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다 겉표지>
* 운명이다
* 돌베개, 노무현재단 엮음, 유시민 정리
아직도 그날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는 한참이나 시끄러운 세상의 중심에 있었고, 누가 보더라도 이미 지칠대로 지쳐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때는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때는 옆집에 사는 사람처럼 평범해서 아무런 힘도 갖지 못했지요. 그래도 세상에 도는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처럼 누군가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와 똑같은 전철을 받았던 사람들도 한 번씩은 거쳐가는 길이었기에 조금은 시니컬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숱하게 많은 어려운 상황들을 당당하게 정면돌파하면서 헤쳐나왔던 사람이기에 그 때 그가 겪고 있었던 어려움 정도는 별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던 그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믿을 수 없었던 일이었고, 인정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추측들과 음모론이 세상을 어지럽게 했고, 저 또한 아닐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젠가 썼던 것처럼 저는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도 않았고, 어떤 부분은 분명하게 비판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불쌍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죽일만큼 미워서도 아니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온 나라가 슬픔 속에 얼마 간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복수를 해야한다고도 말했고,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도 말했고, 영원히 사랑한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죽음이 하나의 지표가 되어 그의 죽음 전 세상과 죽음 후 세상은 뭔가 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어느 덧 시간은 흘러 1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 뒤늦게 그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인터뷰를 읽고, 그가 쓸려다가 못썼다는 책을 찾아 읽고, 그에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래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습니다. 왜 내가 그를 잊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서전이 발간되었습니다. 일단 사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책 역시 별다를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서가에 꽂혀 있던 그 책을 그제 꺼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덧 그의 1주기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전과 달리 세상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벌써 잊혀지는 건지, 시끄러운 상황 때문에 묻혀진 건지, 선거 때문에 의도적으로 외면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넘어 갈 수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주기 추모식이 '봉하마을'에서 열린다고도 했고, '서울 시청'에서도 열린다고도 했습니다. 국민장 때도 가지 않았던 터라 내려가봐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질 않아서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대신 자서전을 읽기로 했습니다.
노무현재단에서 자료를 모으고 '유시민'이 쓴 그의 자서전은 여느 자서전처럼 '일대기' 형식입니다. 당연히 그의 유년시절의 가난과 입지전적 성장과정, 그리고 민주투사로서의 모습, 대통령 당선, 대통령으로서의 국정과정 등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전부를 믿지는 않았습니다. 자서전이라는 것이, 특히 우리 나라의 풍토상 최대한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부정적인 면을 감추려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사실이라 믿을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내용들은 알고 있었던 내용이고 어떤 것들은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었습니다. 편자 '유시민'은 내용을 간결하고 분명하게 정리하고 있어서 이해하기도 쉬웠습니다. 문투도 이제까지 그가 발표했던 글이나 말투를 옮겨 놓은 듯 세심하게 배려한 부분들도 보였습니다.
자서전의 내용을 다 읽고 뒷부분에 편자 '유시민'이 덧붙여 놓은 '에필로그'를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부분은 이런 내용입니다.
그가 이승의 마지막 잠을 혼자서 청했던 시각, 나는 제주도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혼자서 마지막 글을 수정해 컴퓨터에 다시 저장하고 봉화산 돌계단을 걸어 올라갔던 그 시각, 나는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텔레비전 속보를 보고 누군가 전화를 하기 전까지, 나는 그가 떠났다는 사실조자 몰랐다.
(p.345)
엎드려 읽느라 가슴을 받치고 있던 베개 위로 눈물이 투툭툭 떨어져 흘러내리다 이내 글자가 안보일 정도로 흘렀습니다.
그날의 기억들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그날 받았던 충격과 격앙된 감정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그제서야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그를 마음 속 깊이 믿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자신은 변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그의 말과 원칙은 어길 수 없다는 말을 믿었습니다.
그가 이라크에 파병을 할 때도, 한미 FTA를 체결하려할 때도, 그러면 안된다고 비판은 했지만, 어쩔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 과정에서 자신 스스로를 배반하거나 남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았으리라고 믿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상황은 변했지만, 자신이 처음 다짐했던 '원칙과 소신', '사람다움에 대한 희망' 만은 버리지 못했던,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모습은 바로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설사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다해도 절대 버릴 수없는 것 하나.
그 하나를 지키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가는 것은 특별나지 않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한 때는 잘나가는 변호사였고, 잘나가는 민주투사였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그가 우리와 똑같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다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부당한 권력 앞에 무너진 것은 단순히 한 정치가의 자살이라고 보기에는 상징하는 바가 컸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살아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아직은 들을 말이 더 많고, 배울 것이 더 많았는데, 좀더 있어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살다보니,
늦기 전에 했어야 할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생각입니다.
늦기 전에 만났어야 할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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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제도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추모하고, 눈물을 흘리던데요.
상황은 점점 이상해지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네.. 여러 모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상황이 이상한 곳으로 갈수록 더욱 생각나겠지요.
방법은 없고,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투표를 잘하는 것밖에요..
최선은 없더라도 차선을 택해야겠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