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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시 반에 나는 책을 덮고 다방을 나와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이런 일요일을 앞으로 몇십 번, 몇백 번 겪게 될 것인가, 하고 문득 생각했다. '조용하고, 평화롭고, 고독한 일요일' 하고 나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일요일에는 나는 태엽을 감지 않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p.333)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책 <상실의 시대> 에서 제일 좋아라하는 구절입니다. 저는 오늘과 같이 아무일도 없이 하루 해가 저물어 밤이 되면 꼭 저 구절이 생각나고는 한답니다.

  사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어제, 일 할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토, 일요일에 걸쳐 나눠서 할려고 했는데, 그만 어제 초저녁부터 자버렸지 뭡니까...
  TV도 틀어놓고, 베란다 문도 다 열어놓고, 뒹굴거리며 자다가 서늘한 기운에 일어나서 문 닫고  또 자고, 어두워져서 불 켜놓고 정신 차리려다, 불켜놓은 채로 또 자버리고.. 그렇게 새벽 1시 50분이 되어서 정신을 차렸답니다..
  정신은 차렸지만 어쩌겠어요. 또 자야죠 ^^

  그래서 오늘은 아침 7시부터 정신이 들었네요. 원래 일요일은 그렇게 일찍 일어나면 안되는 건데요. 그쵸?  어쩔수 없이 9시까지 빈둥거리다가 아침을 챙겨먹고 일을 시작해서, 바로 좀 전에 끝냈습니다.
  물론 점심, 저녁 먹느라 잠시 쉬기도 했고, 잠시 밖에 나갔다 오기도 했습니다만, 하루 종일 컴터 앞에 앉아서 이게 뭐하는 짓이랍니까 ^^

  그래도, 오늘 좀 해놓아야 담 주 내내 편할 거니까요.. 빨리 마무리가 되어야 방학이 오니까요.. ㅋㅋ

  아.. 정말 이렇게 혼자 있다 보면, 말이라는 게 무슨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하고 사니까요.. 오늘은 다행히 학교 선생님께 전화 한 통, 어머님께 전화가 한 통 와서 그나마 몇 마디 했는데요. 워낙에 제가 용건만 간단히라.. 총 대화 시간은 5분을 넘지 않을 것 같습니다..ㅎㅎ

  사실, 오늘은 머리도 감지 않았구요.
  샤워는 더더욱 하지 않았답니다.
  이런 날, 누가 불쑥 방문이라도 한다면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겠지만, 저는 거의 '히키코모리' 처럼 살아가고 있으니, 누가 찾아올 일도 없죠.. 대신 아주 편합니다..
  이런 일요일이 한 달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데, 굳이 이런 날도 아침부터 머리를 감고 그러면 어딘가 나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왠지 손해보는 느낌이랄까요... 어쩌면 단순하게 제가 드러운 걸 좋아하는 지도 모르죠.. ㅋㅋ

  오늘 하루 종일 머리도 감지 않고 일을 하면서
  '이아립''공기로 만든 노래'를 걸어놓았는데요. 노래 분위기가 아주 좋습니다.
  최대한 가벼운 느낌으로 일렉트릭 악기도 배제하고 만든 노래인 것 같은데요.
  전체 노래의 가사에도 '바람'과 같은 단어가 많이 나오기도 해서 편하고, 노래도 힘주어 부르지 않고 속삭이듯, 읊조리듯 불러서 듣기 좋으네요...정말 바람이 부는 것도 같고, 옆에서 불러 주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더운 여름 날에 수박 한 조각 먹으면서 물에 발 담그고 들으면 딱 좋을 노래 인 것 같아요.
  진작에 구해놓고 몇번 들었을 땐 별로 였는데, 지금 들으니 참으로 좋습니다.
  원래, 오래도록 좋은 노래가 진짜 좋은 노래죠..

  그래서 저는 남들 다 듣는 히트곡들도, 한 반년 쯤, 혹은 일 년 쯤 후에 들어보고 좋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아무도 안좋아할 때, 좋은 노래가 진짜 좋은 노래라는 생각에서요. ^^

  하루 푹 쉬고 났더니,
  좀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는 것도 같습니다.
  뭐가 복잡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간단하게 '외로웠'나 봅니다. 좀 외로워서 우울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고, 나 스스로를 비판하고 꾸짖고 해보았는데요. 자꾸 하면 할 수록 내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모든 걸 놔버리기로 했습니다.
  욕심도 버리고, 될런지 안될런지, 혹은 할런지, 못할런지 이런 생각도 전부다요.
  머리를 비우는 것이 제대로 된 답인 것 같아요.
  그냥 나만 생각하고 살면 될 것 같네요..
  아직도, 이렇게 허약해서야.. 원.....

  갑자기, 한 친구가 보고 싶었습니다. 연락도 안되는 그 친구가요...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아~ 내일은 좀 덜 더웠으면 좋겠네요..
  시험 감독하느라 서 있는데, 어찌나 덥던지... ^^

  나긋나긋한 노래와, 나긋나긋한 주말 끝자락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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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lovis 2010/07/07 18:0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나긋나긋' 너무 예쁜 단어인것 같습니다 ^^
    날씨가 덥기는 하지만, 바람이 부니까,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특히 새벽에 일어났을 때 불어오는 바람의 느낌은.. *^^*

    • 차이와결여 2010/07/09 14:17  address  modify / delete

      아.. 이제서야 답글을 다네요..

      새벽에 일찍 출근을 하시니, 바람을 느끼시나봐요..

      저는 차를 갖게 된 이후로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는데, 그 중에 시원한 '바람'도 잃어버렸네요...

      언제 시원한'바람'을 느껴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흙흙...

      '흙흙'은 너무 귀엽죠? ^^ 흙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