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밥 한 번 먹자는 말

  나는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좋아한다.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한다.
  아마도 그것은 대학시절 자취 생활에서 비롯된 말일지도 모른다.
  희미한 기억 속에는 순수하게 내가 그렇게 처음 느꼈던 말이 아니라 어느 선배가 했던 말을 듣고서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여튼, 여러 모로 결핍되었던 대학생활 때,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라곤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고, 밥 보단 술이 더 친근했었고, 대부분의 식료품은 자급자족(?) 했었으며, 천성이 게으른 탓에 '알바'라곤 몇 번의 막일 말고는 없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 이다.

  내가 보기에 그 시절엔 누구나 다 무언가에 고파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나는 '밥'에 고파하고, 누구는 '열정'에 고파하고, 누구는 '사랑'에 고파하고, 어찌됐든 좌우지간 모두들 무언가에 고파하고 있었다.

  아침에 학교를 오르다가 보면 대부분은 '안녕', '여~', '선배~' 등의 인사들을 나누며 지나가기 마련이지만, 적지않은 호의를 품고서 아직 식사 전이면 싸디 싼 학교 식당 밥이지만 한끼 사줄 수도 있다는 듯 '밥 먹었어 OO아~?'라고 인사를 걸어주면 그 마음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더러는 안 먹었다고 뒤를 쫓아가기도 했고, 더러는 괜찮다며 애써 사양하기도 했었다.

  그 말에는 최소한의 안부와 안녕의 의미에 더하여 '순수한 호감'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선배가 된 후에는 의도적으로 '밥 먹었냐'고 물어보기를 즐겨했고, 안 먹었다면 당장 나 먹을 것이 없어도 사주려고 노력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밥먹으며 친해지는 사이보다는 술을 먹으며 친해지는 관계가 더더욱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누군가 나에게 '밥 한 번 먹어요'라고 말하면 꼭 약속을 잡아야 할 것 같이 마음이 급해지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겐 꼭 '밥 한 번 먹죠'라고 말한다.

  이미 '밥' 따위엔 흥미를 모두 잃어버린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나는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좋아한다.



2.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

  오늘 성묘를 갔다가 할머니가 계신 납골당 앞 계단에 앉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식구들을 기다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바삐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제 막 걷기 시작한 것 같은 꼬마아이의 양손을 아빠와 엄마가 나눠잡고 종종 걸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꼬가옷 때때옷으로 한복으로 족두리까지 쓰고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꼬마 아이와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젊은 부부, 혹은 넘어질세라 뒤를 따르며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그들...
  당연히 보기 싫지 않았다. 예뻐 보였다.
  남들이 아이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별로 그런것 같지 않다고 말했던 터였다.
  사실, 식당 같은 곳에서 떼를 쓰고 소란스럽게 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닥 좋다는 느낌도 가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항상 그렇게 소란스러울 수도 없고, 항상 그렇게 아장아장 할 수도 없는 거지만, 아직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는지 모른다.
  아빠가 된 나와 내 아이...
  상상할 수는 없지만, 당연히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왜 상상을 하지 못하는 가를 생각했다.
  남들이 다 하는 일인데 왜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인가를 생각했다.
  일단은,
  '남들이 다 하는 일'이라는 상투적인 사고습관에 길들여지기 싫은 것이 있겠고,
  만약에 내가 결혼을 한다면, 부부생활에서도, 아이에 관해서도 심한 집착을 할 것 같은 생각이 강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도 최고로 잘 키우고 싶고, 가정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나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그 관계를 애써 거부하려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 피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합리화이라는 것은 알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으리라는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정리를 하다보니, 난 참 이기적인 사람이고, 결혼에 대한 자격이 없는 놈이라는 슬픈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능력은 부족한데, 욕심은 산 만하다.



3. 오셨나요?

  몸에 열이...
  오셨나요?
  감기? 몸살?

  집에 사다놓은 오렌지 쥬스를 한 컵 따라서 마셔본다.
  내일은 학교에 출근도 해야 하는데....

  친척들이 모이는 곳에 갔다가 감기에 걸리신 고모님을 보고 이제 나이드셨다고, 감기에나 걸리신다고 놀리고 왔는데,
벌 받았나보다...

  부디 오래가지 않을 손님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내 몸은 준비가 안되어 있다.

  여기 저기..
  몸이 종합 병동이 된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따순 물로 샤워하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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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버제로 2010/09/23 06:3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는 중국교포인 친구가 있는데(국적은 중국) 한국사람들의 밥한번먹자는 이야기가 싫다고 하더라고요.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왜 밥한번먹자는 말을 남발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애를 보면서 밥한번먹자는말 남발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말하는거 무서워지더라고요.

    저도 아는 오빠에게 완벽한 관계를 요구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거 포기해야 시집장가가지 않을까요?^^;
    인간이 완벽하다는건 불가능하니까요.

    • 차이와결여 2010/09/23 11:16  address  modify / delete

      음.. 저도 인사치레로 하는 '언제 밥 한 번 먹어야지?', '야~ 나중에 술 한 잔 하자..' 이런 말은 되게 싫어해요.

      남들에게 하지 말랄 수는 없으니까 어쩔수 없지만, 왠만하면 저는 안하려고 하죠.

      오래간만에 통화한 친구와 전화를 끊으면서 으레 그런말을 남발하잖아요.
      아마 그 중국교포 친구도 그런 의미에서 싫다는 것 아닐까 합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는 것이겠지만, 우리 보다 먹는 문화가 발달(?) 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중국인들과 같은 경우에는 '밥 한 번 먹자'라고 말을 듣는 다면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요?
      저 같은 경우엔 그렇습니다만... 모르겠네요..


      완벽한 관계....
      안될 것을 알면서도...

      맘 한 구석에는 매일 같이 다짐하고 확인하는 모든 일들도 결국 그 상황에 가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요.
      그래도, 이렇게 생각으로나마 '완벽'해지면 안되는 것일까요? 후후..
      그런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욕심이 많은 것이겠죵..

  2. 클라리사 2010/09/23 07:3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음...다들 가을 기운이 스며들고 있나봐요 이래저래. 밥 한번 먹자는 말이 술 한잔 하자는 말보다 더 친밀감을 불러일으키고요,저한테는. 밥 같이 먹는 게 술 한잔 보다 역시 더 친밀한 일로 느껴집니다. 특히 술 없이 정말 밥만 같이 먹는다면 더욱.

    • 차이와결여 2010/09/23 11:12  address  modify / delete

      저는 밥과 함께 맥주나 소주 한 잔을 곁들이는 '반주'도 좋아하긴 하는데요.. ㅎㅎㅎ

      그래도 왠지 '밥'과는 '차'가 더 어울리죠?

      맛있는 밥을 먹고, 밥 먹느라 못다한 이야기는 향기 좋은 찻집에 앉아서 마저 나누는 정겨운 관계...

      헤어지고 돌아오면서 '아.. 오늘은 밥도 맛있었고, 차도 괜찮았고, 좋은 시간이었어..' 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정말 좋답니다..ㅎㅎㅎㅎ

      이래서...저를.. '언니'라고..부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