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럭저럭 보내요.

<Memories - 2007.04.08 Nikon D-50, Nikon 55-200mm, ISO 200, F4.8>

 

  요즘은, 저는 그냥 저냥 지내고 있답니다.

 

  영화도 보고, 뮤지컬도 보고 연극도 보고, 대학원도 다니고, 과제도 하고, 수업도 하고, 책도 읽고, 커피는 많이 마시고...

  정말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지내고 있지요.

 

  영화는 <애자>, <해운대>, <국가대표>, <시간을 걷는 소녀>, <디스 이즈 잉글랜드> 등을 봤고,

  책은 <1Q84>를 거의 다 읽었고, 또 많은 책을 구입했어요..

  얼마 전에는, 아끼는 제자와 함께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다시 봤고, 며칠 뒤에는 학교 샘들과 <오! 당신이 잠든 사이>라는 뮤지컬도 봤는데, 전부 괜찮았어요.

 

  또,

  오샘과 함께 '이승렬', '방준석'<U&Me Blue> 콘서트에도 다녀왔지요..

  진정한 뮤지션과 그들의 음악을 듣는 다는 것이 그렇게 짜릿한 것인 줄 몰랐답니다.

 

  너무나 잘 지내고 있는데,

  블로그를 잘 못하는 이유는

 

  굳이 변명을 하자면, 글발이 서지 않아서 랍니다.

 

  본래, 제가 블로그를 하는것은 감정에 충실하게 솔직한 내 느낌을, 내 삶을, 쏟아 놓기 위함인데, 뭔가 저를 솔직해지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글을 쓰다 보면, 전과는 다르게 뭔가 감추려하고, 꾸미려하고, 때론 앞 뒤를 따져가며 어떤 형식에 묶여진 글을 쓰는 것을 느끼고 나니 더이상 글이 써지지 않더라구요.

 

  뭔가 변화가 있는 듯 한데,

  그게, 어떤 변화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요새 제가 가을을 좀 타는 듯 합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고 있어서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본래 약속이 있었던 날인데요.

  추석이 가까운 관계로, 모두들 바쁘셔서 어쩔 수 없이 혼자 놀게 되었습니다.

 

  혼자 노는 것에 이젠 익숙해져서, 그다지 외롭거나 허전하지는 않은데,

  계획되었던 일정이 사라져버리니, 좀 막막한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뭐, 그런 막막함 때문에 다들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만, 연애를 시작하면 그것에 또 푸우우욱~~ 빠져버리는 제 성격을 잘 아는 까닭에, 그리 생각하니 또 뭔가 맘에 안들고, 귀찮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여튼,

  오늘은 느즈막히 집을 나서서 강남역으로 영화를 보러 갔답니다.

  차를 분당에다 대놓고 지하철을 타고 털래털래 책을 읽으며 'Cinus 강남'으로 갔지요.

  저는 본래 강남을 안 좋아라 했습니다.

  뭔가 사람은 많은데, 참신함도 없고, 모든게 거기서 거기고, 저를 자극할 만한 것이 그닥 없기 때문이에요. 그나마 '교보문고' 정도가 제가 강남에서 들를 곳이지요.

 

  그런데, 오늘 굳이 강남까지 나가게 된 것은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Cinus 강남'에서는 '장진영 추모전'이 열리고 있었고, 오늘이 바로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상영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지요.

 

  그 영화는, 몇 년 전에 보았을 때에도, 참 맘에 들었던 영화였고, 제가 본 '장진영'의 연기 중에도 가장 좋았다고 생각했던 영화였기에, 스크린에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마침 기회가 온 것이죠.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참 좋은 연기,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뭣보다 '김해곤' 감독의 시나리오와 사실적인 이야기가 좋았지만, 그에 딱 어울리는 연기를 한 '장진영'의 연기도 정말 좋더군요.

 

  여러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니, '장진영'은 의욕적으로 출연했던 영화 <청연>이 친일논란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힘을 내서 출연을 결정한 이 영화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때문에 흥행에 참패하자 출연을 후회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연기 자체는 정말 훌륭했어요.

 

  아마도 제가 가진 배우 '장진영'에 대한 애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말 주위에 있을 법한, 하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한 사람의 지독한 연애를 그토록 진정성이 담긴 연기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포스터는 무슨 로멘틱 코메디처럼 되어 있지만, 지독히 사실적인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그렇게 '사랑'에 대한 지독한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장진영'이 연기하는 '연아'가 있는 것이지요. '김승우'가 연기하는 '영운'은 사이드 메뉴 일 뿐입니다.

