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다음(www.daum.net)
* 호출
* 김영하, 문학동네
'김영하'의 시작을 알린 <거울에 대한 명상>부터, 각 계간지에 발표된 단편 11편을 모은 소설집.
그의 출발을 알 수 있는 소설들이기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요새,
'공지영'에 대한 관심으로 그녀의 책들을 꺼꾸로 봐나가고 있다면,
'김영하'는 처음부터 읽어나오고 있다는 나름의 의미도 있지요. (괜한 것에 집착하는 '나')
아무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만족을 했던 터라, <호출> 역시 애정을 갖고 들여다 보았습니다.
역시 재미있더군요.
정말이지 10년이 넘은 작품들이라, '호출기'라든지, '386'세대의 자학적 피해의식이라든지, 제가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분위기들이 전편에 넘쳐나서 과거를 추억하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아마도,
내가 대학교 때, '김영하'를 대했더라면 싫어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던 시절이라 이것 저것 내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던 시기였기도 했고, 실패의 의미보단 성공의 화려함에 도취되던 시기라,
이미 87년 대선 패배와 90년대 초 소련의 붕괴로 의미가 퇴색되어 가던 '맑시즘'을 막 접했던 20살의 젊은이에게 '혁명'이라는 말이 주는 떨림은 너무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혁명'의 실패라든가, 좌절과 같은 말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죠.
따라서, 당시에 '후일담'소설이라 불리웠던 '공지영'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작가군들의 소설들이 제 눈에 달갑게 보일리가 없었습니다.
물론 어리석은 것이었지만요. 그땐, 20살이었으니까요...
'김영하'의 이번 소설집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풍기는 소설이 몇 편 있었습니다.
물론 배경설정 뿐이었겠지만, 그래도 대학 시절이었으면 별로 안 좋아라 했었을 것 같습니다.
이제와서 접하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요..
아무튼,
소설집 전 편에 흐르는 리얼리즘과 환타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소설에 흡인력을 갖게해주고, 거기에 덧붙여지는 '죽음'과 '섹스'의 이미지들도 이미 시작되어 있더군요.
김영하 '죽음'과 '섹스'를 달리 보는 것 같지 않습니다.
'죽음'의 직전의 순간에 인간이 느끼는 극도로 고조된 감정과 '섹스'의 오르가즘의 순간이 같은 거라고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데요.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런 극도의 말초적 자극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 싶습니다.
또한,
주인공들은 대개가 자신의 세계와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타인과 결코 교류하지 않을 듯 살아가는데 그런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는 '나르시즘'에 대한 이야기도 여러 번 나옵니다.
소외와 고독을 당연하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병이 이 '나르시즘'이 아닐까..
저 또한 '나르시즘'에 빠져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혼자 포스트를 올리고 흐뭇해하는 것.. '나르시즘'... 비슷하지 않을까요...
여튼,
다음 소설들을 읽어봐도 되겠구나... 하는 확신을 준 소설집입니다.
'김영하'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거나, 그이의 문학의 근원을 찾아가고 싶으신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단편집의 묘미는,
자기 전에 한 편씩 보면 잠들기 전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수면제라는 것이겠지요.
즐거운 독서하세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잘보고 갑니다. ^^*
방문을 감사드려요.
부족한 글인데도 잘 보신다고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추석지나고 더이상의 연휴가 보이지 않는 날들이지만,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면서 힘내시길 바랍니다.
트랙백을 타고 가서 열심히 봤는데, 제 글의 성격과 맞지가 않아 삭제했습니다. ^^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책을 부탁하려고 좋은 책을 찾기 위해
차이와결여님의 블로그를 열심히 뒤져보고 있습니다.
요즘 김영하 작가님의 팟캐스트를 통해서 작가님 목소리로 책들을 듣는데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를 아직 읽지 못해서...^^
이책도 괜찮은가보군요!
괜히 반가워서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