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갑니다.
오늘은 다행히 비가 쏟아내리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살짝 내리긴 했는데 겨우 옷깃을 살짝 적실 뿐이었어요.
그래도 하늘은 계속 찌뿌려있어서 먼 바다로 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섬은 날씨가 또 다를테니까요.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어제 못 먹었던 '한일 김밥'에서 충무 김밥을 먹었습니다. 어제 점심 때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더군요. 그래서 다른 곳에서 먹었었습니다. 두 김밥집의 맛을 비교하면 확실히 '한일 김밥'이 훨씬 맛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정했던대로 통영 문화 예술 탐방을 나섰습니다. '청마 유치환 기념관'을 거쳐 '대여 김춘수 유품전시관' 까지는 무난했습니다. 그런데, 힘들게 찾아갔던 '전혁림 미술관'. 4곳의 기념관 중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그 곳은 휴관이었습니다. 어제 '윤이상 기념관'을 갔을 때 월요일에 휴관한다는 것을 보고 조금 걱정되긴 했는데, 막상 휴관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무척 아쉽더군요. 더군다나 '전혁림 미술관'은 '월, 화'가 휴관이었습니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마지막 남은 '박경리 기념관'을 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박경리 기념관'까지 가는 버스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제부터 느낀 거지만 통영은 경상도라서 그런지 확실히 전라도의 땅끝마을들과는 달라서 매우 큰 도시였습니다. '박경리 기념관'은 굉장히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버스가 몇 편 되지도 않았습니다.
다행히 조금씩 해가 나기도 하는 하늘을 보면서 유람선을 타고 한산섬 '제승당'으로 향했지요. '제승당'을 둘러보고 돌아와서 내친 김에 내일로 계획되어 있던 '미륵산 케이블카'까지 탔지요. 비록 정상은 안개에 쌓여 찬란한 한려수도의 풍경을 보지 못했지만, 내일은 또 비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오늘 본 것이 잘 한 것 같아요.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어제 찾아갔다가 문이 닫혀서 먹지 못했던 <호동식당>의 복국을 먹으러 갔습니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와 비슷한 차림의 한 사람이 들어와 옆에 자리를 잡았고 또 얼마 있으니 또 다른 한 사람이 들어와 뒷 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보아하니 저와 같이 혼자의 몸으로 여행을 온 사람들이고 모두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으로 봤을 때, <하하하>를 보고 저와 똑같이 찾아온 사람들이었나 봅니다. 한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가게를 찍고 음식이 나오니 또 음식을 찍었습니다. 뒤에 앉은 사람도 역시 사진을 찍더군요. 저는 본래 음식점에서는 잘 찍지않아서 그냥 묵묵히 먹었습니다. 생각만큼 시원하고 맛있더군요.
그렇게 저녁까지 먹었는데도 시간이 7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혼자 여행왔을 때, 참 어색한 시간이 바로 그 즈음입니다. 혼자 술집을 갈 수도 없고, 땀은 흘려서 커피숍에 앉아 있기도 찝찝하고, 숙소로 들어오자니 너무 이르고...그래서 '문화마당'에 앉아서 배들이 정박해있는 '강구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한 쪽에서는 연인들이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고, 또 한 쪽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한담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남자들끼리만 왔는지 뒤쪽에 앉은 3명의 청년들은 맥주를 마시면서 또 즐겁게 웃고 있었습니다. 바다엔 불빛이 붉은색으로 파란색으로 일렁이고 있었고, 주인 없는 강아지가 먹을 것을 찾아 코를 킁킁거리면서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 한참을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다 보니 그제서야 제가 여행을 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더군요.. 이제 내일이면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죠.
혼자 산지 이제 겨우 5개월 쯤 되어가지만, 혼자 살다고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니 일상과 여행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나 봅니다. 어차피 집에 있어도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밥을 먹고 또 혼자 잠든다는 것은 별로 다를 것이 없는게 사실이기도 하지요. 차이가 있다면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많이 걷고, 조금은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요...그래도 분명히 평소에는 잘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하게 된다는 장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지난 날들을 어떻게 살아왔나 돌아보고 반성도 하게 되고요...
이제 돌아가면 다시 벅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겠지요.
저는 할 수만 있다면 평생 철들지 않은 채 살아가고 싶은데요. 삶에 대한 부담감은 점점 커져서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사회적인 부분에서는 더욱 더요.
그래도, 언제나처럼 모두들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겠죠.
오늘은 좀 일찍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못갔던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가야겠습니다.
원래 돌아가는 차편 같은 건 그때 그때 알아서 하는 편인데, 이번엔 미리 예매를 해두었거든요. 기찻시간에 늦어버리면 정말 곤란하게 될텐데, 내일은 좀 술술 풀려서 모든 것이 잘 되었으면 합니다.
덧붙임1 :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통영이라는 곳은 좀 특별한 것 같습니다. 다른 항구도시와 달리 비교적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서 거친 뱃사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남자들의 성향도 좀 살가운 것 같고요.. 신기..
덧붙임2 : 확실히 공기가 좋은 곳에서는 술에 취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어제 오늘 계속 캔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평소 같으면 적당히 취기가 올라오는 양인데도 전혀 취하지 않고 아쉽기만 합니다.
덧붙임3 : 돌아다니는 틈틈히 MP3로 음악을 듣는데요. 다양한 음악을 셔플로 돌려듣기는 하는데, 여행에는 '루시드 폴'이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국경의 밤> 앨범을 걸으면서 들으면 지인들도 그리워지고 맘도 차분해지는 것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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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인 이야기 셋 다 아주 공감. 소매물도 낚시 가면 해뜰 때까지 술을 마시는데 술이 안취하지요. 경험으로 알아요^^ 산 보다는 바다가 그런 듯해요. 바닷바람의 어떤 성분일까요? 그리고 통영에서 유명한 사람들은 죄다 예술가인 걸 보면 예향이 되는 어떤 풍수가 있는 듯해요.
저는 바다낚시도 한 번도 못해봤답니다.
맘만 먹으면 누구 잘하는 사람을 꼬셔서 배우러가도 되겠지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좋겠네요. ^^
바다와 산과 수많은 섬들과... 없는 게 없더라구요. 볼 수 있는 지형은 다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걸 다 느끼는 곳에서 예술가가 나오지 않는 다는 게 외려 이상할 정도 였어요. 게다라 '이순신'이라는 위인도 있었고요.. 참으로 이상적인 곳이더군요. ^^
아마 멀리 배타고 나가는 일 없이 양식을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ㅎㅎㅎ 지극히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피곤하실테지만 여행소식이 궁금하군요....
통영이 얼만큼 변했나도 궁금하구요
어?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네요.
전 통영이 오래전부터 관광지여서 타지 사람들을 자주 대하다보니 서비스 정신이 몸에 익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ㅎㅎ
<하하하>가 무엇인가요??
아~~ 모르셨구나. ^^
'홍상수' 감독의 최근작이에요.
통영이 배경이구, '김상경'과 '유준상'이 따로 통영으로 여행갔다가 겪은 이야기를 대화하듯 이야기하는 영화.
'문소리'도 나오구요. '김강우'도, '김규리(김민선)'도 나와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서 젤로 웃기고 재밌는 영환데.. 제가 리뷰를 안썼군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