 

  극 중에 연애의 끝자락을 향해 치달아 가는 '영운''연아'가 포장마차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둘은 서로의 문제를 잘 알고 있지요.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서로 미워하지 않는 다는 것도 알고 있고,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헤어져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지요.

 

  딴은 그렇습니다.

 

  처음엔,

  영원할 것만 같던 여러 가지의 일들이,

  익숙해졌다는 이유로, 혹은 식상하다는 이유로 점점 무의미해지고,

  처음엔 배려하고 이해했던 상황들이,

  점점 제약이되고, 구속이 되고, 

  그러한 상황에 짜증이 나고,

  그런 짜증을 부리는 자신에게 짜증이 나고,

  이기적 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그런 짜증을 남에게 전가하고 싶어지고,

  그렇게 서로에게 짜증을 내면서 이제는 끝내야겠다는 걸 알지만,

  이성으로만은 되지 않는게 또 사랑이고, 이별이다 보니

  헤어질 수밖에 없도록,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만 하는 거지요.

 

  그런 상황은 이별을 경험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있는 상황입니다.

  구질구질하고 더러워서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가 겪는 이별 상황이지요.

  그걸 영화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영운'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그간의 연애사실을 폭로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들이닥칠 '영운'을 기다리는 '연아'.

  어차피 남자는 아내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그렇게 밝혀봤댔자 서로 상처만 입을 뿐이라는 걸 잘 알지만 '영운'을 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성적인 방법으로 이별하기가 어렵다면, 물리적인 방법으로라도 이별할 수밖에요..

 

  그래서,

  모든 사태가 끝나고 누워서 눈물을 흘리는 '연아'의 마음을 저는 그때도, 지금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연아'의 사랑이라는 것도요..

  뭐.. 그게 옳은 방법은 아니고, 세상엔 다른 많은 이별과 방법들도 있을테지만요.

 

  여튼,

  영화를 다보고, 주제가 'Donde Voy(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까지 다 듣고 자리에서 일어서니 마음이 무척이나 착찹해졌고, 영화의 마지막을 생각하다 보니, 무언가 가슴에서 벅차 올라서, 애를 먹었습니다.아마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눈물이 글썽여지기는 처음인 것 같았는데,

  거기엔,

  저렇게 멋진 연기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도 한 몫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튼, 그렇게 영화를 보고,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타고 바깥 풍경을 보면서 분당으로 돌아왔는데,

  그만 버스를 잘못타서 내려야 할 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밤거리를 걸어오다 보니,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연인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연인은, 뭐 때문에 그러는지,

  여자는 화가 난 듯 멈춰서 있고, 혼자서 성큼성큼 걸어가던 남자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짜증이 섞인 말들을 험하게 뱉어놓았습니다. 민망해서 얼른 자리를 비킬 수밖에 없었죠..

 

  또 한참을 걷다보니,

  아마도 여자의 아파트 입구로 보이는 곳에서 남자가 코끼리 코를 하고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상황상 여자를 바래다 준 남자에게 여자가 술에 취했는데 잘 갈 수 있겠냐고 물어 본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안심시키고자 한참을 돈 뒤에 비틀 비틀 거리면서 걸어가더군요. 예뻐보였습니다.

 

  그리고, 신호등에 멈춰서서 하늘을 올려다 봤더랬습니다.

 

  영화를 보고, 각기 다른 두 연인을 만나고, 그리고 내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찌뿌린 하늘에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쓸쓸한 바람은 지나가고 있더군요...

 

  아마도, 한 껏 고무된 제 감정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일들이 전과는 달리 매우 사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랑에 관한 영화를 보고, 쓸쓸해져서 버스를 타고 거리풍경을 보고,

  이어폰에서는 노래가 나오고, 싸우는 연인과 귀여운 연인을 만나고,

  그리고 하늘엔 바람이 지나가고...

  그걸 피부로 깊이 호흡하듯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가을인 탓이겠지요.

  아마도, 제가 한 껏 감상적이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요즘 이렇게 그냥 저냥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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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르페 디엠 2009/09/21 15:2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빨간색으로 적으신 말들 제가 한 줄로 요약하자면요,
    '너를 처음 만나 마구마구 분비되던 엔돌핀이 이젠 분비가 안된다'쯤 되겠습니다.
    그러니 그 이후는 '의지'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이게 쉽지가 않죠?^^
    저에게 장진영이란 배우는 순풍산부인과에 나오던 맹한 간호사밖엔 떠오르는게 없어
    미안할 따름이군요. 추모전을 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러데 결이님은 영화를 보고난 후 한껏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 세상이 사실적으로 보이세요?
    저는 무슨 가상현실 속을 걷는 것처럼 붕 떠있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새삼스럽게 아주 이질적인 광경을 보는 듯한 느낌요.
    한시간 정도 지나면 익숙해지는데, 조금 전의 그 붕 떠있는 느낌이 좋더라구요.
    히히히히히....

