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진

<비온 뒤> 2010.07.19 S5pro+Nikkor 18-55mm, ISO 100, F22





  오늘은 보충을 하러 일찍 학교에 나갔습니다.
  본래는 훨씬 더 일찍 가서 몇 가지 잡무를 처리하고, 여유있게 아침을 맞이할려고 했는데요...
  방학이라는 생각 때문에 조금 게으름을 피웠더니, 역시나 겨우 지각을 면하는 정도로 출근을 하고 말았네요.
  가는 길에 MP3 플레이어에 담겨 있는 노래들을 랜덤으로 들으면서 갔는데, 랜덤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좋은 선곡이더군요.. ㅋ
  그 중, 오래간만에 듣게 된 노래가 '루시드 폴'<물이 되는 꿈>이었습니다. 지금 배경으로 깔리고 있는 이 노래요..

  가요계의 음유시인이라고 불리우는 '루시드 폴'이긴 하지만, 정말 이 노래는 한 편의 시와 같다는 생각입니다. 정말 좋다고는 생각하는데, 과연 이 노래의 가사를 외울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물'이 비가 되기도 하고, 꽃이, 풀이, 바다가, 파도가, 하늘이 되기도 하면서 다시 물이 된다는 내용인데 ㅎㅎ 생각해보면 전부 물이 없으면 안되는 것들이니까 일면 맞기도 한 듯 합니다. 노래를 계속 듣다보면, 별도 되고 달도 되고, 흙도 되는데요. 도대체 어떤 연상작용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건지 들을 때마다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지만, 암튼 저는 이노래를 좋아한답니다. 그리고, 잘 만들어진 노래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비슷한 음과 비슷한 가사가 반복된다는 면에선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걸그룹들의 '후크송'가 다를 바가 없지만, 얼마나 철학적이고 멋있어요.. 헤헤..

  여튼, 그렇게 노래를 잘 들으면서 출근했다가, 열심히 수업을 마치고, 내일 가르칠 부분들을 보는데 그만 이런 시가 나오는 거에요.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혀 있던 여한도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다.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셔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연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 마종기, '물빛1'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한 편으론 좀 애틋했고, 또 한 편으론 좀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물이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말에 지인을 만나서 사주팔자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었더랬는데, 혹시 오늘은 내가 물과 가까이 하게 되는 날이 아닌가 싶어서, 집에 돌아와서 물도 벌컥벌컥 마셨드랬습니다.

  여튼,
  작년인가 '루시드 폴''마종기' 시인이 2년 간 서신을 주고 받았던 것이 책으로 엮어져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책을 읽어보진 못해서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시와 노래가 무관하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

  어쨌든, 문제집이나 교과서를 가르치다가 정말 좋다고 생각이 들거나,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들을 만날 때면 한참을 흐뭇해하고는 하는데,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루였네요.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린 뒤라서 그런지 하늘도 참으로 푸르고 구름은 하얗다 못해 눈이부시더군요.
  덥지만 않으면 참으로 좋을텐데요...

  오늘 복날이었죠? 어째.. 삼계탕이라도 한 마리씩 드셨나 모르겠습니다.. : D

Trackback Address >> http://cha2.co.kr/trackback/30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괜찮아 2010/07/19 23:2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마종기님의 시가 문제집에 나온단 말씀이신가요? 와...
    참, 그 책은 <아주, 사적인, 긴만남>입니다.
    그다지 긴호흡의 글들은 아니니 이번 여름 짧은 휴가길에 들고 가실 것을 추천해봅니다. ^^

    • 차이와결여 2010/07/20 08:06  address  modify / delete

      ^^ 그렇찮아도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더랬는데요.이렇게 추천을 받았으니, 휘둘러보고 사야겠습니다.

      저는 어디로 짧은 휴가를 떠날까요.. 계획했던 지리산 등반도 쫑났고, 통영이나 갈까나..ㅎㅎ
      올해는 스펜으로 가시지요? 역시나 이번에도 건강히 다녀오시구, 비우고 가서 가득 담아 오는 멋진 여정이 되시길 바랄게요 ^^

    • 괜찮아 2010/07/20 21:03  address  modify / delete

      통영, 좋습니다.
      영화 <하하하>를 봤다면 괜히 더 좋을 거구요. ^^;
      하루 소매물도 들어갔다 오시고,
      통영 시내 하루하고 반나절 천천히 보심 좋을 듯 합니다.
      동피랑 마을, 미륵산 케이블카, 달아 공원까지...
      캬.. 생각만 해도 정말 좋네요, 좋아.
      통영의 바다는 비린내 없이 그저 맑고 반짝거리더라구요.

  2. j 2010/07/20 08:3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사주팔자에 능한(?) 지인은 그 책을 읽었는데 남자 둘이 그런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생각하니 새롭던데요..ㅎ 워낙 감성이 뛰어난 사람들이라 그런가..
    여튼..넘 더워요..ㅜㅜ아

    • 차이와결여 2010/07/20 11:26  address  modify / delete

      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네..
      나는 계속 망설였는데,

      아마도, 책을 읽고 실망할까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여튼,
      진짜 너무 덥다..땀냄새 작살..ㅠㅠ

  3. 클라리사 2010/07/23 19:3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마종기 시인의 오랜 팬이었다고 하니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요?
    물처럼 스며들어...

    정 안드는 외국어 사이에서 루시드폴 귀에 꽂고 앉아 있으면
    정말 천국이에요~ 몸과 마음이 다 맑아지는 느낌.

    • 차이와결여 2010/07/23 21:11  address  modify / delete

      깜짝 놀랄만큼 정말 많은 분들의 추천으로 뒤늦게 구입했습니다.
      시가 노래같고, 노래가 시 같은... 원래 같은 건가요?
      여튼 기대가 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몇몇 해외에 계신 분들은 모두 '루시드 폴'을 좋아하시드라고요. 아마도 우리말의 음악성을 제대로 살린 서정적인 노랫말들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낮고 맑은 목소리를 포함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