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상처 없는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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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없는 영혼
* 공지영, 푸른 숲


  1996년에 출간 되었던 산문집입니다.
  내지에 있는 그림은 '백순실'이라는 분이 그리셨더군요.

  산문집의 구성은 총 5장으로 되어있는데요.
  1. 홍콩으로부터의 편지
  2. 일본으로부터의 편지
  3. 나를 꿈꾸게하는 그날의 삽화
  4. 내 마음 속의 울타리
  5. 소설을 쓰고 싶은 그대에게
  라는 제목을 걸고 있습니다.

  1장과 2장은 두 번째 이혼의 아픔을 겪고 혼자 서는 방법을 찾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여행했던, 홍콩과 일본에서의 느낀 점들을 독백하듯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0년 전이기도 하고, 이 후 한 번의 결혼을 더 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기 완전하게 자신의 모두를 벗어내지 못한 것 같아서 꽤 아프게 읽힙니다.
  2장까지의 분량이 3분의 1쯤 되는데요.
  읽는 내내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 알 것 같아서 읽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내 인생 만 33년하고도 4개월 동안...... 그래,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진정한 자유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고, 때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깨닫지도 못하면서 저지른 일들...... 내가 준 상처들......
  그러니 이제 남은 33년은 그것을 수습하면서 보내야 하리라는 생각...... 그것이 설사 내가 예전에 생각하던 행복과 거리가 먼 것이라 해도...... 나는 너무 많은 일들을 저질렀고......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음을 깨달았습니다. 언제까지고 말썽꾸러기로 남아서 사람들에게 놀라운 구경거리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내가 나의 인생 초반에 저지른 일들을 수습하는 동안 만일 나에게 남은 복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받으면 좋고 받지 않아도 하는 수 없으리라는 생각...... 나의 이 생각이 확고해지기를...... 부디 오래도록 남아서 내 마음의 대들보가 되기를......
(p.98~99 - 내가 사랑이라고 이름 불러주었던 집착을 이제 떠납니다. 中)


  3장은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들이 많이 나오는 편이기도 하고, 지인들과 여러 가지의 생각을 나누는 장면들,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당부 내지는 조언 정도의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물며 그것이 핏줄을 나눈 부모나 자식 사이도 아닌 생판 딴 데서 자라나 눈 한 번 맞춘 일밖에 없는 남녀 간에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거의 신비에 가까운 축복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사랑이라는 것은 참으로 드물더군요...... 그것은 사람들이 악해서라기보다는 약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약해서 가끔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멋지게 속여넘기는 일도 모르거든요....... 사랑은 결코 상처를 주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상처받았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요.
(p. 163 - 사랑이 아니었던 것일까요 中)


  4장은 여성학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요 내용을 이룹니다. 자신이 가진 여성에 대한 관점.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남성중심주의 이러한 내용들을 '공지영'특유의 직접화법을 통해 고발하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5장은 자신이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라고 할만한 일들을 몇 가지 소개하고 후배 보이는 한 사람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소설과 소설 작법에 관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 긴 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생활이 조금 여유가 있어지면서 시장에 가서 예전처럼 주머니의 동전을 걱정하면서 반찬을 사지 않아요. 이것이 제게는 고민입니다. 모두가 힘겨워하는 것을 같이 느끼고 싶은데 내가 오히려 점점 멀어지는 건 아닌가 싶고...... 저는 제가 그저 머리를 굴리면서 소설을 쓰게 될까봐 그게 가장 두렵습니다. 예술가라는 것은 문인들이 모이는 카페에 앉아 술을 마시며 인생을 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삶의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p.277~278 - 소설을 쓰고 싶은 T후배에게 中)


  저야 말로 요즘 '공지영'에 대해서 집착을 하고 있는데요..
  가만히 생각해봤더니,
  다른 분들이 '공지영'에게 끌리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는 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녀의 쉬운 문체, 저 역시 작게나마 글을 쉼없이 쓰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독자로서 필요없이 어렵게 쓰는 글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면에서 작가와 생각이 일치하고요.

  그녀의 솔직 담백한 태도,
  아마 그건 그녀가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상처 받은 사람들은 잘 알지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자신을 숨기면 숨길 수록 더 상처받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왕 받을 상처라면 죄책감이 들지 않도록 자신을 솔직 담백하게 보여주고 상대가 판단하도록 만드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그런 면에서도 역시 '공지영'과 저의 태도가 비슷합니다.
  그리고 사실 살아가면서 감추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나는 그저 나일뿐인데 말이죠.

  이런 면에서 자신의 아픔이나 고민에 대해서,
  혹시 남들이 우습게 보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도 글로 풀어내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 그런 마음을 이해하다 보니,
  그녀에게 끌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글들은 조금 덜 다듬어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앞의 두 장은 최근 발간된 <괜찮다 다, 괜찮다>의 생각보단 정리가 덜 된 듯 하고,
  나머지 세 장의 글들은 다소 신변잡기적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감동 받을만한 삶의 통찰이라고도 볼 수 없어서 그저 밋밋한 정도의 에세이였습니다.

  아마도 요즘처럼 "공지영"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지 않았다면 읽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 책을 가방에 넣어 다니던 중 만난,
  버스 옆 자리에서 똑같은 책을 읽고 있던 한 여성분이 강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때가 날이 화창한 낮이었는데,
  저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듣고 있었고, 그 분은 제 옆 옆 자리에서 가만히 글 하나를 읽으시고는 한 참 동안 책을 무릎위에 내려놓고 눈을 감고 계시다가 다시 한 장을 읽고, 이런 식으로 깊이 공감하시면서 읽는 듯 싶었습니다.

  아마도 제게는 부족한 어떤 감성을 가지신 분이겠지요.
  그렇게 곱게 곱게 이 책을 읽으신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냥 그랬습니다.

  어서 빨리 <즐거운 나의 집>을 읽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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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클라리사 2010/07/23 20:0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용기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편안해보여서 좋던데요.

    다듬어지지 않은 책이라 저도 생각했는데,
    새 옷 입고 나온 거 보면(제가 갖고 있는 건 표지가 다르거든요)
    꾸준히 읽히는 가 봅니다.
    좀 거친 그대로 솔직한 그대로가 또 매력인가 봐요.

    • 차이와결여 2010/07/23 21:14  address  modify / delete

      네, 저도 동의해요.
      용기있는 것도 맞고, 요즘 편안해 보이는 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오히려 독자들도 편안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거 아닐까 싶어요..

      요 근래 발표했던 몇 편의 소설과 에세이가 좋은 평을 얻고, 조금 새롭게 평가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서, 그 힘으로 모든 책들이 재간행되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