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참 신기하죠?
어떤 사람과는 몇 년을 살을 맞대시피 붙어다니다가도 영영 불편한 사이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과는 짧은 추억 몇 가지를 함께 했을 뿐인데도 평생 애틋한 사이가 되기도하고요.

이번에 결혼한 사람은,
불과 2년 간을 함께 지냈을 뿐인,
그것도 제가 무지 싫어하는 군대라는 곳에서 만난
바로 윗 고참이었습니다.
나이는 같은데, 한 달 먼저 입대했다는 이유로 고참이 되었던 거죠. ㅎ
전라도 사람답지 않게 차분한 성격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는 작은 눈,
그러나 그 눈으로 웃는게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었드랬습니다.
굉장히 반듯한 성격에, 말투도 느릿하면서도 정겨운 그 사람이 나중엔 정말 친한 사람이 되었죠.

제가 워낙에 먼저 연락을 잘 안하는 타입이라 인간관계가 굉장히 협소한데,
때되면 연락해주는 그 고참 덕에 그나마 연줄을 잇고 살아왔습니다.
나랑 동갑이니까, 올해로 서른 셋,
딱 좋은 나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
결혼한다고 연락해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빛고을 "광주"까지 달려갔다 왔습니다.
그의 앞 날에 행복만이 그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여튼,
덕분에 남쪽 구경을 너무나 잘하고 왔습니다.
가는 길에 4시간, 오는 길에는 5시간이나 걸렸지만,
단풍이 어찌나 곱게 들어있던지요.
눈 안에 빨강노랑을 가득 담아 돌아왔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폰카는 포커스 잡기가 넘어려워요..



먼 길을 달려야하기에 미리 준비를 좀해갔었는데요.

'김동률' 앨범을 1집부터 5집까지 모두 모아 구운 CD와,
'이루마'의 신작 <P.N.O.N.I> 앨범을 사두었구요,
그리고 좋아하는 발라드 곡을 20곡 정도 모은 MP3

다녀오는 내내 돌려 들었는데,  단풍과, 햇살과, 노래가 너무나 잘 맞아 들어서
혼자 하는 여행길이 하나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생각도 많이 했어요.

어렸을 땐, 겉멋으로 '여행은 혼자 다니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다녔었는데요.
요새는 정말 혼자다니는 여행의 참 맛을 알게되는 것 같습니다.
낯선 곳에서 모든 것을 혼자 바라보고, 혼자 생각해야 하니까 평소 내 생각의 패턴을 알게 된다고나 할까요?
그러다보니 평소와는 다른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일단 한 번 떠나보세요~

여튼,
'김동률'의 감미로운 목소리들과, 노래가사들에 정신 못차리고 빠져들었는데,
제 경우에는 노래의 멜로디를 더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가끔 노래 가사 한 소절 때문에 필이 꽂혀버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예를 들면,

‘헤어지자
요란할 것도 없었지
짧게 ‘굿바이’
7년의 세월을 털고
언제 만나도 보란 듯
씩씩하게 혼자 살면 되잖아'


나중에 가사를 보면, 저것은 위선이고, 괜히 안아픈척 허세부리는 거고 그렇잖아요? 그런 부분,

'몇 번 씩이나 이유없이 한숨을 쉬고
어색하게 웃음을 짓고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건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요런, 내가 살면서 느껴봤던 생활의 감정?? 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루마'의 신작 앨범은요,
역시 좋습니다.
3집 이후, 여러가지로 실험을 하던 그의 음악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은데요.
풍부한 감성과 함께,
좀더 성숙하고 차가워진 느낌입니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모르겠는데요.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룬 듯한, 느낌이에요.

전의 곡들이 이미지에 의해서 노래를 만들고 곡명을 붙인 것이라면,
이번 곡들은 제목을 먼저 만들어 놓고 제목에 따라 음악을 만들었다고 하면 될까요..
미묘하지만 그런 정도의 차이가 느껴지는데요.
매우 좋습니다.
6번 트랙의 EVE, 8번 트랙의 LETTER 가 가장 좋은 듯..




그리고,
이승환 '내 맘이 안그래', 이승철 '사랑한다', 이적 '다행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주제곡', '냉정과 열정사이 주제곡'... 기타 등등의 노래와 함께 드라이브를 즐겼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라디오 '박소현의 러브게임'에서는 <베토벤 바이러스> 음악감독님이 나오셔서 클래식 소개까지 해주는 바람에 완전히 음악으로 충만한 드라이브가 되어서 너무 기쁩니다.