    자랑하고싶어 못견디겠네요~
    10월달엔 저 느낌을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히히히히히히

    • 차이와결여 2009/09/21 21:09  address  modify / delete

      와우..
      제가 구구절절히 했던 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버리시니 민망하기만 합니다. ^^ 역시나 정확하신 표현이십니다. 역시 전 한 수 아래..ㅡ.ㅜ

      저도 매번 사실처럼 느끼는 것은 아니구요. 어떤 부분이 너무 현실적이라고 생각된 영화를 봤을 땐, 살짝 제 추억들과 겹쳐지면서 온전히 이해가 된다고나 할까요.

      바꾸어 말하면 같은 이야기 같습니다. 약간 붕뜬 느낌과, 영화 속 이야기가 사실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쩜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

      그나 저나 드뎌 돌아오시게 되는 거에요??
      괜히 반가운 걸요??

      귀국 선물 준비해야겠당.ㅎㅎㅎㅎ

  2. 카르페 디엠 2009/09/22 11:1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역시!!!!
    우리 결이님은 '마음자세'가 다르다니까요.
    간만에 한국 들어간다고하니 모두들 선물 사갖고 오라는 압박만 넣어주시는데,
    귀국선물 언급하는 사람은 딱 한사람 뿐이군요^^
    그냥 하는 말이라도 언어영역 점수 올라가는 말만 골라서 하는 결이님은
    참 '예쁜' 분이세요.
    이 글을 읽고 결이님의 실체를 아는 분이면, 썩소 날릴지도 모르겠지만요.ㅋㅋ

    • 차이와결여 2009/09/23 10:25  address  modify / delete

      ㅎㅎㅎㅎ

      누가 감히 '썩소'를 날린단 말씀입니까?? ㅋㅋㅋ

      '예쁜'분이라는 말 .. 인정하고만 싶습니다.. ^^

      오시면 댓글주세효~~ 선물 쏴드립니당~~

  3. 청향 2009/09/23 15:4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썩소 씨익~ ㅋㅋ

  4. Hyun.. 2009/09/25 00:0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썩소 하나 추가요......'-'

  5. Hyun 2009/09/25 00:1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ㅋㅋ 농담이구요..

    저도 가을을 타나봅니다.. 빙그레...:)

    • 차이와결여 2009/09/25 08:52  address  modify / delete

      오늘은 어제밤의 꿈 때문에, 우울하게 시작하고 있어요.

      가을을 타는데 큰 도움이 되는 어젯밤의 꿈..

      후후후.. 가을 한 번 왕창 타볼까요??

  6. anne 2009/09/25 17:3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늘 처음 들어와 봤습니다.
    글이 참 아름답고, 블로그도 세련되게 꾸미신것 같네요.
    음악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여명의 Try to remember
    들으려고 사이트 조회했는데
    이 사이트가 나오드라구요.
    음악 잘 듣고,
    글 잘 읽고 갑니다.
    아름다우신 분 같습니다.

    • 차이와결여 2009/09/26 00:16  address  modify / delete

      앗.. 'anne'님.. 반갑습니다.
      과찬의 말씀을 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

      우연히 들러주셨으니, 가끔 찾아오셔서 맘 편히 쉬었다 가시면 좋겠습니다.

      요새 게을러져서 글 올라오는 속도가 느릴 터이지만...^^

      답글 안다셔도 괜찮으니 종종 놀러와주세요. ^^

  7. Hyun 2009/09/26 00:1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의미없는 놀토..개천절과 겹친 추석..

    가을탈 준비는 .. 그럴듯하게 된것같습니다..

    • 차이와결여 2009/09/26 00:18  address  modify / delete

      음...
      태클 걸기는 싫으나...

      의미없는 놀토와...

      개천절과 겹쳐진 추석....

      가을타는 것과 별로 연관이 없는 것 같아요.. 훗...

      놀토와 추석이 별볼일 없어도,

      바람은 불고, 낙엽은 떨어질 것을 요...

      깊어만 가는 가을...우울해하지 말고, 즐겨주자구요 ^^

  8. anne 2009/09/26 11:5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네, 차이와 결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