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 메인 포스터
* 2011년 1월 1일 토요일 18시00분
* 하이퍼텍 나다(대학로)
(★★★★★)
이미 2년 전에 블로그 친구 'rainforest'님께 추천을 받았던 영화 <클래스>.
'rainforest'님도 제가 교사라는 것을 알고 본래 2006년도에 발표된 소설이었으나 그해 영화로 제작되어 '칸'에서 황금종려상 까지 받게 된 영화를 제게 추천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초보 담임교사(지금도 여전히 초보스럽지만) 였던 때였고, 아이들에 대한 열정이랄까, 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최고조에 달해 있던 시기라 교육 문제에 관한 이야기들은 마치 남들 이야기처럼 듣곤 했었죠. 그래도 영화는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다른 프랑스 영화들이 그렇듯 수입될 일은 소원했고, 프랑스 문화원까지 찾아가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재작년 '부산 국제영화제'에 소개되었다는 소식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곧 개봉하려나 기대했는데 기다리던 개봉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이 핑계 저 핑계로 제쳐두다가 이제서야 보게 되었네요. 그러는 사이 교육환경은 변하고 또 변하고, 저도 변하고 또 변하여 그 때와는 많이 다른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잠깐 이야기를 벗어나서 개인적인 소소한 생각들을 덧붙여 드리면요..
오늘은 방학한지 3일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작년 12월 31일에 방학을 하고, 1월 1일, 2일 이틀을 쉬고 진정한 방학은 오늘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죠. 하지만 보통의 고등학교 들이 그렇듯 보충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업 준비를 간단히 마치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했죠. 저는 1-2교시 두 시간 밖에 수업이 없었지만, 퇴근을 할 수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방학 기간 동안 아이들의 자율적인(반은 자율적인 학생들이 반은 의무로 하는 학생들) 신청을 받아 10시까지 자율학습을 운영하거든요. 오늘 제가 감독하는 날이었습니다. 좀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감독을 하는 것 자체에는 큰 불만은 없습니다. 그나마 방학 첫날 하는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
그런데, 야자 감독을 마치고, 아이들을 집에 돌려보내고 교실 불을 끄고 털래털래 나오는데.. 문득, 여러 가지의 생각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겁니다.
도대체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게 무슨 짓인지.. 정말 아이들을 위하는 것인지..
그러면서 제가 아주 가식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사는 자신이 아는 지식을 학생에게 전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닐까요.
요새, 서울시장 오세훈씨와 서울시 의회 간의 다툼으로 시끄러운 '무상급식' 문제도 사실은 경기도교육감이 먼저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고 작년에 당선된 후 추진하려다가 도의회의 반대로 실패했던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경기도교육감이 하는 일을 보면서 참 뜻은 좋은데 무모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었죠.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온전히 지지했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결국 사회 문제화 되고, 불가능할 것만 같던 일들이 이슈화되면서 가능한 일이 되는 것을 보면서 내심 뿌듯했거든요.
우리 나라의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실로 복잡하고 얽혀있지만, 결국은 저지르고 추진하고 싸우고 해야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그걸 잘 아는데도, 그냥 으레 해왔던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니 참으로 가식적으로 느껴지더군요...
오늘도 야자를 끝마치고 나오면서..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서 한 거라고, 내가 이런 것에라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 위안을 했었을 겁니다. 분명...
솔직히 올 신학기가 시작되는 것이 많이 걱정되기도 합니다.
서울시에서는 '체벌금지'를 법제화하였고, 경기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발표했거든요. 물론 그 '인권조례'에는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 체벌금지, 수면권보장 등등 좋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켜져야하는 기본적인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현장에 있다보니 솔직히 겁도 납니다.
아이들도 준비가 안되어 있고, 선생님들도 준비가 안되어 있고, 교육청도 마찬가지일테니까. 여러 가지의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발생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
이미 무너져버린지 오래인 '교권'(이건 학부모님들의 탓이 더 큼)의 실낱같은 자존심마저 무너져버리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하지만 이는 모두 막연한 불안감일 뿐일테지요.
더군다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생들 스스로 그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을 테니까요...
우연히 다른 선생님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고민들을 털어놔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이야기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더군요.
"학생 인권만 소중하냐, 교사도 인간이지 않느냐, 교권조례도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도 '체벌금지'를 반대하더라. 수업 분위기가 깨질까 염려한다."
"우리 나라의 교육은 아직도 유교적인 문화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훈육을 목적으로 하는 체벌은 나쁜 것이 아니다."
