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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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의 궁전
* 폴 오스터, 황보석 역, 열린책들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솔직히 말해,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도대체 내용과 제목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이야.'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달' 이라고는 처음의 달,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바라보는 달,
  그리고 주인공의 방 창가를 통해 봤던, 중국 음식점 '달의 궁전' . 이것이 전부이다 시피 하고, 달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주어 지지 않은 채, 언젠가 '달의 궁전'에 식사하러 가서 보았던 '과자점괘'에
<태양은 과거고 세상은 현재고 달은 미래다>라는 문구가 써있었던 것, 그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달'이 가지는 차고 이지러짐의 속성이, 주인공  '포그'를 비롯하여, 등장인물 대부분이 (그의 외삼촌, 늙은 노인 '에핑', 뚱뚱보 '바버') 살았던 인생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건 누구나 간단하게 확인 할 수 있는 인생의 비애라고 생각하는 데요.
  세상 모든 것에는 '양'과 '음'이 공존하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행복'과 '불행'이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어서
  어떤 일이 너무 순탄하게 잘 풀려나가게 되면 불안해지는 그런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을 고통의 나락을 떨어뜨린 후에야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고, 다시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다가 운명적으로 다시 불행해지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주인공 '포그'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외삼촌에 의해 길러진 후에 대학입학 후, 유일한 혈육이었던 삼촌 마저 죽게 되자 모든 걸 포기하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다 헌신적 구원자 '키티'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다시 힘을 얻어서 일자리를 찾던 중, '에핑'이라는 괴팍한 노인의 비서로 취직을 하게 되는데,
  그 노인 또한, 젊었을 시절 순수한 열망에 의해 사막으로 나갔다가,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동굴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인물로 살아가게 되죠.
  '에핑'에게는 결혼한 아내가 있었는데도, 평생을 자신을 숨긴채로 살아왔지만, 얄궂은 운명의 장난으로 '에핑'이 사막으로 떠나기 직전에 가졌던 잠자리에서 아내는 '아들'을 낳게 되죠.
  물론 '에핑'은 그 아들을 찾고자 노력하진 않습니다.
  그 아들은 비 정상적으로 몸이 비대하여 인간관계가 원만하진 않았지만, 아버지 없이 정신이상이 되어버린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다 자신의 아버지의 삶을 찾아 연구하면서 미국 인디언과 관련된 몇 가지의 훌륭한 연구를 발표하게 되고 대학교수까지 되지만, 제자와의 불경한 관계로 인해 대학에서 쫓겨나고 파멸의 나락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가 '바버'입니다.
  '바버' 역시 다시는 그 제자였던 '에밀리'를 만날 수 없었는데, 우여 곡절 끝에 '에밀리'가 아들을 낳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죠.

  괴팍한 노인 '에핑'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아들일거라 짐작되는 '바버'에게 남은 재산을 물려주길 바라고, '포그'와 함께 기록한 자서전을 '바버'에게 전달해줄 것을 부탁하게 되는데, 알고 봤더니, '바버'가 사랑했던 제자 '에밀리'가 다름 아닌 '포그'의 어머니다.. 뭐 이런 스토리 입니다.

  결국, '에핑'은 '바버'의 아버지고, '바버'는 '포그'의 아버지.
  미국판 '삼대'라고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더군다나, '에핑'이 살았던 삶의 희노애락은 '바버'의 그것과 거의 흡사하고, 아버지 없이 자라난 '바버'의 삶은 또한 아버지 없이 자란 '포그'의 삶과 일치하죠.

  인생이란 참 오묘하다는 걸 생각하게 해준 소설입니다.

  책 페이지 수로만 본다면 450페이지에 이르는 상당한 분량의 소설인데요.
  첫 부분의 '포그' 스토리, 중간 부분의 '에핑'스토리, 마지막의 '바버'의 스토리가
독립적인듯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관계를 드러내며 통합되는 모습이 절묘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페이지가
  한 인물의 심리를 바닥 끝까지 치밀하게 묘사하는데 할애되어 있어서 굉장히 탄탄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작가의 세계관이나 예술관이 묻어나는 부분이 꽤 많이 있습니다.

  그는 두 가지 제한을 두고서 일하고 있었다...... 첫번째는 누구에게도 그 그림들을 절대로 보여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내려진 결론이었지만, 그렇더라도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괴로웠다기 보다는 사실상 자유롭게 풀려 난 듯한 느낌이었다. 이제 그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라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그 자신만을 위해 그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자기의 예술에 접근하는 방법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난생 처음으로 그는 결과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용어는 갑자기 의미를 잃고 말았다. 그는 예술의 참된 목적이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엇다. 그것은 이해를 하는 방법, 세상 속으로 파고 들어 거기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아내는 방법이었다.
(p. 249)


  아무튼, 줄거리를 말하면서 많은 부분들을 밝혀버린 것 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더 많은 재미와 더 많은 놀라움 들이 소설 안에 빼곡히 채워져 있으므로

  운명의 놀라운 힘, 절망 속에서 길을 찾는 방법, 혹은 인생이 재미 없다고 생각될 때 읽어보시면 괜찮을 듯 싶습니다.

  글 속에 나오는 힌트를 가지고 결말을 예측해가면서 읽거나, 인물들이 어떤 시점에 서로 만나게 되는지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좀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폴 오스터'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없어서 한 권을 더 읽어볼까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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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르페 디엠 2008/09/22 12:5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봄에 좋아하는 친구가 선물로 주어서 읽어보았는데요..
    미국판 '삼대' 라는 부분에서 씩 웃음이 나오네요~
    영화나 소설에서 종종 보여지는..자신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행동..뭐 그것이
    성장통이든 젊은날의 치기든..이런 행동하는 사람은 대개 남자들이라죠?ㅋㅋ
    누구말대로 동굴로 들어가기를 좋아해서 그런가요?

    • 차이와결여 2008/09/22 16:52  address  modify / delete

      후후,
      원래 포스트 제목을 '미국판 삼대이야기'라고 달까 하다가, 말았드랬어요.
      우스울 뻔 했네요.. ㅋㅋㅋ

      남자들이 공간 지각력이 좀 더 나아서
      낯선 곳이나 낯선 상황에서도 좀 덜 당황하는 탓이 아닐까요.

      그리고 나락으로 떨어져서 생활하기엔 여성의 신체구조가 잘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네요.

      동굴에 들어가기라.. ㅎㅎ '의미 심장'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