하다가, 꺼내든 노래를 하나 틀어 놓고, 이게 도대체 누가 나에게 선물한 것인지 헷깔려하다가 CD의 발매일자를 확인하고선 거꾸로 기억을 더듬어서 그 누군지를 기억해내는 제모습을 보면서 왠지 불경한 행동을 한 것 처럼 무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게 남아 있는 기억에는, 예전의 풍경과 정황과 공간을 떠다녔던 몇 마디의 말소리들은 남아있지만, 정작 그 풍경 속에 있는 인물은 저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때, 제 옆에서 저와 마음을 나누었을 그 사람은 이제는 더이상 실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희밋한 이미지로만 남아서 기억의 공간을 채우고 있더라구요.
세상을 다 줄 것만 같았던, 그때의 내 마음이나, 모든 것을 다 얻은 것만 같았던 그 사람이나, 이렇게 한 발짝만 물러나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잡을 수 없는 이미지로만 남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다만, 따스했다는 기억 정도일 뿐이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그 기억들이, CD에 담겨 있는 이미지들이 소중하게만 느껴지더군요.
더는, 나아질 것도 없고, 나빠질 것도 없는, 그냥 그대로 박제가 되어 굳어버릴 기억들..
그리고 시간에 조금씩 닳아가고, 옅어져 갈 따스한 느낌들...
더이상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풍경들...
어째, 쓰다보니, 요새 비슷한 이야기만 잔뜩 올리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한동안, 바깥을 떠돌기만 하던 내 시선이, 다시 내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네요.
다시 그런 시기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자꾸만 자꾸만 안으로 깊이 빠져드는 시선, 내 안 깊은 곳의 바닥까지 훑고 나서야 또다른 시선이 생기겠죠..
여튼, CD장은 말끔하게 정리가 되었고, 오늘 다시 새로운 식구 두 놈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거, 내 책장의 CD들도 자리잡기가 한층 뜨거워지겠습니다. 포화상태이거든요.
그리고, 어제부터 오늘까지 내내 제 입가엔 이 노래가 맴돌았답니다. :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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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감사해요.
노래 제목은 포스트 제목과 같아요.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
아마, 이 앨범이 잘 안되었을 거에요. 저도 박효신을 되게 좋아라 했었는데, 이 앨범 이후에 목소리가 좀 변한 것 같아서 안타까웠죠..
아마도, 성형으로 인한 후유증이 아닐까..(이 앨범 자켓에 보면 턱선이 엄청 브이라인 이라능...)하는 추측만 해봅니다.
여튼, 제 글이 너무 지지리궁상, 옛날만 추억하고 그러는 것 같아서 좀 죄송한 생각이 들때도 있어요.
아무래도 과거를 자꾸만 추억하면 사람이 약해지기 마련이죠.
제 생각일 뿐이지만, 왠지 하시는 일과 잘 맞지않은게 아닐까.. 하는 걱정.. 그러면서, 내 글이 뭐라고 그런 영향을 미치나..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해봅니다ㅎㅎㅎ
그저 들러서 편안히 쉬다가... 가셨음 좋겠다는 생각입니당. ^^
왠지 오늘은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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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럼 거럼, 내 CD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지.. ㅋㅋㅋ
원래 이 공간에서는 실명은 안쓰는 거여...ㅋㅋㅋㅋ 적응하도록!
저도 cd정리에 대해 계획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지 몇년째인듯 하네요.
하하...;
근데 노래가 중간에 짤리는뎁숑?
원래 여기서 끝나는 노래...?
하하하....
음.. 아엠더스트13은 너무 어려우니까, 그냥 'dust'님으로 부를게요..ㅎㅎ 그래도 되죠?
노래는 잘들리는뎁숑? 설마 짤린 노래를 올리겠어요 후후..
CD가 얼마나 많길래, 정리도 못하셨을까나요..
허긴 100장 하는데도 장난 아니더라구요.. ㅠㅠ
CD 정리는 오래전에 포기했다죠...ㅎㅎ저는 시디 선물으 받으면 뒷면에' 몇월 몇일 누가 주었음 ' 을 써놨어요.. 가끔 보면 슬플 때도 있지만 잊고 싶지는 않아서요...
우우..
여기 저보다 더한 분이 계시군요.. ㅋㅋ
저는 한 때, 책을 사면, 몇월 몇일 어디에서 샀음. 누구와함께.. 뭐 이런거 남겼었는데요..
요샌, 하도 많이 하고, 하도 인터넷에서 구입을 많이 하여서 포기했답니다...
그래도 선물 할때는 쓰긴 하는 것 같네요..
음.. 가끔 음악을 들으면 눈물나시겠는데요?
어찌.. 다시 연락은 하셨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