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의 이유로 마음이 헛헛합니다.

  저번 주엔, 알 수 없는 이유(짐작은 되지만 인정하기는 싫은)로 욕을 한 바가지 들었고
  이번 주엔, 내 뜻을 알아주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머리가 한 웅큼 빠졌드랬죠.

  가을은 깊어만 가서 마음은 정처 못하는데,
  하늘은 높고, 구름은 하얗게 흘러만 갑니다.

  새삼스레,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아도,
  뿌리도 없고 뜬구름잡는 것만 같은 이야기만 오고갈 뿐입니다.
  그건 제 잘못이지요.
  한 번도 본론을 꺼내 놓은 적이 없는 건 저이니까요.

  아직도, 오해가 두려워 마음을 던지는 것을 주저하고, 내 안에 쌓인 굳건한 성벽을 허물까 쌓을까 벽돌을 들었다 놓았다만 하고 있네요.

  그렇게 한동안 해소할 길 없는 불안정함을 겉옷처럼 껴입고 사는 동안 잠이들면 깨어나지 못하고 깨어나선 잠들지 못하는 밤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어제밤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깊은 잠 속에 빠져있는 동안에 일 년에 한 두 번쯤 얼굴을 보고, 또 딱 그만큼만 연락을 하는 오랜 지인이 마음이 담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한 사람에게 두번 전화한 건 처음이네. 근데 안받다니, 보고 싶은데 잘지내..."

  많은 말을 담느라 띄어쓰기와 문장부호까지 빠진 빽빽한 문자 한 통을 아침에 확인하고선 적지않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ㅋㅋ 설마 나이 들고서 약해진거야? 뭔 일 있는 건 아니지? 보고 싶으면 찾아가 문 두드리던 그 때가 그리워..."

  짧은 문자에 최대한의 마음을 담아 답문을 보내고, 서둘러 차에 올라 출근을 했습니다.

  어제는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었는데, 무릎에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최 언제 멍이 든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거에요.
  이미 시간이 꽤 지난 건지, 멍 색깔은 흐려져 살 속 깊이 파묻히고 있었는데, 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었어요.
 
  어렸을 때에는 넘어져서 아팠던 기억, 부딪혀서 멍들었던 기억, 칼에 베인 상처의 아픔 등이 뚜렷하게 기억이 났었는데, 어느덧 기억에 무더져가고 상처에 무던해져가는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것이겠죠.
 
  상처는 아물어 흔적을 남기고, 멍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 속 깊이 파고들어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산다는 것은 몸에 상처를 새기고 멍을 받아들여가며 사는 것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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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lovis 2010/10/16 15:3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왠지.. 이말을 해드려야할것같네요..
    힘내세요..!

  2. 카르페디엠 2010/10/16 17:1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까짓거 멍 좀 생기면 어떻습니까?
    퍼런 멍, 자주빛 멍이 옹이처럼 박혀있어야
    멍~하니 생각할 꺼리도 있는게지요.
    푸켓으로 바람쐬러 한 번 오세요.
    바이크로 해변도로 달려보시면 다양한 색깔의 멍도 만들 수 있고요ㅎㅎ

    • 차이와결여 2010/10/18 09:24  address  modify / delete

      오오.. 멍이 들면 멍~ 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군요?? ㅋㅋ

      '카르페디엠'님....푸켓... 하아...

      나중에 잠시 들어오셨다 가실 때, 가방에 넣어가 주시면 안되나요?? ㅠㅠ

  3. 실버제로 2010/10/17 06:4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가을을 많이 타시는것같아요^^;;

    기운내시고 날씨는 별로 안좋지만 뮌헨의 겨울을 느껴보시는것도 좋을것같은데 ㅋㅋ
    푸켓 오! 저도 가보고 싶어요 ㅋㅋ

    • 차이와결여 2010/10/18 09:23  address  modify / delete

      올해는 한 번 제대로 타볼려구 맘 먹고 있답니다..

      얼마나 탈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ㅋㅋㅋ

      저는 겨울이 싫어요..ㅠㅠ 너무 추워.

    • 카르페디엠 2010/10/18 22:20  address  modify / delete

      실버제로님,
      푸켓은 따땃하니 햇살이 눈부십니다..오세요~^^
      댓글에 얘기하셨던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덕분에
      좋은 놀잇감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체호프의 '공포' 듣고있어요. 너무 좋은데요 ㅎㅎ

  4. 괜찮아 2010/10/17 21:4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가을입니다.
    그러니 술 한 잔 하셔야죠. :)

    저도 가을타느라 바빠요. ㅠㅠ

    • 차이와결여 2010/10/18 09:27  address  modify / delete

      요즘 저도 술이 너무 땡기고, 맛있고 그러네요...ㅎㅎ

      그렇다고 얼마 마시지도 못하는데,

      적당히 흐느적 거리면서 바라보는 밤하늘이 그렇게 좋아요.. ㅋㅋㅋ


      아.. 계속 가을 타야지~~
      '괜찮아'님! 저도 계속 열심히 바쁠래요.. ㅋㅋㅋ

  5. 비밀방문자 2010/10/18 14:0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차이와결여 2010/10/18 15:21  address  modify / delete

      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댓글이네요.. ㅠㅠ

      그래도, 투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니 한 편으론 기쁩니다..
      마구마구 투정해주세요.. 별 도움은 안되겠지만요..ㅋㅋ

      이적은 정말정말 좋죠?? 후후후...

  6. 비밀방문자 2010/10/18 20:1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차이와결여 2010/10/19 08:31  address  modify / delete

      맞아, 가을도 좋지만, 빨리 눈이 왔으면 좋겠어.

      얼마 전 야자시간에 학교 주위를 산책하다가 노란 가로등 빛을 따라 눈이 떨어지는 상상을 했어.

      참 낭만적이고 멋지더군.

      어서 눈이 내리는 계절이 되었으면....

      셤공부 열심히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