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1일에 있었던 "2008 열정문학강좌"
'나희덕' 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이제서야 기록에 남기고자 한다.

강좌를 들으러가려고 책장을 뒤적여보니,
의외로 '나희덕'시인의 시집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모두 5권,
알고 보니 이 시집들은 '나희덕'님이 출간한 시집의 전부였고,
따라서,
내가 시집 모두를 소장하고 있는 유일한 시인이 바로 '나희덕'님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희덕'님을 처음 알게 된건 '안치환'의 노래 <귀뚜라미>를 통해서 였고, 외려 대학교 때에는 그이의 시집을 거의 보지 않았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를 우연히 구입하게 된 다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아마도,
<한 그릇의 밥>과 같은 시에서 동일 직업을 가진 그의 내면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던 거겠지 하고 생각한다.

암튼,
호감을 가진 몇 안되는 작가이므로 기쁜 마음으로 한양대로 향했다.
강당에 도착하여 넓디 넓은 무대를 바라보니,
썰렁하게 덜렁 테이블이 하나 놓여져있고, '나희덕'님은 열심히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지난 시간 '이성부'님의 강좌가 열렸던 강의실보다 훨씬 넓은 곳이었는데, 사람은 그때보다 훨씬 많아 보여서 안심이었다.
같이 오기로 했던 후배가 사정상 오지못하게 되어 혼자 앉아야했기 때문에, 맨 끝자리에 앉았는데, 내 옆으론 다른 사람들이 오지 않아 맘 편히 강좌를 들었다.

본래는 강사명단에 '나희덕'님의 강좌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는데, 급작스럽게 시인'황지우'님이 일정을 변경하게 되어서 소위 땜빵으로 강좌를 듣게 되었던 터였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더욱 기뻐하는 것 같아서,
강좌가 끝나고 질문시간에는 너도나도 질문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암튼,
급작스런 부탁임에도 흔쾌히 승낙하시어 원고를 보내주시고,
다음날이 고3 큰아들 생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늦은 시간까지 강좌에 참석해주신 '나희덕'님의 모습에 내가 다 감사할지경이었다.

강좌의 제목은 '마른 물고기 처럼'
주최측에서 임의대로 뽑아놓은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시인은 부제를 "시와 연민"이라고 붙이고 자신에게 "연민"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의미가 시로 어떻게 형상화 되는지, 요즘의 시들은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에 대해 아주 자세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셨다.

아마도
현재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기도 하고, 전에 교단에서 고등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하셨던 기억이 남으셨던 탓인지, 처음부터 청중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그 질문은
"사랑과 연민이 어떻게 다른가?"
였다.

여러 사람들이 답을 했지만, 가장 그럴싸한 대답은 중학생의 입을 통해 나왔다.

"사랑은 여명과 같은 것이고, 연민은 황혼과 같은 것입니다."

정말 멋진 대답이었다.

그때 부터, 그 이가 생각하는 "연민"에 대해 여러 가지의 예를 들어 죽 설명하셨는데, 어렴풋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개념이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았다.

기억을 더듬어 내가 느낀바대로 정리를 해본다면,
"연민" 이라는 것은 슬픔과는 달라서 존재를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때에야 느낄 수 있는 것이고, 그 존재가 가진 희노애락을 내 것이라고 느낄 때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는 설명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설명인 듯 하다.

여하튼,
우리가 사랑을 하거나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말하는 '사랑'도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조금 속되고, 오염되고, 훼손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우선,
존재를 바라봐야 하고,
그리하여 존재의 이면을 알게 되고,
그 이면의 모습까지도 (아름다움과 추함까지도 모두) 사랑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이해와 사랑을 얻게 된다는 말씀.
그리고 그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순간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
대상의 전체성과 시간성을 모두 포함하여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깊이 마음 속에 남았다.


그 다음부터는 뒤에 실려 있는 몇 편의 시들을 함께 보면서
그 시가 쓰여지게 된 뒷이야기 라던가,
여러가지의 이미지들이 쌓이고 겹쳐져서 하나의 시로 완성되어 가는 시인의 내면의 모습을
시시콜콜한 사생활까지 이야기를 해가면서
(시인의 표현으로 한다면 밑지는 장사를 하면서)
설명해주었는데,
그 진실한 모습이 또 가슴을 때렸다.

질문과 대화시간에는
다소 엉뚱해보이는 주문이나, 질문들도 이어졌지만,
어느 것 하나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답해주었고,

보너스로 누군가의 청에 의해,
당신이 쓰신 시 "기러기떼"를 직접 낭송해주셨는데,
그 또한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조금 더운 날씨에 틀어놓은 에어콘이 너무 세서 추위를 타면서도
끝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화해주신 그 모습도 좋았으며,

그간,
'어머니의 모정', '여성성', '슬픔과 연민의 미학' 등과 같은
자신의 시들을 수식하는 말들에서 벗어나고자,
혹은
진실된 모습을 찾고자 현재 고군분투 중이며,
곧 완결된 모습으로 만나뵙고자 한다는 말에
역시 프로는 프로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다가
다음날,
주최측을 통해서 아래와 같은 문자메시지를 보내준 A/S 정신까지..
그야말로 온정이 가득 느껴지는 즐거운 강좌였다.

"고단하지만 그래도 즐겁고 보람있는 자리. 배려 감사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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