게다가,
멀리 광주에서 하는 터라
자칫하면 보고 싶어도 못 볼 뻔 했던 '루벤스 바로크 걸작전'을 관람할 수 있었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딱 오늘이 끝나는 날이더라구요.
10시에 개관하자마자 표를 끊고 들어가서 오디오가이드를 대여하고 느긋하게 관람을 하였습니다.
(본래 입장료가 10,000원 이지만, "교사할인"으로 5,000원만 냈어요. ㅋ 이럴 때, 덕 좀 봐아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지 출처 -http://glassyocean.tistory.com/183?nil_profile=tot&srchid=IIMCd49z00



그래서 오늘 알아낸 사실,
미술관 관람은 일요일 개관하자마자 보는 게 좋다는 것!!
제가 다 보고 나올 때가 11시 40분쯤 되었는데, 그 때 되니까 관람객이 정말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느긋하게 여유롭게 관람을 마칠 수 있었죠.

이번 전시에는, '루벤스'의 작품 20여점과 '루벤스'의 영향을 받아 꽃을 피웠던 네덜란드 바로크 작가들의 총 70여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우리가 미술교과서에서 흔하게 접했던, 정물화와 풍속화와 인물화들의 기법과 같은,
사실적인 묘사와 색채를 통해 인물들을 실감나게 그려낸 그림들이 모여있는 걸 보고선,

이제까지 제가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서양화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서양화는 바로 바로크시대의 작품들이었던 거죠.

마치 집나간 동생을 다시 찾은 것과 같은 기쁜 마음 ^^

그 때문이지 따로 모아져있던 루벤스의 작품들은 외려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물론 훌륭한 화가이지만요.
차라리 <플란더스의 개>에서 '네로'가 숨을 거두기 직전 바라보던 <성모대승천> 그림이 있었으면 감동을 받았을지도 모르는데요..

이렇듯,
뜻깊은 주말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부러우시죠? 부러우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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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버제로 2008/11/11 05:4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에픽하이의 1분1초도...
    몇마디 가사가 참 마음을 찢어지게 만들더라고요.



    우습게도 이런기억들이 아직도 날 괴롭힌다
    문득 니가 있던 농담들이 기억나고 무너진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 오늘도 날 뒤엎는다
    문득 니가 짓던 표정들이 기억나고 부서진다


    저는 들을때마다 무너지더라고요.ㅋ 김동률도 좋지만...

    • 차이와결여 2008/11/11 09:37  address  modify / delete

      우...
      노래 가사가 가슴을 찢어놓을만 한대요??

      좀전에 어디를 좀 다녀오느라고 차를 몰았는데요,
      밝은 햇살 속에서 어떤 추억하나가 스쳐지나가서

      아.. 사람이란 참 추억의 편린 속에서 살아가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었더랬죠..

      '실버제로'님이 말씀해주신 가사가 딱인데요?? ^^

      들을 때마다 무너지더라도,
      금방 또 일어서서 살아가는 게 또 우리네 삶이잖아요.. ㅋㅋ

      오래간만에 댓글 감사드려요 ^^

  2. 카르페 디엠 2008/11/11 10:3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특별한 여행길 다녀오셨네요~
    읽다가 루벤스가 나오길래 퍼뜩 '네로'가 생각났는데, ㅋㅋ 결이님도 성당의 그 그림을 생각해내셨군요?
    얼마전에 ebs에서 '플란다스의 개' 재방영을 해주었는데 보셨어요?
    그옛날 보았을 땐 그냥 슬픈 느낌뿐이었는데, 지금 이 나이에 다시 보니 추악한 어른들의 이기심이 어찌 그리
    생생하게 묘사되었는지..그림 보는것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는 성당의 신부를 포함한..
    마지막회를 엉엉 울면서 보는데 정작 8살 우리 딸은 슬프지도 않은데 왜 우냐며 막 짜증을^^;
    쓰고 보니 포스트의 주제를 완전히 벗어나 네로이야기만 냅다 주절거렸네요

    • 차이와결여 2008/11/11 13:25  address  modify / delete

      앗! EBS에서 그런 것두요?? 아.. 정말 좋은 방송입니다.

      그런데, 제가 TV를 멀리한 지가 꽤 되어서요.. 딱히 볼 수 있는 시간도 없구요.
      확실히, 어렸을 땐, 막연히 슬프기만 했었을 텐데, 지금 보면 그런게 느껴져서 화가 나기도 하겠군요.

      아까 점심시간 때에도 학교 선생님이랑 '7살 딸내미'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 아이들이 참 빠르다고 이야기 했는데..
      '카르페 디엠'님 이쁜이도 그런가 보네요 ^^

      아.. '카르페 디엠'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플란다즈의 개>가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흑흑..

  3. 민들레 2008/11/11 17:4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우와~
    저두 오늘 하루종일 에픽하이 노랠 들었더랬어여...

    정말 마음을 아프게 하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