"서양과는 달리 우리는 학생들을 자식과 같이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의 '체벌'은 '체벌'이 아니다."
꼭 교사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공감하실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동의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 마디를 덧붙였죠.
"그런데 말이야, 난 대학교에서 '참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도 절대 '체벌'은 안하겠다고 다짐했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말야.. 그런데 그때의 그 마음은 다 어디로 간건지 잘 모르겠어. 그때의 진리가 지금은 진리가 아닌 걸까? 진리가 변하는 걸까? 혹시 내가 변한 건 아닐까?"
반응은 싸늘했습니다만, 어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냥 그렇게 하소연 했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서두가 길었습니다만,
<클래스>는 실제 프랑스 제 19 지구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재직했던 경험이 있는 '프랑소와 베고도'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저자는 실제로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했는데요. 지역적 특성상 많은 인종, 다양한 특징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서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는 교실에서 무엇하나라도 남겨주길 원하는 열정적인 교사 '마랭'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은 쉴새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엉뚱한 질문을 하고, 이유없는 반항을 하기도 합니다. 그 50분간의 수업 속에서 끊임없이 교류하고 부딪히고 또 화해하는 과정을 쫓아가고 있는 이야기는 프랑스 공교육제도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교육계 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 각층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들은 손을 들고 교사가 이야기 하라고 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설사 자신이 지목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죠.
저는 직업이 교사이다보니 이 영화를 일반영화들과는 달리 바라보게 되었는데요. 제일 먼저 바라 본 것은 학생들과 교사가 수업시간에 나누는 의사소통의 방식이었습니다.
교사가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바라고 질문을 던지고 대답할 학생들을 선택하는 것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학생들이 질문을 하기 전이나 자리에서 이동을 해야 할 때에는 꼭 교사의 지시를 받아야한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 나라보다 좀더 규제랄까 규범이 엄격해보였기 때문이지요.
더군다나 평소엔 그렇게 말대꾸를 잘하고, 난리를 부리던 아이들도 그런 교사의 지시에는 아무말 하지 않고 따른 다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남아서 상담을 하고 가라고 하면 싫은 표정을 짓긴 해도 남아야 하고, '선생님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라고 하니까 속마음이야 어떻든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런데, 그런 모습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교실이라는 공간에서는 꼭 지켜야할 규범으로 오래전부터 습득되어 온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교사도 교실이라는 공간에서는 학생들에게 그런 점에 매우 공을 들여서 설명하고 또 이해시키더군요.
토론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나라처럼 따로 토론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수업이(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수업은 프랑스어 수업이었지만) 토론식으로 진행되는데, 교사는 아이들과 아이들을 중재하거나, 설명하거나 때론 같이 토론을 하는 중간 중간에 토론에서 지켜야할 예의와 형식에 대해서 그때 그때 지적해주면서 대화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법과 대화하는 법이 생활화 되어 있더군요. 이것은 제가 이태껏 살아오면서 가장 필요한 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또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특히나 부족한 것아 아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거든요.. 그게 어려서부터 이렇게 반복 연습되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되니 정말 필요한 건 수학 문제 하나가 아니라 토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다른 것은 질서있는 학교 운영방식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서 학생들과 선생님은 해야할 일과 책임져야 할 것들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고, 토론 방식도 민주적이었으며, 선생님들 끼리도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의사를 소통하는 것 자체가 질서가 있어 보였습니다. 교무실 자판기 커피 가격 인상문제로도 심각하게 토론하는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작은 것 하나하나가 모여서 조직 자체가 민주적인 조직이 되고 질서 있는 조직이 되는 것이겠죠. 게다가 학생들을 종합 평가하는 자리에까지 대표 학생들을 참석시켜서 의견을 말하고 볼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우리와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솔직히 시장통 같은 교실환경을 보면서 중학교에 계신 선생님들이 말하곤 하던 모습이 바로 저런 모습일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아마 저 같으면 몇 번이나 호통을 치고, 칠판을 두드리고 성질을 냈을지도 모를 상황인데도, '마랭'은 끊임없이 아이들을 설득하고, 또 이해시키더군요.. 그런 모습에서 제가 얼마나 모자란 교사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또 한가지 부러웠던 것은, 어느 날 문득 역사 선생님이 찾아오셔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역사 교재를 선택하고 싶은데, 프랑스어와 연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습니다. 교재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수업들을 준비하고, 또 통합적으로 이과목 저과목을 연관지어서 가르칠 수 있는, 그러다가 그 선생님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 이른바 '팀 티칭'의 자연스러운 모습... 그것도 우리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요..
