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마지막 포스팅이 5월 31일 이었으니, 무려 보름만...
  생각나는 대로 두서 없이 정리해보자면,

1.

  이번 학기 대학원 수업이 종강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과제가 마지막에 주어졌던 관계로 허걱 대면서 마무리하고 제출했던 기억.
  아무리 생각해도 본래 내가 하고자 했던 공부는 이게 아니었는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도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 건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확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의 모습...
  다음 학기에는 논문을 쓰고 어떻게든 졸업이란 것을 하게되겠지만, 진정한 공부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닌지...
  아직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대학원을 다니면서 얻은 최고의 소득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반성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결론은.. 여전히 오리무중...


2.

   어머님께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병으로 수술을 하셨다.
  집이 이사('차이와 결여'네 부모님은 화원을 하십니다. 이사가 매우 오래걸림)를 가게 되어서 가족 모두가 정신이 없었는데, 덜컥 어머니까지 몸져 누우시게 된 것이었다.
  그 얼마 전에는 아버님께서도 과로로 힘들어하셨고, 같이 일하는 동생 녀석도 나날이 야위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야자 없는 날 저녁 때 찾아뵙고 영양보충이랍시고 고기나 구워드리는 것이 전부인 내가 참 한심했었다.
  그러다 어머니까지 입원을 하시니, 다들 홀아비 신세가 되었다.
  나야 원래부터 그랬다치고, 제수씨는 친정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일찌감치 친정으로 가있던 상황이라, 집에는 아버지와 동생만이 남아서 어머니 병수발에 이사 준비에, 말이 아니었다.
  나도 틈나는대로 어머니께 가보았지만,
  큰 아들로서 결혼도 못하고 아버지와 동생에게 설은 밥을 먹어야만 하는 내 자신이 무척이나 하찮게 느껴졌다.
  다행히 어머님은 거의 완쾌하셔서 통원치료도 가능해지셨고, 내일이면 퇴원.
  시간이 갈수록 나보다 작아져만 가는 부모님의 모습에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알면 잘해야 하는데...어쩌지 못하는 내가 더 한심.

  어쩔수 없이 반 아이들과 약속했던 '상담'은 2학기 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3.
 
  오늘 아이들이 나에게 "선생님 참 개구장이 같아요"라고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양 팔을 어깨 위로 올리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녀석이 "제 오빠보다 더 개구장이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네 오빠가 몇 살인데?"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고3이요."

  그 이야기를 듣고, '과연 그런가?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을 하다가
  얼마 전에, 후배녀석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 생각났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나라는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신경쓰였다.
  정확히, 신.경.쓰.였.다
  나는 평소에 남들의 시선은 최대한 신경쓰지 않고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편이고(물론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 때문이었다.

  처음 상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애들끼리 돌렸던 롤링페이퍼에 '잘난 척 한다'는 이야기가 과반이 넘게 나왔던 것이었다. 어렸지만 그 당시에 받았던 충격은 너무나 커서 그 롤링페이퍼들을 2년 넘게 다락방에 숨겨 놓고 몰래 꺼내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는 남들 앞에서 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잘 커왔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오고 연애를 시작하고 나니, 또다른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바람둥이'
  음..
  물론, 나는 평범한 남자이고, 남자이다 보니, 여자를 좋아하고, 당연히 남자보단 여자를 좋아하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그런데, 나에게 '바람'의 기질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이 여자, 저 여자들에게 모두 잘해줘서'라는 이유를 말했다.
  허걱...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이 비난의 이유이라니...그건 내 삶의 방식 전체를 뒤흔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냥 한 사람만 있으면 되지, 이 사람 저 사람을 필요로 하는 성향도 아니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고 싶었으므로 '바람'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들이 보기에는 나의 '친철''배려'가 여자친구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잠시 고민하고 그냥 있는대로 살면서, 남들이 뭐라하는지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도 내 20대는 항상 곁에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녀들하고만 지내면 되므로 가끔 비슷한 이야기가 들려와도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싱글이 되고나니 이젠 또 문제가 달라졌다.

