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날을~~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벌써...
두 달 밖에 남지 않은 2008년, 아.. 이제 34이구나..
34살은 왠지 33살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3+4=7, 3*4=12, 뭘 해도 안되는구나..
여튼,
비도 내리고 괜시리 센치해지는 오늘이다..
요 며칠,
학교 도서관 재고조사를 하고 있는데,
비록 1만 여권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서관이지만,
여러 가지의 소소한 기쁨들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어서 매우 흐뭇하다.
첫 번째 기쁨,
정말이지 나는 도서관이 너무나 좋고, 책 냄새가 너무나 좋아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있는 것 자체를 사랑한다.
밤늦게 남아서 혼자 서가를 정리하면서 바코드를 찍고다니는데,
먼지 쌓인 책들 사이로 세월의 무게와 고전의 향기가 느껴지고,
닳아빠진 겉표지를 가진 녀석들을 대할 때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길이 이 책을 묻어가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즐거워하고 감동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마저 흐뭇해진다.
그러다 보면,
혼자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책장 사이로 건너편 서가를 바라보며
뭔가 로맨틱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운명적인 눈빛을 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허망한 생각마저 하곤 한다..
두 번째 기쁨은,
서가들을 정리하면서
어렸을 적 내가 읽었던 책과 똑같은 책을 만나는 기쁨이다.
초등학교를 다닐적에 우리집은 그리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쉽게 책을 사주는 집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용돈을 넉넉히 주는 집도 아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여유롭지 않은 형편에도 무리를 해서 내게 사주신,
20권짜리 명작동화, 20권짜리 위인전, 부록으로 딸려온 11권짜리 백과사전을,
정말 닳고 닳고 닳을 만큼 읽어댔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자의 허기짐을 못디고는
걸어서 40분이 넘게 걸리던,
지역에 하나 밖에 없던 도서관으로 걸어가서 책을 열람하고 돌아오는 아주 바람직한 초등생활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했었다.
그 때 읽었던, <시이튼 동물기> 와 <파브르 곤충기>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을 할만큼 인상깊게 남아 있다.
그러다가
한 달에 5000원의 용돈을 받게 되면서 부터 서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때 정말 갖고 싶었던 책이 '학원사'에서 출간한 '한권의 책' 시리즈 였다.
포켓북 형식으로 얇게 출간되었던 그 책은, 크기도 다른 책보다 작았고, 표지는 노란색을 기본으로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었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서점에 그 시리즈가 나란히 꽂혀있는 것만 봐도 가슴이 설레곤 했다.
손에 5000원을 쥐고 서점으로 뛰어가서,
나름의 판단과 기준으로 최고의 선택을 하기 위해 '한권의 책'시리즈 앞을 한참 동안이나 배회하던 그때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봐도 발끝으로부터 머리끝까지, 지식의 충만함으로 가득차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책들을 학교 도서관 서가를 정리하면서 만나게 되는,
그래서 어렸을 적 책읽기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던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재고정리는 다 까먹고 책장을 뒤적이며 추억 속에 빠져들곤 하는 것이다.
그 때 샀던 시리즈들은 이래저래 빌려주고 잊어버리고 하면서 다 없어지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한 권 만이 남아있다.
아~~
이렇게 가만히 생각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나는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와니와 준하>에서 '김희선'의 대사가 그랬다.
"정말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하는 거래..."
난 저 말을 좋아한다.
약간은 체념한 듯, 또 약간은 세상사를 깨닫고 초탈한 듯 이야기하는,
그러면서도 사는 건 다 그런 것..이라는 체념이 묻어나는 대사..
아...그러하므로...
책은 취미로만 하고
나는 오늘 커피나 마시면서 센치함에 쩔어 살다가,
<굿, 바이>나 보러 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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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울학교 교무실도 교감샘의 신청곡인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5번이나 나왔다는,,ㅋㅋ
덕분에 커피 한잔의 여유속에,,,지난 추억을 곱씹었네요,,,
샘 글을 읽다가,,,문득,,,<와니와 준하>가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ㅎㅎㅎㅎ
'페퍼민트'님도 선생님이시군요 ^^
'샘'이라는 호칭이 너무나 정겹습니다.ㅎ
아이들은 '할로윈 데이'라고 사탕달라고 하고, 선생님들은 '잊혀진 계절' 틀어달라고 하고,
오늘 하루 그런 학교가 굉장히 많았을 것 같아요.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였구요 ㅎㅎ
저는 하루 종일 심란한 것이 수업도, 업무도 잘 못하겠더라구요..ㅋ
아무튼,
이제부터 11월이니
또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하면 되겠죠 뭐..
나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저도 주말에 <와니와 준하>나 찾아서 봐야겠습니당. ^^
행복한 11월 되세요~
저의 경우에는 좋아하는 일이 전공이되고 직업이 되었는데요..
독서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직업으로써는 애로 사항이 있을듯 하네요^^
전 독서량이 많다거나 한건 아니라서 그런지,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독서보다는 책 자체를 좋아한다고 해야하나...해서 아직은 좋아하는일이라서 취미로만 했으면 후회했겠다..라는 생각도 들구요.
특히, 서고에 꽉 차인 책들을 볼때면 그 책들이 다 제것인것만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답니다.
100년전 출판된 후 한번도 문의되지 않아 책장이 두 세페이지 씩 붙어있는 책을 한장 한장 넘겨가면서 자를때라던지, 한권을 보기위해 여러단계의 사인을 거쳐야만 하는 400년된 고서들이 쌓인 서고를 마음대로 들락날락 할 수 있을때는 정말..이것이 이 직업만의 특권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구요.
와우....
'rainforest'님은 정확히는 몰라도 책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군요. 말씀해주시는 것을 보니, 출판관련은 아니고, 사서 선생님이라기엔 뭔가 좀 부족하고,
분위기는 마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수도사들이 수도원에 있는 고서적들을 한 장, 한 장 필사본으로 복원하는 그런 작업을 하시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데요?? 그런거에요?? ^^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저는 일이라고 하면 '생계'라는 문제와 연관이 되어있어서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져서 그런가봐요.
하지만 직업으로 선택한 일을 즐겁게 할 수만 있다면 그 보다 좋을 순 없는 것이겠죠^^
그런 면에서는 'rainforest'님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저도 물론 제 일을 좋아하고,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뭔지 모를 부담감 또한 있는 것이 사실이어서요,
살면서 남들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도 받지도 고 살 순 없는 것이겠지만,
왠지 제 직업은 한 사람의 삶에 좀 의미있는 자국을 남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냥 나 혼자 영향주고 영향받고 하면 안될까 하는 마음이 가끔 듭니다. ^^
예전에 부모님과 많이 싸웠던 생각이 났습니다.
왜 굳이 직업으로 하고 싶으냐고,
취미로 하고 싶은 일 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그런데 말리면 말릴수록 꼭 하고 싶어지는거 아시려나요??
그래서 그래서 지금 여기 있는데.
가끔은 후회해요.
삶이라는건 정말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삶에는 참 선택의 순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실 그런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 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데,
내 삶을 내가 아닌 다른 손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저는 한 번은 져드리고 한 번은 이겼었는데요.
두 일 모두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
지나온 지금은 후회를 하든 안하든 중요한 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실버제로'님은 잘하신 걸겁니다.
잘 몰라도 제가 가지는 느낌은 그렇습니다.
의외로 제 느낌 잘 맞거든요.
꼭 멋있는 천문학도가 되실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