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pa Village> Fuji Finepix S5Pro+Nikkor 18-55mm, ISO 1000, F5
분명히 누군가 말한 것도 같지만,
산다는 것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일 뿐 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하루도 자명종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날까 말까를 망설이며 결국 일어나기를 선택했고, 학교에 등교하여 수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을 때에도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뒤로 미뤄야하는지를 선택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방학 동안 잔뜩 풀어져있던 탓에, 학교에 나간 시간이 겨우 4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몸은 고단하여, 퇴근 길에 미리 부모님을 찾아뵙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할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부모님을 찾아 뵈었고, 어머님이 차려주신 맛있는 밥을 먹고 뒹굴다가 받은 'BBQ 양파닭' 문자를 보고는 저녁에 '치킨'을 시켜먹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려는 찰나, TV 드라마에서 '배추된장국'을 해먹는 걸 보고는 또 나도 내일 아침에는 '배추된장국'을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마트에 들러 이러저런 재료들을 구입하였으며 장보기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는 도중에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팔고 있는 '오뎅'을 사먹을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섰다.
결국, 이러저런 일들로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리기도 하였고, 저녁 먹은 것도 소화가 되지 않아서 '치킨'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이렇게만 나열해놓고 보아도 오늘 하루 나는 작게는 수십번, 많게는 수백번이 넘는 선택들 속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혹은 어떤 욕망을 충촉하고 어떤 욕망을 참아야할지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했었던 것 같다.
물론 선택에도 중요도와 선택 뒤에 따라오는 기회비용에 따라서 나름의 등급이 매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했던 선택 들은 얼마 만큼의 가치를 가지는 선택이었을까...
나는 여지껏 나름 선택을 잘 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도 같다.
당연히 하나를 선택하면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 것이고, 그런 아쉬움들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하는 것인데, 때론 잘못된 선택으로 오랫동안 슬퍼하고 아쉬워했던 적들도 여러번이다. 그런 아쉬움들이 쌓이면 쌓일 수록 다음의 선택을 위한 고민의 시간은 길어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시간들을 '성숙'이라는 말이나 '신중함'이라는 말로 표현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선택 뒤에 느끼게될 아쉬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합리화하거나 미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은 미숙해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앞뒤 가리지 않고 하나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사람들이나 빛나는 청춘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볼 때, 그것이 자기합리화는 나의 말은 긍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큼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들은 모든 걸 계산하고 예측하고 실행했을 때보다, 앞만 보고 무식하게, 하지만 열정적으로 임했을 때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한 것만 같아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슬퍼지고 말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이미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하여 앞만 보고 뛰어들기에는 너무 영악해져버렸다. 열정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열정적이라는 말보다는 믿음직하다는 말을 듣길 바란다.
내가 이토록 '선택'이라는 말에 빠져들게 된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분명히 몇 주 전에 봤던 '선' 때문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날의 선택에 대한 문제라기 보다는 "왜, 아직도 나는?" 이라는 문제에 가까웠다.
'왜, 아직도 나는 이러한 문제로 고민을 해야만 할까.'
사실,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들 중에 가장 아쉬움이 남았고, 아파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은 누군가를 받아들이거나, 누군가의 곁을 떠나겠다고 선택했을 때 였다.
당연히,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어야 할 것도 있었고, 떠나지 말았어야, 혹은 더 잘하는 것을 선택했어야 할 경우도 있었다. 결과야 어떻든 그 당시에는 수없이 고민하고 번민한 끝에 결정한 선택이었지만, 항상 삶이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최소한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많은 기회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그 중 3분의 1 정도는 선택을 했었고, 남은 반 정도는 선택을 포기했으며, 나머지의 경우에는 굳이 선택을 보류했었다.
선택했던 경우에는 행복하기도 했고, 죽을 만큼 힘이 들기도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만약에 그 만남들의 최종 결과를 '결혼'이라는 것으로만 국한 한다면 모두 실패한 것이지만, 나는 그 끝이 '결혼'이라고 믿지는 않는 사람이다.
선택을 포기했던 경우는 대부분 바로 관계가 끊어지게 되고 말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고 말고 할 여지가 없다. 기억에서 지워졌다.
선택을 보류한 경우에는 결국 어떻게든 관계는 이어지게 되어있어서 약하디 약한 끈이나마 연결되어 있고, 대부분 좋은 관계들이 되어서 생을 함께 해나가고 있다. 가끔 그들을 만나고 나서 돌아올 때는 '그때 만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에 아마도 가장 아쉬움이 많은 경우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젠 과거는 '과거대로 덮어두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여튼, 결과적으로는 나는 아직도 같은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똑같은 고민들을 해야만 할 것이다.
이사람을 선택해야 하는 건지, 이 만남을 시작해야 하는 건지, 혹은 내 마음이 맞는 건지 등등등...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또, 여러 가지로 복잡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조금은 한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사는 것이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이것저것 들을 선택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다만 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미뤄두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래, 주인공은 맨 나중에 나오는 법이고, 클라이막스는 뒤에 오면 올수록 감동이 더해지는 법이니, 어쩜 내 생의 클라이막스는 남들보다 조금은 더 반짝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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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말미에 보인 '희망'의 여운이 왜 나는 애처롭게 느껴지는가?^^
결이님이 생각하는 그 '인생의 절정기'라는게 뒤돌아보면 매일 먹는 끼니 중
하나...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라는...
기억하시나요? 한 때 광화문에서 휘날렸던 문구,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것을.
좀 늦은 아침을 먹을건데, 혼자 먹기 위해 대충 차린 아침이라 마당에서 꽃이라도 따서
밥 위에 올려놓아야 저 문구에 감정이입이 될 것 같습니다 ㅠㅠ
아이 참.. 길잃은 어린 양이 어떻게든 살 힘을 찾아보려 하는데, 꼭 '애처롭다'고 하셔야겠어요?? ^^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마음에 달린 일이고, 결국은 순간 순간이 모두 '인생의 절정기'라는 말씀이잖아요..
다 아는데, 아는 것과 바라는 것은 다른가 봅니다.
제가 아직은 욕심이 많은 가봐요. ^^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은 제 친구 메신저 대화명이기도 해서 친숙한 말인데.. 헤헤...
혼자 드셔도 최고의 식단을 차려서 맛있게 드세요.
'카르페디엠'님은 그렇게 하셔야만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