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놓치다> 메인 포스터
지금은 탈퇴해서 다 없어져버렸지만,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도 잠깐 영화 리뷰 코너를 운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코너를 운영했던 목적은, 여자친구와 봤던 영화들을 기억하려는 의미가 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어차피 기억이란 것은 지워지는 거니까 지금은 없어져 버렸다고 해봐야 별로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ㅎㅎㅎ
여튼, 그때 그 리스트에 올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리고 좀 지난 영화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오늘 다시 보고 났더니 포스트를 안 올리 수 없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보셨을테니까, 모두 아신다는 가정 하에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이 3번째 본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영화관에서, 그것도 '설경구'라는 믿을 수 있는 배우와 '송윤아'라는 개인적으로 젤 예쁘다고 생각했던 배우가 나온다는 주관적 판단으로 옆 사람의 의사 따윈 무시하고 결정했던 영화였습니다. 그 때의 느낌은 좀 밋밋하고 뻔한 스토리이지만 나름 설득력도 있고 나쁘지 않은 영화, 음악은 참으로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뒤에 계속 노래 몇 곡이 머릿속에 남아서 맴돌더니 영화에 대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바꾸어놓았던 모양입니다. 우연히 TV에서 방영되었을 때가 두 번째로 본 것인데 그때는 이미 영화를 같이 봤던 사람과는 이별을 한 뒤였고, '사랑'이라는 것에 회의랄까, 내가 원하는 '사랑'은 영화 속에만 존재한달까... 그런 애매모호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때라 영화에서 중요하게 서술되고 있는 감정의 교차점이라던가, 지나침이라던가가 가슴에 남았습니다. 또 '어떻게 시작도 하기전에 끝이나냐' 등등의 대사들과 몇 장면들이 마음을 흔들었지요.
오늘은 우연히 IPTV 영화 채널을 돌리다가 무료상영관에 올라와 있는 걸 보고 다시 보게 되었는데요.
조금 더 분석적으로 보게 된 이영화는 결말 부분에 있는 약간의 비약이 거슬리긴 하지만, 나름대로 수작이라고 평할 수 있는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를 면회 간 여자의 마음.. 저는 영원히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생각만 해도 애틋합니다.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너무나 뻔해서 할 것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10년 간 서로 엇갈리기만 했던 두 사람이 결국 서로의 마음을 알게된다는 이야기인데요.
처음엔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여자 역시도 남자가 자신을 여자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바보처럼 더이상 어떻게 해보려 하지 않죠. 그 때쯤 실연을 한 남자가 군대에 입대하게 되고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여자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를 면회 갑니다. 하지만 남자는 같이 어울려 다니던 친구의 이야기만 하고 그녀의 감정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죠. 허무하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자는 남자를 잊기로 합니다. 남자는 사랑을 놓칩니다.
10년이 지납니다.
남자는 고등학교 조정부 코치가 되어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고, 여자도 동물병원 수의사가 되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연히 경찰서에서 둘은 마주치게 됩니다. 전과는 다른 느낌이 남자에게 생깁니다. 여자 역시 그런 그가 싫지 않습니다. 어쩌면 결혼에 실패한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둘은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혼란스럽게 엉클어진 감정들 사이로 두 사람은 급작스럽게 하루밤을 보냅니다. 다음 날 여자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아니 최소한 거짓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상황에 서툽니다. 자신의 마음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남자는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여자는 되뇌입니다. '미안하다'
때마침 여자의 어머니가 사고로 죽게 됩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여자는 남자를 잊기로 합니다. 뒤늦게 남자는 여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깨닫습니다. 여자를 향해 뛰어 갑니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 속에 더이상 남자의 자리가 남아 있지 않은 듯 합니다.
남자는 시작도 하기 전에 또다시 사랑을 놓치고 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사랑은 타이밍이다'라는 말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의 감정이 나와 똑같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불가능한 일인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어렸을 적에는 그건 당연한 이야기 였습니다. 따라서 타이밍만 잘 맞추어서 마음을 털어놓는다면 실패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타이밍이라는 것도 곁에 머물면서 틈을 보거나 티나지 않게 마음을 드러내면 가능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살다보니 사람의 마음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더군요.
'좋다' 라는 것도 여러 가지의 종류가 있고, '호감'이라는 것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는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 그정도는 아니어도 곁에 두고는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귀어서 지지고 볶고 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렇게 하기보다는 항상 좋은 느낌으로만 간직하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제 블로그에 자주 와주시는 '카르페 디엠'님은 좋은 사람이기는 하되, '키스'를 하고 싶은가 그렇지 않은가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지요. 물론, 글자 그대로의 의미보단 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튼, 그런 감정의 높낮이를 구분하는 일이 저에겐 쉬운 일만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살면서 몇 몇은 그런 감정의 높낮이를 구분하지 못해서 멀어지고는 했습니다.
어렸을 땐,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으로 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의 파고들을 애써 외면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사랑'이 아닌 다른 이름을 붙여가면서 제 감정들을 속이고 달래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모두가 영화 같을 수 만은 없는 거겠죠. 아니죠, 영화같기는 불가능한 거겠죠.
여튼, <사랑을 놓치다>에는 곰곰히 생각할 수록 참 많은 생각을 하고 만들었다는 느낌들을 갖게 하는 대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책으로 말하면 밑줄 긋고 넘어갈 만한 대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시작되고 어긋나는 과정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이야기들이 꾸밈없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거리, 딱 저만큼이지만 영원보다도 긴 거리.
아마도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결말이 궁금하실 것 같은데요.
마지막 장면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설경구'가 '송윤아'가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일본식 선술집으로 보이는 곳에 혼자 앉아있습니다. 그 때, 바로 옆 테이블에서 심각하게 이별을 하는 한 젊은 연인이 눈에 들어오죠.
남자는 단호하게 이별을 말하고, 여자는 자존심은 상하지만 매달립니다. 모질게 뿌리치고 자리를 떠나는 남자.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여자도 잠시 뒤에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설경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알듯 모를듯한 표정으로 입가에 씁쓰름한 웃음을 짓습니다.
아무런 대사도 나오지 않지만, 저는 그 장면에서 그가 했을 생각과 느꼈을 묘한 감정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게 바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그것들이니까요...
약간은 신파 같지만,
또, 이런 가을에 그런 신파가 잘어울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올 가을엔 저도 '사과를 따러 갈'수 있을 런지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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