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앞표지
*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 장 지글러, 양영란 역, 갈라파고스
* "본 도서 리뷰는 티스토리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블로거 북 리뷰' 행사에 참여하는 블로그 포스트입니다."
두 번째로 읽게된 블로거 북 리뷰 도서 <탐욕의 시대>입니다. 원제는 <L'empire De La Honete> 직역하면 <수치의 제국> 정도 된다고 하는군요.
지은이 '장 지글러'는 10년 가까이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신 분입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이긴 하지만 인문 사회 분야의 도서는 잘 팔리지 않는데요. 작년에 서점을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보이던 책 중에 하나가, 이 분이 쓰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란 제목의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책 표지에는 흑인 소년하나가 지친 표정으로 아래로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이 있었던 책입니다. 충분히 떠들러 볼 수 있는 책이기에 몇 번이나 책을 펼쳐보면서 살까말까 고민을 했었드랬는데요. 결국 사지는 않았습니다.
왜 책을 사지 않았을까요?
개인적인 경험담을 하나 말씀해드리죠.
저는 76년 생으로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전국적인 민주화 시위와 노동자들의 파업,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들은 분신으로 고문으로 열사라는 이름과 함께 다시 태어나던 80년대 중반이었지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보면 시청 앞에서 시위하는 소리와 시위대를 진압하려고 쏘아댄 취루탄의 매퀘한 냄새들이 창문을 타고 넘어와서 목이 아프던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곳곳마다 대자보가 붙어 있었지요.
그 대자보를 보며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교과서를 통해서 우리의 우방이요, 형제의 나라라고 배워왔던 미국을 비판하는 수많은 외침들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이 진리라고 믿어왔던 11살의 소년에겐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허나, 어른들에게 물어볼라치면 모두들 쉬쉬하며 그런 건 어른들의 일이니 어린아이는 몰라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당 벽에 붙어 있는 한 사진전의 포스터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광주민주항쟁 사진전>.
학교 근처에 있던 사설미술관을 몇 차례 드나들었던 경험으로 뭔가 재미있는 전시회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이내 용기를 내어서 성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미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었지요. 한 쪽 강당에서는 비디오 상영회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허나 이미 강당 입구까지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도저히 안쪽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사진전만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짐작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네요.
네,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제가 이제껏 알고 있던 모든 것에 혼란이 생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무얼 그리 많이 알았다고 충격을 받을까 싶으시겠지만, 그때 받은 기억 중에 아직까지 생생하게 살아있는 감정은 '배신'이라는 감정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를 굳게 지켜줘야 하는 우리의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무참하게 진압하는 모습들, 무서운 총들을 어깨에 둘러매고 무척 단단해보이는 곤봉으로 사람들을 때리고, 군화로 짓밟는 모습들. 그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맨몸으로 모두를 감당하는 사람들.
사진전을 모두 보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더러운 비밀이 있다!"
그 때, 받았던 충격들은 그 뒤로 두고두고 남아서 사회현상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부조리한 상황을 접할 때마다 그 이면에 있는 진실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좀더 자라서 이러저러한 부정과 비리와 구조적인 불평등을 알게되었을 때에도 모두가 노력하면 변화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정의를 믿으면서 20대를 보내왔던 것 같습니다.
허나, 이제 사회에 나오고, 월급쟁이가 되고, 슬슬 타성에 젖어들어가고 있는 저는, 어렸을 때의 그 기억들을 모두 잊은 채 정부, 혹은 다국적 기업, 세계화주의자들의 거대하고 타락한 힘들을 인정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그런 불쌍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떠들러보면서도 '그래, 세상의 반은 굶주리지. 보면 괴롭기만 할거야.', '휴, 가슴 아픈 이야기는 나중에...> 정도의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겁니다.
언젠가, '김혜자'님이 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읽고, '다이아몬드'를 캐기 위해 그 많은 아이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후, '다이아몬드'를 더이상 보석으로 보지 않았던 저이지만, 결혼을 할 때 아내될 사람이 예물로 '다이아몬드'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과연 거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더군요.
그런 사소한 괴로움,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얼마 간은 있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번에 읽게 된 <탐욕의 시대>에서는 마치, 그런 저의 나약한 모습을 반성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쓴 것 마냥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p. 327)
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이 책은 표지에서 극명하게 보여주는 바와 같이 지구의 북반구에 살고 있는 부자나라, 그리고 그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고 있는(실제로는 사적인 이익을 마치 중세 봉건제후들처럼 끌어모으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 세계 은행들, IMF, WTO가 얼마나 불합리한 방법으로 지구의 남반구 사람들에게 부채라는 짐을 지우고 그 짐을 늘려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UN의 각종 기구들이 몇 해에 걸쳐 조사한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저자 스스로 '특별식량조사관'이 되어서 기아로 허덕이고 있는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체험한 지식들을 함께 이야기해주고 있지요.
'장 지글러'의 이야기는 몇 가지의 자료들만 본다고 해도 가히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현재 세계의 농업 생산력으로는 120억 명을 정상적으로 먹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하루에 성인 1명당 2,700칼로리를 공급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오늘날 지구의 인구는 62억 명 정도로 추산된다."
(p. 342)
"... 또 다른 중요한 영양소인 비타민 A의 경우를 보자. 남반구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비타민 A의 부족이 실명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비타민 A의 부족으로 4분마다 한명씩 시력을 잃는다. ... 요오드 또한 균형 잡힌 신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다. 그런데 요오드 부족에 시달리는 인구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두 합해서 10억 명이 넘는다. 이들은 주로 농촌 지역에 밀집해서 살고 있다.... 모체의 요오드 부족은 태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가령 2006년의 경우, 2천만 명의 신생아가 치료 불가능한 뇌 손상을 입고 태어났다.
