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희의 영화> 메인 포스터
*2010년 09월 20일 18시 30분
*CGV (오리)
(?????)
우선,
<옥희의 영화>가 재미있을 것 같다고, 포스팅까지 하고서 '이해하려고 하지 말 것'이라는 제목을 리뷰를 다시 올리게 되다니 좀 송구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홍상수'라는 감독은 제가 알고 있는 여느 감독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것인지 저로써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지만, 줄곳 그의 모든 영화들을 차례로 섭렵해 온 저에게도 <옥희의 영화>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영화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재미가 없다거나, 돈이 아깝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데, 그게 제 능력으로는 쉽게 이해하기도, 또 설명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를 재미있으려고 보고,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려고 보기도 합니다. 저는 둘 다 입니다. 좀 즐거운 날엔 웃고 박수치려고 보고, 좀 우울한 날엔 그 우울의 깊이에 폭 빠져보려고 보기도 합니다. 고민이 많을 땐, 심각한 영화를 보면서 사고의 틀을 넓혀보기도 하지요.
여튼, 재미있으려고 영화를 보는 분들에게 <옥희의 영화>는 매우 불친절하여 기분까지 나쁘게 할 수도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니까. 예고편만 보시고 무언가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하시는 분들이라면 보지 마세요~)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는 분들이 몇 분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번 포스트를 보고 영화를 보러 가신 분들이 있고, 또 속았다는 기분을 느끼셨다면 어찌나 죄송한지....
문성근 아저씨는 영화에서 좀더 자주 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3-4편에서 한 참이나 귀여우시던 모습으로..ㅎㅎ
여튼,
저는 <하하하>때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웃으면서 영화를 봤습니다.
솔직히 <하하하>때 무척 친절해지고 귀여워졌다고 느꼈던 '홍상수' 감독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뭔가 아기자기한 스토리가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있었지만, 또 스타일상 그런 친절함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배신감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총 4편의 단편영화가 묶여져 있는 형태입니다.
<주문을 외울 날>, <키스왕>, <폭설 후>, <옥희의 영화> 이렇게 네 편인데요. 첫 번째 이야기에서만 '옥희'역할을 맡고 있는 '정유미'가 등장하지 않을 뿐 실질적 주인공은 '문성근', '이선균', '정유미' 세 사람입니다.
영화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 간략하게 스토리를 정리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주문~>에서는 우연히 '송교수(문성근)'의 비리를 전해듣게 되는 '남강사(이선균)'이 술자리에서 이를 확인하는 질문을 하고, 어색해진 술자리가 끝난 다음에는 자신의 단편 영화 GV에 갔다가 관객으로 부터 몇 년전에 있었던 여제자와의 불륜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물론, '송교수'의 비리도, '남강사'의 불륜도 어느 것도 정확히 밝혀지진 않습니다.
<키스왕>에서는 '송교수'에게 총애를 받는 '남진구'와 그가 좋아하는 같은 과 친구 '옥희'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자취방에서 잠도 자게 되지만, 실제로 '옥희'가 사랑하는 사람은 '송교수'였고, 과 영화제에서는 '송교수'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폭설 후>는 103년 만에 내린 폭설로 계절학기 강의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않은 것에 좌절하게된 '송강사'는 사직을 결심하게 되고, 뒤늦게 찾아온 '진구', '옥희'와 몇 가지의 질문을 주고 받은 후 뒷풀이로 낙지에 소주를 먹고 선 체한 뒤 집에 돌아가다 목에 걸린 낙지를 토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옥희의 영화>는 말 그대로 '옥희'가 제작한 영화에 대한 코멘터리 같은 영화인데, 한 번은 자신이 사귀었던 '나이 든 남자'와 또 한 번은 '젊은 남자'와 함께 '아차산'에 올랐던 기억을 바탕으로 두 장면을 연결하여 거기서 얻어지는 어떤 깨달음을 찾고자 시도하고 있는, 그리고 그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영화 속 영화입니다.