중국인, 이슬람인, 백인이 한 교실에 모여 수업을 듣습니다. 오늘 교재는 '안네의 일기'
어떻든,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아이들이고, 교사는 또 그대로 교사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고, 또 엉뚱하기도 하고, 기발한 생각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하고요. 아직은 미성숙한 아이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교사이고, 교사는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요...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고 부딪칠 수밖에 없는 거고...
영화를 보고 나니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생각이 들더군요..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언젠가는 만나게될 교실 풍경이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저런 교실이 살아있는 교실이 아닌가.. (물론 마지막 부분에 '마랭'이 아이들에게 궁지에 몰리는 부분은 제외하고요. 영화를 안보신 분들은 이해가 안되실거야 아마...)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촬영은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실제 교사 경험이 있었던 원작의 저자가 '마랭'으로 출연을 하고, 등장하는 아이들도 대부분 그 지역의 아이들 중에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고 합니다. 또한, 교실 장면을 촬영할 때에는 어느 정도의 넘지 않아야할 선, 혹은 큰 틀의 테두리만 제시하고 아이들에게 자율권을 주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교실 장면은 영화 같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방학을 맞이한 교실, 의자는 뒹굴고 있지만, 밖에서는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들립니다. 텅빈 교실. 공허함.
요새, 교육에 관한 이야기들이 여기 저기에서 많이 흘러나오고 있어서 찾아 볼 것도 많습니다.
EBS에서 하는 <학교란 무엇인가> 도 봐야할 것만 같고, 한 두 해 전에 방영되었던 <최고의 교수>라는 프로그램도 좋구요. 트윗을 떠돌다 보면 요새 우리나라에서 특히나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교수의 동영상 강의도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둘째 가라면 서러운 보수주의자라는데, 이런 정통 보수주의자라면 우리 나라에도 필요한 것 아닐까요..)
학교 이야기를 볼 때마다 울컥하여서 잘 안보려고 하는데, <클래스>는 감동이라기 보단 극히 사실적인 장면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시간 나시면 꼭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선생님들께서는요.. 별 다섯 개, 강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역시 영화로 새해를 시작하고 계시네요^^
전 선생님의 입장이 아니어서일까요..체벌은 절대 반대입니다만..
귀 귀엽게 잡아당기기, 자로 머리 살짝 콩콩 때리기, 이런건 괜찮은 정도.
하이퍼텍 나다가 극장 옆으로 자주색 커튼이 있는 극장 맞나요?
예전에 갔었던 그 곳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하여간 커튼때문에 특별한 분위기가 있었는데요.
맞아요!
전엔 동숭시네마텍 이라는 이름이었지요 ^^
그땐, 자주색 커튼이 열리고 닫히고 했었는데요. 저도 그 유리창으로 보이는 장독대가 보이는 작은 정원과 꼭두인형들을 보기를 좋아했었는데..
요새는 커튼이 열리 않더라구요 ^^
잘지내고 계시죠?
안 그래도, 엊그제쯤.. '카르페디엠'님은 뭘하고 계실라나... 생각했었답니다.. 정말루요!!
반갑습니당.^^
안녕하세요. 차이와 결여님~
오랫만이네요.
가끔씩 들어와 보기는 하는데
글을 남기기는 오랫만이에요.
얼굴을 뵙지는 못했지만
한번은 얼굴을 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답니다.
왠지 궁금해지는 분이시라서요.
항상 건강하시고,
하는일 잘 되시길 바래요.
좋은 글 많이 부탁드려요.
와우~~ 'anne'님..^^
어디갔다 오셨어요~~
한동안 안보이셔서 제가 뭐 잘못했나 생각했답니다.
별일 없으신 것 같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잘지내셨죠?
새해니까 'anne'님도 좋은 일만 가득한 한 해가 되시길 바랄게요.
그리고, 꼭 글을 남기지 않으셔도 되니까.. 자주자주 오셔서 쉬었다 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올핸 저도 조금더 블로그에 충실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반가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셨나요?? ^^;
'차이와 결여'님네 아이들은 좋을 것 같아요.. 이런 깊은 생각을 하는 선생님이 계시잖아요^^
안녕하세요^^연말연시 바쁘게 지내셨나봐요. 부디 즐겁게 지내셨길 바랍니다. 좋긴요. 생각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선생인 걸요. ㅠㅠ뭐든 올해는 발전하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clovis'님도 승리하시는 한 해가 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