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늦게까지 포스팅을 하고 정말 늦은 잠을 청했는데,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무슨 천둥이 그렇게 치고 번개는 번쩍이고 비는 쏟아지던지요.
  열고 자던 베란다의 창을 닫으면서 만약 자고 일어나서까지도 이렇게 비가 내린다면 출발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행히 아침에는 비가 좀 잦아들었고, 시간에 쫓기고 비에 홀딱 젖어가면서 겨우겨우 시간에 맞춰 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서울에서 반도 끝 통영까지가는 여정이니 도착하면 날씨가 개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도 가졌었고요. 하지만 어머님이 미리 말씀하셨듯, 제가 움직이면 비가 따라다니나 봅니다. 분명 일기예보에선 오후에 갤거라던 날씨가 꿈쩍도 않고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을 보면요.
  버스에서 내린 후 안내소에 들러 안내지도를 받아들고 서둘러 시내버스에 올라 '중앙시장'으로 왔습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막 건널목을 건너려는데, 할머니 두 분이 장에 무언가를 팔려고 오셨는지 커다란 짐들을 이고, 들려 하시더군요. 그런데 워낙에 무겁기도 하고 또 손에 들고 가셔야 하는 것도 있어서 도움을 요청하시길래 냉큼 머리 위에 이어드리고, 짐을 들고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거리였는데, 짐을 들어다 드리고나서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니까 할머님께서 '커피'라도 한 잔하고 가라고 인정어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뭐 댓가를 받을 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사양하고 돌아섰지요.
  왠지 도착하자마자 착한 일(착한 어린이 차이와 결여)도 하는 걸 보니 왠지 이번 여행이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느낌은 거기까지.
  숙소를 영화 <하하하>를 찍었던 장소인 '나폴리 모텔'에 잡았는데 그 앞이 바로 '강구안'이었고 '문화마당'이 있는 곳이었죠. 통영은 오늘까지 '한산대첩축제'를 바로 이곳 '문화마당'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항구엔 '거북선'도 보이고 KBS 방송차도 보이고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KBS에서 '대첩축하음악회'를 마지막으로 모든 행사를 종료한다고 했습니다. 그 음악회에는 '샤이니', '포미닛', '나르샤' 등등의 가수들도 초대되어 있었고, 그 일대는 사람들과 차들로 말그대로 시장통이었습니다. 거기다가 오락가락 하는 비까지...나중에는 MP3 이어폰까지 망가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뭐 어찌어찌해서 계획했던 오늘의 일정은 무사히 마쳤는데요.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 아무래도 '소매물도'에 가는 일정은 무리일 듯 싶습니다. 비가 많이 온다네요. 혹시라도 들어갔다가 배가 뜨지 못한다면 낭패일 수도 있으니까요... 도박을 하기엔 개학이 너무 코 앞입니다.
  급 일정을 변경하여, '청마 문학관', '박경리 공원', '김춘수 유품 전시관', '전혁림 미술관' 등을 도는 문화 예술 투어가 될 수밖에 없겠네요.ㅠㅠ
  오후에라도 비가 좀 잦아들어 '제승당'이라도 다녀올 수 있음 좋겠습니다.

  오늘 문득 '해저터널' 앞에 앉아서 땀을 식히다가 든 생각인데요.
  제가 휴가를 오고 싶어서 온 것이긴 하지만, 굳이 오지 않고 집에서 뒹굴뒹굴했어도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만 빼면 별로 다를 것도 없었을텐데 굳이 왜 왔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요. 여행을 할 장소를 정하고, 계획을 짜고 진짜 출발을 하는 일은 분명히 여행을 가고 싶다는 제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더 애매해지겠지만 막연하게 그냥 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시간이 부족하고 일정이 빡빡해도 가서 좀 버벅대고 헤매는 일이 있더라도 왠지 가서 봐야한다고 나를 떠미는 힘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와서는 생각하고 있는 거죠. '내가 왜 이토록 이곳에 오고 싶어한 것이었을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아무런 약속도 없이 어디에 사는 줄도 정확히 모르고 한 사람이 산다는 도시의 이름만 듣고 찾아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왠지 가지않으면 평생 아쉬운 생각이 들 것 같아서 무작정 찾아갔는데 막상 도착하고 나니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었습니다. 결국 집으로 전화를 해서 뭐하는 지 확인은 하였는데, 창피했는지 만나러 왔다는 말은 차마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르는 그 사람의 흔적을 찾아 주위를 방황하다가 무의미해져서 돌아왔었는데요. 왠지 그 때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이상했습니다.

  암튼, 지금 또 비가 쏟아지네요.
  다행히 일정이 변경된 관계로 내일은 좀 늦잠을 자도 될 것 같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여행도 나름 매력이 있는 것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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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클라리사 2010/08/16 05:0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음...

    '내가 여기서 뭘하고 있지?'하는 생각이 여행의 본질이래요.

    • 차이와결여 2010/08/16 21:08  address  modify / delete

      그런 것이군요.. 저는 아직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시 그거 '클라리스'님 생각 아닌가요? ^^

  2. clovis 2010/08/16 17:2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런... 비오지 말라고 빌었는데 안먹히나 봅니다....
    비오는 여행도 그 나름의 묘미가 있으니 너무 절망(음.. 적당한 단어가 생각안나네요) 하지마세요.. 저는 제주도 갔었었는데 10년만에 기상이변으로 엄청 추웠던 적이 있었어요. 계속 비만 오고..

    그래도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보다 어딘가 가는게 더 낫지않나요?? 기분이라도 나구요... ㅎㅎ

    남은 일정 잘다녀오시길 바랍니다.

    • 차이와결여 2010/08/16 21:11  address  modify / delete

      고마워요! 'clovis'님 ^^

      그래도, 뉴스에서 이야기하는 것만큼 국지성 폭우는 아니어서 설렁서렁 다닐만 했어요. 올 때 보니까 지리산 부근이 장난 아니던데 그쯤 어딘가봐요.

      당연히 어딘가 가는 것이 낫죠. 기분도 좋구요.
      낯선 곳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기분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뭔가 다른 내가 되는 것 같아서 즐겁답니다.

  3. herenow 2010/08/16 20:2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늘은 비가 좀 그쳤나요?
    맛난 것도 좀 먹고 슬렁슬렁 돌아다니며 낯선 곳을 돌아다니는 기분, 그리워요. ^^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잘 지내다 오세요~
    통영 사진도 좀 보여주시구요. ^^

    • 차이와결여 2010/08/16 21:13  address  modify / delete

      우... 오늘은 날씨에 낚였어요.ㅠㅠ
      비가 올 듯 올 듯 하더니 살짝만 뿌리고 말더라구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매물도에 갈 걸 그랬나봐요. 엉엉..

      사진은.... 많이 찍기는 했으나, 띄엄띄엄 찍어대는 관계로 좀처럼 늘지 않는 제 실력 때문에 크게 기대하시진 마시길..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