언뜻 보셔도 아시겠지만,
영화는 세 인물들이 동일 인물이면서 동시에 동일 인물이 아니고, 네 편이 한 편으로 연결되는 듯 또한 하나도 겹쳐지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음.. 난 더이상 사랑을 구걸하지 못하는 것인가.. 용기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장면..에이.. 술이나 먹을까...
저는 개인적으로 그냥 뒤에 가면 무엇이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각 영화들을 독립적인 것으로 보았는데요. 영화를 보고 난 후 아무리 연결고리를 찾아 연결해보려고 해도 딱 들어맞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1편이 2편의 진구가 만든 영화인가, 아니면 1-2-3편이 4편의 옥희가 만든 영화의 내용인가, 그도 아닌가, 한참을 고민했지만 역시나 아무런 해답도 찾지 못했습니다.
오늘에 와서야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더니, 그 모든 것들이 동일성에서의 이질감을 의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본래 즉흥적인 느낌과 즉흥적인 방법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시긴 하지만, 이번 영화의 3편 <폭설 후> 같은 경우에는 대본도 없었고, 캐스팅도 안되어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마침 103년 만에 폭설이 내렸고, 장면이 떠올랐고, 세명의 배우들을 캐스팅하고(올 수 있어? 시간 있어? 이쪽으로 와줄래? 등의 간단한 방법으로..) 단 하루의 촬영기간으로 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장편들 같은 경우에는 이런 느낌과 착상들이 모여져서 하나의 스토리로 구성되어지는 것이겠지요...
여튼, 그렇게 네 편의 이야기들은 덜거덕 거리는 느낌으로 어긋나 있지만,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항상 우리의 관계 이면에 내가 알지 못하는 숨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 이야기의 인물들과 저 이야기의 인물들이 전혀 상관 없는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에서 비슷한 몇몇 가지의 특징들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이야기일 거라고 단정하는 일이 허다하니까요...
뭐 그런 것까지 표현한 거장이라고 말씀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네 편의 이야기를 독립적인 이야기라고 봤을 때,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3편 <폭설 후>의 '송교수'와 '진구', '옥희'의 질문과 대답시간이 무척이나 좋았다는 느낌이 있구요. ('현명한게 어떤 거죠?', '성욕은 어떻게 해결하나요?'. '사랑은 꼭 해야 하나요?', '제일 중요한게 뭐죠?' 등등등) 또, 2편에서 '사랑해'라고 거듭 이야기 하는 '진구'에게 끝까지 '나두 니가 좋아' 라고 이야기하는 '옥희'의 모습을 보면서 일방적인 감정은 저다지도 무모한 것이구나,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는 거구나라는 생각에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래도, 영화를 다 보고선, 함께 '아차산'을 오르고 나서 '젊은 남자'와 곧 헤어지게 될 것임을 예감했다는 '옥희'의 나레이션을 들으면서 참 쓸쓸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이상하죠? 쓸쓸한데 그 기분이 나쁘진 않다니요.. 아마도, 그 대사 하나에 지금까지 본 영화가 거짓은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다정히 걸어가고서도 헤어질 것을 예감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아 무서라...
근데, 도대체 왜 '홍상수' 감독은 이 영화를 19세 이하 관람불가가 되기를 원한 것일까요? 야한 것도, 폭력적인 것도 하나 없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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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이 영화 보고, 생각이 나서 왔어요. 19세 이하는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즐길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영화 재밌었어요. 내가 나이 들어가는 구나 느꼈지요. 홍상수 감독 영화 중에 가장 웃음 짓게 하는 영화...나이들어서 봐서 그런가 싶기도하네요. 예전엔 주로 씁쓸함,징그러움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말이죠. 하여튼 징한 감독..
아.... 그렇네요.. 제가 자가당착에 빠져, 그 생각을 못했네요..
그쵸. 19세 이하는 봐서도 알 수 없을 테고, 알 수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네요.. ^^
저도 요새, 영화나 소설이나 이런 것들을 보면서, 어렸을 땐 마냥 거북하던 것들이 이해가 되는 걸 느껴요.. 나이가 든 것일까, 세상을 알게 된 것일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