  이성이건 동성이건 그냥 사람으로 대하고 싶은데, 그리고 그런 나이도 됐는데, 솥뚜껑보고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 것 같아서,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지내는 것 같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렵지 않게 친해질 수 있는데, 그들로부터 '결혼하셨어요?'(아, 슬푸다. '여자친구 있으세요?'라는 말보다 '결혼하셨어요?'라는 말을 듣는 빈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현실..)라는 말을 듣고 난 후부터는 스스로 모든 행동을 생각해보게 된다.

  '혹시,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이거 오해받을 행동 아냐?'


  몇 년간의 의식적인 연습을 통해서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흔적은 남아서 가끔씩 불쑥불쑥 생각날 때마다 드는 깊은 자괴감...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비록 큰 아픔은 아닐지라도 나도 이래저래 상처를 많이 받고 살아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우울해졌다.


4.

  이제 또 기말고사 시험기간이다.
  시험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데,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서, 포스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시 출제의 바다로 빠져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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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괜찮아 2010/06/15 22:3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시험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데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 사람 여기 또 있습니다.

  2. clovis 2010/06/15 23:2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드디어 포스팅을 해주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ㅎㅎ

    롤링페이퍼...제가 초등학교때 받은 롤링페이퍼에는
    얼음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저로 추정되는 아이가 올라가 있답니다^^;;
    차갑다 무섭다 라는 말이 참 많앗는데...

    그 성격 고치느라 애좀 먹었었답니다.
    지금은 굉장히 쾌활한 성격이 되었지요..


    상처를 받고 사는건, 그 만큼 또 관심을 받고 산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아무런 감정 (좋은 감정이던, 좋지 못한 감정이던지 ) 을 갖고 있지않으면
    상처 줄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 말이 조금 이상하군요 )

    우울해하지마세요! 상처는 관심이 없으면 생기지 않습니다 !

    • 차이와결여 2010/06/16 22:56  address  modify / delete

      헤헤..
      오래기다리셨어요.. ^^

      보다시피 정신없이 바빴어요. 시간이 그렇게 지났는지도 몰랐다니까요..

      'clovis'님이 차갑고 무서운 성격이셨다니 상상이 안되는걸요?

      저도 초등학교 땐, 쑥스럼을 많이 타는 아이였던 걸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네요.. ㅋㅋ

      상처와 관심.. 알겠습니다요.^^

  3. 실버제로 2010/06/16 07:3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기운내세요!!

  4. 행인 2010/06/20 17:1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내가 무엇이 될것인가. 내 꿈이 무엇인가.

    참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려운 질문이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의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차이와결여 2010/06/20 22:03  address  modify / delete

      안녕하세요. '행인'님..
      저번에도 방문해주셨던 것 같은데. '행인'이라는 별명은 익명성이 너무 커서요. 반갑다고 인사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답니다. ^^

      저는 아직도 정확히 어떻게 살고 싶은지 모르겠답니다.
      사람들은 정말 자신이 해야할 일에 대해 알고 살아가는 걸까요?

      제가 평범한 것일까요. 특이한 것일까요. 후후..

      답은 없더라도, 생각해보고 싶었답니다.

  5. 클라리사 2010/08/29 01:2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다른사람과 얼마나 친밀해질 것인가란 문제로 머리 싸맸던 적이 많았는데요(대학,직장 모두 남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친구,동료들이 이성인 상황). 얼마나 에서 어떻게 로 바꾸었어요, 끝없는 소모전인 듯해서요. 바람둥이 소리 듣더라도 거리를 먼저 정해두는 건 참 서글픕니다. '단정치못하다'는 인상을 주지않으려고 움츠릴 때도 있었지만 사실 좀 헤픈 것도 있쟎아 하며 억지로 나를 끼워맞추지않으려 애씁니다 지금도. 그러지않아도 우린 의식하고 살아가야되는 잣대가 넘 많잖아요.

    • 차이와결여 2010/08/31 10:14  address  modify / delete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 때문에 힘든 적도 많았습니다.

      이제는 될대로 되라지... 하면서 살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 모습을 느낄 때 깜짝깜짝 놀라곤 한답니다..ㅎㅎ

      연습하면 나아지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