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저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잠에 들었습니다.
이미 계획했던 일정은 모두 마친 상태였고, 꼭 가보고 싶었던 '등대섬'은 천상 시간상 다녀올 수가 없으므로, 무의미하게 시간을 떼우기보다는 '박경리 미술관'을 찾는 것이 낫겠다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괜한 오기의 발동...)
헌데 한 가지 걸리는 것은, 통영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오미사 꿀빵'이었는데요. 이게 워낙에 인기가 좋고 찾는 사람이 많다보니, 오전이 채 지나기 전에 다 팔려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사한 바로는 '오미사 꿀빵'집도 통영시내에 한 곳, 그리고 그 아들이 분점을 낸 미륵섬에 한 곳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미륵산'분점은 전날 점심을 먹었던 근처여서 1시 정도에 가봤더니, 역시나 모두 동이 나 있었습니다. 천상 그곳까지는 갈 수 없고, 가까이 있는 시내 본점에서 맛을 봐야 하는 건데, 기찻시간에 늦지 않게 '박경리 미술관'까지 다녀오려면 첫차를 잡아타고 차질 없이 다녀와야 10~11시 경에 '오미사 꿀빵'집에 도착할 수 있는 빠듯한 일정이었기에 좀 걱정이 되었던 거죠..
여튼 여차여차 출발해서 '박경리 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좁은 왕복 2차선 도로를 레이싱을 하듯 빨리 달리는 버스로 40분여를 갔더니 한적한 시골길 한 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던 '박경리 기념관'.
관장님을 만나서 이러저런 이야기도 듣고, 실제 '박경리'선생님 묘소가 있어서 잠시 묵념도 했지요.
선생님의 명성에 비해선 소박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양지바르고 전망좋은 자리에 바다를 향해서 자리잡고 있었죠.
박경리 공원에 있는 작은 오솔길, 이 길을 걸어 가면 묘소가 나옵니다.
곱게 꽃이 놓여있는 모습과 별다를 것 없는 묘소의 모습에서 소박함이 느껴집니다.
묘소 앞에서 바라본 통영의 바닷가. 별장을 지어도 좋을 만큼, 전망은 참으로 좋습니다.
제가 분명히 국어선생이 맞긴 하지만, 아직 <토지>를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원래는 책을 한 번 잡으면 끝날 때까지 다른 것은 전혀 못보는 스타일의 독서방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시작할 엄두를 내지도 못했었지요. 지금은 독서법이 많이 바뀌어서 보통 3권 정도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보고 있긴 하지만요.. 여튼 그래서 '박경리'선생님께 대단한 존경심 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냥 큰 일을 하신 분이라는 생각 정도였지요..
그런데, 관장님에게 들은 이야기 중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박경리' 선생님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6-25전쟁으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읽고 미망인이 되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둘 만큼 연약한 분은 아니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렇게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다보니, 당시 작은 도시였던 통영 내에서는 나름 유명한 인물이 되셨나봅니다. 물론 좋은 뜻이 아니라 얌전하지 못하다, 조신하지 못하다 라는 식으로요.. 그래서 결국 '통영'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결국 '원주'에 정착을 하시고 그곳에서 많은 지원을 받으면서 창작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몇 해전, 30년 만에 고향을 방문하셨을 때, 이 기념관이 있던 자리를 둘러보시다가 나중에 낙향을 한다면 이런 곳에 작은 집을 짓고 살고 싶다고 말하신 바가 있으셔서 그 자리에 자리를 만들고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다는 이야기...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특별하달 수도 없는 이야기였긴 하지만, 그 말을 듣다보니, 선생님이 추구하신 삶의 가치가 어디로부터 연유한 것인지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기념관을 나오는 길에 맘에 드는 사진을 발견하고 셔터를 눌렀고, 또 맘에 드는 글귀를 찾아서 눌렀습니다.
저 많은 책을 다 보셨겠지요? 인자하신 모습이 가깝게 다가옵니다.
기념관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던 글귀. '존엄성은 바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것'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관람을 마치고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올라 다시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중앙시장'에 내려서 거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롯데리아'옆 골목으로 들어갔죠. 바로 '오미사 꿀빵집'이 있는 골목이었습니다. 제 앞으로도 몇 사람이 커다란 배낭을 매고 가고, 차도 그 앞에서 멈추더군요..
또 못먹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갔더니, 10상자 정도가 겨우 남아 있었습니다. 자칫했으면 그 맛을 못볼 뻔 했지요.
