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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 2008년 10월 28일 19시 20분
Where : CGV (오리)
(★★☆)

  사실,
  '김정권'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얼마 전에 집에서 뒹굴던 하루,
  무료함을 달래고자 찾아보았던 <바보>(원작 강풀,주연 차태현, 하지원 )가 참으로 따스하게 기억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보>는 비록 기대이하의 성적을 보여줬지만, 아주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에도 가물가물했던 만화의 이야기들을 거의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겼다는 생각이 들어서, '숨겨진 수작'이라는 생각을 했던 터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길래 더욱 탄탄한 스토리를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구요, 스토리 자체가 '감성 멜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만큼, 아기자기 함이 묻어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뭔가 의아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어서,
  바로 밑에 있는 '영풍문고'에 가서 원작소설을 사가지고 돌아와서 다 읽은 후에(20페이지 밖에 안되더라구요.), 이 포스트를 올리고 있습니다.

  일단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얼마 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따분하고 무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은수(유진)'는 도서관 사서입니다. 홀어머니와는 떨어져지내고 있고, 하나 있는 동생은 고시공부를 하는 중이라 버는 돈을 모두 집으로 보내야만 하지만 밝게 살아가는 사람이죠.
  그런데 얼마 전부터 도서관에서 찢겨진 책들이 발견되고, 마침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책을 훼손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격투끝에 그 남자 '준오(이동욱)'를 붙잡게 되지만, 뭔가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는데, '준오'가 훼손한 장은 전부 198페이지였던 것이죠.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생각과 호기심에 그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그제서야 자신에게 아무말도 남기지 않고 떠나간 여자가 남겨준 쪽지를 보여주는 '준오'.

  '○○○책 198쪽을 봐. 너에게 전해 주고 싶은 내 마음이 거기에 있어.'

  뭔가 안타까운 마음이 든 '은수'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준다는 심정으로 '준오'를 도와주게 됩니다...


  이 정도가 이미 알려져 있는 스토리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설과는 내용이 많이 다릅니다.
  말 그대로, 소설은 원작일 뿐이고,
  원작에서는 여러가지 설정들을 가져왔을 뿐, '분위기'도, '시점''은수와 준오'의 관계도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원작 소설이, 2003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려있지만,  대상수상작도 아니고, 총 9 편의 '추천 우수작' 중 한 편이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읽으셨을까 싶긴 한데요.
  아마도 소설을 읽고 기억을 잘 하시는 분이라면, 영화를 볼 때, 많은 재미를 못느끼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좀 됩니다.

  여튼,
  영화는 전형적인 멜로 영화의 공식을 밟아 갑니다.

  상처를 받은 두 사람이 만나서, 숨겨두었던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 보이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의 상처가 치유되어가고, 그 안에서 사랑이 싹튼다..

  이런것은 우리가 많이 보아왔던 내용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뻔한 멜로 스토리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주인공들의 사랑이 이루어졌을 때 대리만족을 느끼는 관객들, 눈물을 흘리거나, 가슴 한 켠이 따스해지는 느낌을 받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중에 한 명이고요.)

  따라서,  영화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얼마나 극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느냐는 것과, 스토리의 진행 상황에 맞춰 미묘하게 변화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어야만 관객들이 몰입을 하게 되는 것인데요.

  아쉽게도, <그 남자의 책 198쪽>에서는 두 가지 모두 실패한 것 같습니다.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극적인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 준비했던, '준오'의 다소 엽기적 범죄행동은 이미 초반부에 이유가 밝혀지게 되고, 사소한 복선들에 의해서 후반부에 강한 임팩트로 다가와야 할 반전은 너무 쉽게 예상이 되고 맙니다.

  '이동욱'의 전 영화 <최강 로맨스>는 봤고, <아랑>은 못봤습니다만, 아직까지는 드라마의 문법과, 영화적 문법의 차이에 적응이 되지 않은 건지 무미 건조한 듯한 연기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유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처음 TV에서 연기할 때는 진짜 실망이었습니다만, 몇 편의 필모그래피가 쌓이면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어 깜짝놀랐었는데요. 영화는 아직 미숙한 것 같습니다.
  '유진'이 맡은 '은수'라는 역할은 겉으론 씩씩해보이나 속으로는 여린 인물로 '캐릭터'분석 자체는 잘된 것 같지만,
시종일관 밝고 맑은 모습 속에 하이톤으로 일관하거나, 입모양을 이죽거릴때 나오는 투정 비슷한 모습들은 엇박자처럼 맞지 않아서 마치 항상 웃게 만들어진 인형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마 연기자들의 이런 부족한 모습은 감독의 역할도 크리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밝고 예쁘게 표현되어야할 '은수'가 그다지 예쁘지 않은 평범한 모습, 어쩔 땐, 감독이 '유진' 안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인공을 평범하게 잡아버리는 데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동감>에서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거쳐, <바보>, <그 남자의 책 198쪽>으로 이어지는 '김정권'감독의 서정적 화면 구성은 일본 멜로영화들과는 또 다른 한국적 감성멜로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듯, 우리 주변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풍경들이 인위적인 느낌이 나지 않아서 그 부분들에는 좋은 점수를 매겨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도서관' 이라는 설정과 '책에서 뭔가의 힌트를 얻어낸다', '폴라로이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자전거'를 타는 장면
  이런 부분들은 비록 원작에도 나오는 것이라고는 해도 장면 구성 자체가 '이와이슌지'<러브레터>를 연상하게 하여서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창문이 다 열려있고, 살랑살랑 미풍이 부는 밝은 햇빛이 비치는 도서관에 하얀색 커튼들이 바람에 날리고 그 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남자주인공,
  여자 주인공은 그 모습을 눈부시게 바라보고, 이내 사라져버리는 남자 주인공...

  이런 장면은 설정 자체가 너무 흡사했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그 남자의 책 198쪽>에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제가 도서관과 책을 너무 좋아하여서 한 때는 사서가 되고 싶은 마음에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적이 있던 터라,
  개가식 서가가 나오고, 책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한 장면들만 나와면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꼭 돈 많이 벌어서 개인 도서관이라도 지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입니다. ^^

  두 번째는
  제가 영화를 보기 전에 동료와 '순대국'으로 저녁을 먹고 영화를 봤는데요.
  영화에서도 '은수'와 '준오'가 처음으로 같이 먹는 식사가 '순대국'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순대였는데요, 원작을 보니, 선지국이네요..)

  또 다른 하나는,
  '기주봉' 아저씨의 연기 때문입니다.
  영화에는 빛나는 조연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웰컴투 동막골>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나왔던  경비실 김씨 역의 '조덕현',
  <행복한 장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얼굴 보시면 다 아실 약사 역의 '정은표',
그리고 '기주봉' 아저씨입니다.

  '기주봉' 아저씨가 '준오'에게 한 마디 하는 장면은 정말 멋있는데요.

  '지나간 건 내버려 둬, 지나가면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는 거야.'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은 움직임도 없이 얼굴표정과 입만으로 연기하는데요. 마치 아픈 곳을 깊이 어루만져주는 것과 같은 따스함이 느껴져서 울컥했습니다.

  하지만, 이거 외에,
  영화 홍보 때 이야기했던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정으로 슬퍼한다' 라거나, '상처받은 두 사람이 서로 치유해가는 과정'과 같은 중요한 요소들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마지막 결론도 감정이 고조되지 않고 급박하게 끝맺는 것 같아 맘에 들지는 않구요.


  여튼,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이 가을에 완전 히트 할 수 있을 스토리와 영화였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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