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없는 산 티저 포스터

오정희의 - 새

 

* 2009년 09월 04일 20시 50분

* 야우리14(천안)

(★★★★)

 

* 오정희, 새

* 문학과 지성사

 

 

  바쁘게 시작한 2학기, 그것도 9월달을 보낸지 4일이나 지났습니다.

  저는 그 4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날만큼 정신없는 시간들이었는데요....게다가 하늘까지 너무나 맑아서 좀처럼 마음을 다잡을 수없었던 터라, 4일이 마치 40일처럼 길게 생각되기도 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퇴근을 일찍 할 수 있었던 오늘이기에

  머리나 자르러갈까,

  모처럼 집에 가서 일찍 잠이나 잘까 하다가 문득, 영화를 본지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고 싶었던 <나무없는 산>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오리CGV'에서는 시간대가 맞지 않았고, 서울까지 나가자니 금요일이라 차도 밀릴 것 같아서 차라리 천안으로 다녀오자고 마음 먹게 되었지요.

  거리로 본다면 두 배는 족히 될 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천안까지 영화를 보러 다니는 이유는 막히지 않는 길이라 시간상으로는 훨씬 여유롭기 때문입니다.

 

  여튼, 여유있게 도착하여 저녁도 먹고 쾌적하고 한적한 '야우리14관'에 앉아서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앉아 있노라니 문득, 지난 8월 31일로 문을 닫게 된, 아니 더이상 그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광화문의 '씨네큐브'가 생각나서 조금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김소영'감독의 영화 <나무없는 산>은 엄마에게서 버림받게 되는 두 자매가 주인공입니다. 영화 상으로보니 언니 '진'이가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고, 엄마가 사준 공주드레스만 입고 다니는 '빈'이는 그보다 더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 어린 아이들이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고 말하며 떠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고모'네집으로 다시 '외할아버지'네 집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슬픈사연을 그린 영화인데요.

  아이들의 연기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처럼, 두 아이는 한 번도 시선을 카메라로 향하지도 않았고, 카메라를 의식하여 연기를 하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들의 얼굴에 지나가는 작은 표정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카메라는 극도의 클로즈업을 많이 보여주는데, 때로는 무표정하게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덜컥 던져진 세상 가운데서 두려운듯 큰 눈망울을 굴리는 아이들의 얼굴 속에 모든 것이 다들어있었습니다.

 

  당연히, 영화는 엄마 밑에서는 철부지 아이였던 '진'이가 서서히 동생도 챙기고, 어른들의 무성의, 혹은 가식, 거짓과 같은 모습들을 알아가면서 동생과 자신의 울타리 속으로 꼭꼭 숨어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다분이 성장영화의 한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안산 국어교사모임에서 주최하는 '열정문학강좌'의 초대작가인 '오정희'<새>라는 작품을 읽었습니다.

  무척이나 잘 쓰여진 소설이었고, 재미도, 생각할거리도 많은 작품이라 잘 읽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그 작품의 주인공도 아버지에게 거의 버려지다시피한 두 남매의 이야기였습니다.

  '오정희'님은 강연 중에 사람들에게 우리 주위에 있는 약한 존재들, 버려진 아이들 그들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을 환기하고자 작품을 썼으며, 희망적이지 못한 결말로 끝맺은 것이 가슴 한 켠에 빚으로 남아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또한 <새>를 읽으면서 그러한 암담한 사회상이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어찌할 수 없는 참담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비슷한 주제의 비슷한 내용인 <나무없는 산>에서는 그나마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무없는 산>의 두 아이들은 처음부터 편안한 자기만의 공간을 갖지 못합니다.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이지만, 아버지에게 이미 버림 받았고, 그런 가정을 꾸려나가기에 버거운 엄마는 두 아이를 보호하기엔 자신에게 얹혀진 짐이 너무나 컸습니다.

  결국 두 아이를 버리다시피 '고모'에게 맡길 수밖에 없게됩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혼자 살아가고 있는 '고모'에게도 두 아이가 기대어 쉴만한 곳은 없을 수밖에요.. 결국 세 어른에게 배신당한 두 아이는 '외할아버지'에게까지 쫓겨가게 되는데, 이미

 

  '엄마는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정도로 배신감은 깊어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인정 속에서 드디어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된 두 아이.

  이 영화는 가여운 두 아이를 통하여 눈물을 자아내는 신파극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들이 진정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보금자리 찾기'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언뜻 보기에, '테오 앙겔로풀로스'<안개 속의 풍경>과 흡사합니다만, <안개 속의 풍경>'로드무비'의 형식으로 세상에 상처입어 가는 아이들을 보여준다면, <나무없는 산>'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상처를 치유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좀더 편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영화의 마지막에 두 아이가 번갈아 부르는 노래를 들으신다면 분명히 제 생각에도 동의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때로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감정을 위로받기도 하고,

  상처를 달래기도 하고,

  많은 생각들을 하기도 하지만,

 

  제게 <나무없는 산>은 제 모습을 직시하게 해준 영화인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내용을 생각하다가

  문득 '내가 지금 서있는 곳이 어디만큼인가'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내 인생의 어디만큼에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요...

 

  암튼,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많이 피곤하기도 해서 먼 곳까지 영화보러 가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보고 나서는 정말 잘 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천사와 같은 두 아이를 만나러 다녀오세요.

Trackback Address >> http://cha2.co.kr/trackback/252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나무없는 산 2009/09/06 03:0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좋은 리뷰 너무 감사드립니다^^

  2. 카르페 디엠 2009/09/07 10:3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겠죠.
    여기 동남아의 일부 국가 아이들을 보면,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는가도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나무 없는 산은 제 딸아이와 봐도 좋을 듯한데 아쉽네요~
    그리고, 영화 포스터 옆의 사진은 '새'라는 책의 표지가 맞나요?
    꽤 오래전 책인가봐요.
    표지 디자인이 상당히 70년대스럽습니다^^

    • 차이와결여 2009/09/07 12:39  address  modify / delete

      네, 옳으신 말씀 같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제가 계속 고민하는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정말 아이들을 위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정말 가르쳐야 할 것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고민스러울 때가 너무 많습니다.

      오정희의 '새'는 1996년에 발표되었는데요. 표지가 좀 그렇죠?? ^^
      그래도 나름 피카소의 그림에서 따온 것이랍니다..ㅎㅎ

  3. 카르페 디엠 2009/10/02 22:1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한국 오자마자 이 영화 아직 상영중인가 찾아보았답니다.
    다행히 상영하는 곳이 있더라구요.
    추석 끝나고 귀여운 아이들 보러 갈려구요.
    초가을이라지만 저녁이면 쌀쌀해져 적응하느라 애먹고 있지만,
    냉면에 칼국수에 각종 나물에..먹고싶었던 음식 마음껏 먹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 차이와결여 2009/10/05 09:53  address  modify / delete

      오셨네요. ^^

      아이들과 영화는 보셨는지요...

      짧은 연휴를 끝내고 돌아왔더니, 머리가 띵한 것이 영 몽롱한 기분입니다.

      돌아오시자마자 명절이어서 바쁘셨겠어요.
      일단 푹 쉬시고, 조금씩 적응하시길.. ^^

      즐거운 한 주 되길 바랍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