저는 집에 와서 먹느라 사진이 없어요. 역시 업어온 사진입니다. http://blog.naver.com/milletart/105438804
'오미사' 라는 이름은 옆 쪽에 '오미사'라는 세탁소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더군요. 본래, 제과점을 하시던 주인분께서 제과점을 그만두시고 요 빵을 만드는 작은 가게를 열었는데, 여고생들 사이에 맛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옆에 있던 세탁소의 이름을 따서 '오미사 꿀빵'이라 불렀답니다. 지금은 그 세탁소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크게 자리를 내신거죠.
여튼, '오미사 꿀빵'까지 손에 넣었으니, 점심만 잘해결하고 가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근처에 있는 '우짜'를 먹으려고 찾아갔지만, '휴가중'...
뭔가 잘 어울릴것 같으면서도, 이상할 것 같기도 한, 우동과 짜장의 조화를 꼭 맛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로 넘겨야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쯤, 또다시 비가 한 방울씩 내리기 시작해서요. 서둘러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터미널 근처에 있는 이마트 사물함에 짐을 넣어놓고, 망가진 이어폰을 새로 사고, 점심도 먹었죠. 이미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기도 했고, 시간이 여유있는 것도 아니어서 서둘러 '마산'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1시간 밖에 안되는 거리였지만, 가는 동안 어찌나 잠이 쏟아지던지요.
저는, 중 고등학교 시절 꽤 먼거리를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흔들리는 차 안에서 잠도 잘 잤고, 도착할 때 쯤이 되면 귀신같이 잘 일어나기도 했을만큼 버스에서 조는 걸 좋아했습니다. 남들은 버스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으면 어지럽다는데, 책도 잘 읽었습니다. 따스한 날, 흔들리는 차 안에서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드는 맛도 꽤 좋았었던 것 같아요.
여튼, 차를 몰고 다니면서 즐기지 못했던 '버스 안 졸기'를 하면서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말이죠...
역시.. 처음 방문한 마산도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였던 겁니다.
본래 계획을 짤 때에는 시외버스 터미널과 마산역이 불과 300m 정도의 거리밖에 안되는 걸로 나와서 쉽게 갈 생각을 했었는데요. 마산엔, '그냥 시외버스 터미널'도 있고, '남부 시외버스 터미널'도 있었던 거였어요. 거의 북쪽 끝과 남쪽 끝이더군요.. 시간이라도 여유있으면 재미삼아 시내버스를 골라타고 갔을 텐데, 기차 시간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부득이 가까운 은행에서 돈을 찾고 택시에 올라서 20분 만에 마산역 도착. 이윽고 도착한 열차에 올라 드디어 여정을 마무리 할 수가 있었네요..
오래간만에 타보는 기차는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돌아오는 길의 애틋한 마음을 달랠수 있는 멋진 노을을 준비해놓고 있더군요. 날이 길어서 기차가 대구를 거쳐 대전을 지나 평택을 지나갈 쯤에 해가 졌는데요. 남부지방엔 그렇게 비가 많이 왔는데, 중부지방은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덕분에 노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땐,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해가 저물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어요.
아직도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졸업여행이 기억나는데요. 삽교천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노오란 노을이 지는 배경으로 내가 좋아하던 아이가 자리에 앉아 있고, 저는 남는 자리가 없어서 그 애 앞에 서있었죠. 노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던 그 아이의 커트 머리와 닿을듯 말듯 평야 끝으로 넘어가던 일렁이는 해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던 그 몇 분이 아쉬운 여행의 기억과 함께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노을이 질때면 가끔씩 생각나고는 한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계속 여행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일상으로의 복귀가 압박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한 편으론 이런 애틋하고 아쉬운 마음이 또 나름대로 좋은 것도 같습니다.
아쉬웠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여행을 했다는 것이고, 열심히 걸었다는 것이고, 열심히 땀흘렸다는 것이니까요. 나쁘지 않은 여행이었다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아쉬움을 바탕으로 또 어딘가 떠날 계획을 세울 힘이 남아있다는 것이니까요.
확실히 혼자 여행을 다녀보니까 알 것 같기도 합니다.
또 혼자 다녀보니까 누구랑 같이 못다닐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러다가 나홀로여행에 중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걱정도 잠깐 해보게 되었답니다.
이상, 거칠지만 '2010 나홀로 여행기' 통영편이었습니다..
★ 통영관광정보 사이트 http://www.utour.go.kr/
; 테마여행 코스 미리보기, 숙박업소 예약,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 온라인 예약 등을 할 수 있음.