하지만 영양 결핍은 특별한 기술적인 지원이나 엄청난 경비를 지출하지 않고서도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지구상에서 퇴치할 수 있다. 제3세계에서 소비되는 음식물에 서구 사회에서 통용되는 똑같은 처방을 적용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제네바에서 내가 사먹는 소금은 스위스에서 현재 시행 중인 법에 따라 요오드가 첨가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서구 사회에서 철분 부족으로 인한 빈혈은 이미 오래전에 자취를 감추었다....이렇게 본다면 수입억 명의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기아'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어보인다. 얼마간의 비용이 든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p. 129~132)
책에는 더욱 놀라운 자료들이 많습니다.
한 해동안, UN에서 평화 기구 건설을 위해 투자한 돈은 20억 달러였습니다.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요. 반면 난민 정착 기금에는 5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영양실조와 기아 퇴치를 위해서는 190억 달러, 하지만 기아를 모두 없애기에는 터무니 없이 적은 돈이지요.
가난한 제3세계 국가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부채를 탕감하기 위한 돈은 300억 달러가 든다고 합니다. 부채가 없어진다면 제3세계 국가들은 국민 총 생산의 잉여금을 나라의 곳곳에 재투자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길 수 있으므로 부채탕감은 매우 중요한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것은 한 해동안 전세계에서 군비에 지출한 총액은 7,800억 달러였다는 것입니다.
전세계가 조금 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고 불필요한 욕심을 줄이고, 전 지구적인 사고를 한다면,
해마다 영양결핍이나 각종 전염병, 오염된 식수 때문에 목숨을 잃는 1천만 명의 아이들을 살릴 수 있고, 학교에 갈 가능성이 전혀 없는 3억 2,500만명의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 지글러'는 말합니다.
또한 치료 가능한 질병 때문에 목숨을 잃는 1,200만 명의 남반구 사람들에게 기본적 치료를 제공하고 그들에게 생활하기에 거의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건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물론, 이 책에서는 개개인들의 노력과 함께 오로지 탐욕만으로 가득차 있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과 북반구 국가들의 각성을 촉구 합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전세계 만연된 시장만능주의의 유령의 지배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며 봉건제후들의 전횡과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러한 집단들에게 자발적인 변화를 바란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비이성적이고, 수치심도 모르는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장 지글러'의 조언은 현 시점에서 우리 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각 부분이 세계화라는 미명아래 급속하게 '시장'으로 편입되어가고 있고, 개별 주체들을 경쟁의 지옥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상황이 현재 우리의 모습입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FTA 협상이 비준되기 일보직전에 와있는 상황입니다. 미국과의 FTA는 곧 거대 기업과의 FTA이고 그들의 활로를 터줄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가 남미의 나라와 같은 쇠락의 길을 걷지 말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 나라는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부채에 시달리는 나라도 아니고,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나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약소국이며 미국의 입김에, 일본의 경제적 압력에, 머지 않아 중국의 입김에도 휘청거릴 수 있는 불안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임에 분명합니다. 이런 때일 수록 우리들 모두가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격으로 어둡게 시작한 2009년 입니다만, 지리적으로 먼 나라의 일이기 때문인지 우리들에게 크게 와 닿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브라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프리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결코 무관하다고 볼 순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 먹는 커피 한 잔을 통해, 다국적 기업들은 점점 부를 늘려가고, 가난한 커피 생산국의 농부들은 그들의 생명을 잃어갈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이 책의 모든 부분이 옳다고는 생각할 수 없더라도, 이 책을 잃고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너무나도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독하시기를 바랍니다.
탐욕의 시대 -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갈라파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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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기아 인구가 늘어나고 있어요!
Tracked from 지구촌 나눔 2.0 (nanum2.tistory.com) 2009/01/20 00:49 delete“기아에 허덕이는 전 세계 8억 인구... 식물생산과학에 그 해결책이 있습니다!” 8년 전 대학 입시 준비 때 저희 과 홈페이지 전공소개란에 있던 문구입니다. ‘아, 나도 농업을 전공하면 기아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일을 할 수가 있겠구나!’ 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수시모집에 지원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 그런데 어제 FAO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금융위기와 곡물가 파동으로 인해서 전 세계 기아인구가 작년보다 약 4천만 명이 늘어난 9.64억 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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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고는 싶은데, 참 우울한 책이군요.
예전에 스타벅스 커피에 관해서 독일어로 읽은적이 있는데, 그것을 읽고 흥분했더니, 너 그래도 사먹잖아 라고 남친이 그러더군요 --;;
글쎄, 사회 우리가 확 바꿀수있는건 아니지만 천천히 노력하다보면 달라지겠지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음에도 더 많은것, 더 좋은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제 마음이 죄처럼 느껴지는것은 왜일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읽고서는 커피를 사먹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사먹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에 관한 문제이니까, 불합리한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NGO를 통해 압력을 가한다거나, 그런 단체에 힘을 실어준다거나 하는 실질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찾아보면 방법이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무거운 마음은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
잘지내셨죠??
읽으려고 계획중인 책인데..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트랙백도 하나 하고 가요~ ^^
^^
좋은 일을 하시는 분 같군요..
방문을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