★ 통영관광공사 사이트 http://www.ttdc.co.kr/
;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 안내
★ 통영 섬 여행 안내 사이트 http://www.badaland.com/
; 통영근처 한려 수도 섬 여행 안내, 테마 여행기 소개, 바다낚시 정보
★ 통영시 버스 정보 시스템 http://bms.tongyeong.go.kr/
; 통영시 모든 시내버스의 출발 도착 시간, 정류소 안내, 코스 안내, - 박경리 기념관을 가고자한다면 필수 검색 필요!
★ 섬사랑 한솔해운 사이트 http://www.nmmd.co.kr/
; 매물도행 운항시간표, 등대섬- 소매물도 간 물길 시간표, 여객 운임안내.
반대편 창을 통해 찍은 노을, 여행의 끝자락,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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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글을 어찌나 잘쓰시는지...
'다음에 여행갈 일이 생기면 꼭 통영을 가리라!' 라고 다짐하게 되네요..ㅎㅎ
오미사꿀빵 엄청 달다면서요.. 저는 경주 무슨빵도 달아서 잘 못먹었는데.. 그래도 먹어보고싶어집니다ㅎ('차이와 결여'님이 하신 건 괜히 다 따라해보고싶은 일종의 오기?)
날씨가 쌀쌀해졌어요. 깨끗하게 여름이 마무리 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저는 자러갑니다..ㅎㅎ
칭찬 감사드려요.. 사실, 독특한 문체라 공감하시는 분이 얼마 안되실텐데.. 'clovis'님 취향에 잘 맞았나봐요.. ^^
경주 '황남빵'이 무척 달죠..근데, 제가 먹어본 '오미사 꿀빵'은 그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꼭 드셔보세요.. 통영에 가면 짝퉁 '꿀빵'도 많은데, 다른 것이 단지는 먹어보지 못해서 확인할 수는 없네요..
요샌, 비가 많이 와서 날이 선선한데, 이 비 그치고나서 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날이 선선해지고, 단풍이 들고, 하면 또 어딘가 떠나고 싶어 질텐데요.. 후후...기대하세요. 가을 무지하게 타거든요 ^^
오미사 꿀빵, 속에 팥앙금이 든 도너츠같아요. 맛도 그런 맛일까 궁금해요.
94년 엄청 더운 여름날 모로 누워 토지를 읽다 일어나면 팔이 바닥에 쩍쩍 붙었다 떨어지던 기억이 나네요. 박경리 선생님 소설은 대부분 찾아서 읽었는데 좀 시간이 지난 뒤에 또 다시 읽고 싶어요.
차이와결여님의 초등학교 시절 추억, 예뻐요. ^^
저는 여행 가도 바지런히 돌아다니지 않기 때문에 제가 직접 갔어도 저렇게 많은 걸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덕분에 통영 구경 잘 했습니다.
겉 모양은 도너츠와 비슷한데, 생각보단 앙금 밖의 겉 껍질이 얇아요. 그래서 퍽퍽하진 않은 맛이었습니다.
겉에 깨를 왜 뿌려놨을까 궁금했는데, 의외로 깨 덕분에 씹는 맛이 있더군요.
저는 아직 여유가 없는지, 한 번 맘 먹고 떠나면 많은 것을 보고 와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냥 여유롭게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답니다. 언젠간 가능해지겠죠.
하동에서 어린시절 추억이 있어서요(토지의 무대인 악양들판) 그 책이 그리 대단한 것인 줄 몰랐었어요. 그냥 동네 얘기가 나오는 거니까요. 유시민님 어느 강연 영상을 보니까 글 잘 쓰려면 토지를 반복해서 읽으라고 하더군요. 긴 이야기는...좀 숨차서, 태백산맥도 안 읽었거든요. 박경리님 통영시절 얘길 들으니 고향이 참 애증의 대상이었겠다 싶네요. 바닷가지만 경남은 경남. 그것도 서부경남. 통영 들어가기 직전 고개있죠. 그걸 기준으로 우리동네 남동네 나누기도 하고, 지역색 센 동네라는 게 떠오르네요. 잔잔한 여행 이야기 좋습니다.
요번에 가봤더니, 그 고개 전 북쪽 지역이 거의 신시가지 분위기가 나더라구요. 편의시설은 거의 그쪽에 다 위치하고 있고요. 지역색이 있는지 까지는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아마 예전 이야기라면 충분히 그랬겠다 싶기도 합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것이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