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달린다> 포스터
*2009년 06월 21일 20시 50분
*메가박스(영통)
(★★★★)
오래간만에 맘먹고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여유가 좀 생겨서요. 본래 어제 보려고 했던 거였는데, 여차저차 일도 생기고 해서 오늘 느즈막히 보고 왔지요.
요새 통 영화에 관심을 놓고 있어서, <거북이 달린다>가 얼마 만큼의 흥행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몰랐었는데요. 찾아보니 예매율 1위 더군요. 허나, 제가 관람했을 때에는 일요일 늦은 저녁이어서인지 극장 안은 한가했습니다.
CGV는 상영관도 일반상영관 이외에 Star관, Sweet Box, 골드클래스 등 차등을 두고 있는데요. 메가박스 역시 M관이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그 M관에서 관람을 했는데, CGV로 치자면 좌석 간격을 넓게 하고 좌석도 시야가 가리지 않도록 배치해놓은 그런 곳이더군요. 그 큰 상영관에 얼마 전 광고에서 보았든 Sony에서 나온 최신 영사기를 통해 보여준다니 고맙기는 했는데요. 얼마 안 있어 영화가격을 올리겠다고한 이야기를 들어서 인지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여튼,
영화 보러 가기 전에 후배로부터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간터라 기대가 많이 되기도 했고, 또 '김윤석'에 대한 무한 신뢰를 품고 있기도 해서 광고가 나오는 순간부터 조금씩 흥분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김윤석'이라는 배우를 처음 머릿속에 새긴 건,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였습니다. 그때는 주인공 '류덕환'의 망나니 아버지로 나왔었는데, 비호감인 역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눈빛이 살아있다고 느꼈었습니다. 그 뒤로 보게 된, <타짜>, <추격자>의 연기를 통해 제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었고, 좋아하는 배우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줄거리야 다들 아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늘은 그냥 제가 받은 느낌을 정리하는 것으로 좀 가볍게 이야기를 드릴까 합니다.
절대로 형사가 잠복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필성'의 잠복
영화는 충청도의 소도시 '예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 '예산'이라고 하면,
젊은 날, 첫사랑과의 기억이 듬뿍 묻어있는 곳이라 제겐 남다르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한데요. 영화내내 울리는 충청도 사투리의 구수함과 매사에 특별히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 어눌한 말투들을 보면서 농촌적이라고 할까요. 시골스럽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튼,
그 곳에서 '경찰'로 살아가는 '필성'은 다섯 살 많은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박봉에 시달리며 때론 뒷돈을 챙기기도 하는 그렇고 그런 형사 입니다.
그러던 중, 범인을 취조하다 문제가 생겨 3개월의 정직을 받아버린 '필성'은 차마 아내에게 정직사실을 알릴 수 없었고, 때마침 벌어지고 있는 '소싸움'에 아내의 통장을 슬쩍하여 베팅을 하게되었는데 놀랍게도 1800만원이라는 거금을 벌게 됩니다.
전화위복이 될 줄만 알았던 이 일이 희대의 탈주범이라는 '송기태'의 출현으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고 모든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송기태'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필성'
오래간만에 만난 '견미리' 아줌마, 양말 뒤집기는 재밌어 보였어요.
이 정도의 스토리라고 볼 수가 있겠는데요.
영화를 보고 났더니, 아주 유쾌하고 상큼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느낌은 저 뿐만은 아니어서 관람객 대다수가 재미있었다는 반응이었지요.
아주 유명한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감독이 유명한 것도 아니고,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멋들어진 영화도 아닌 <거북이가 달린다>.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다음의 몇 가지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첫 번째, 얼마 전부터 한국 영화에서 당연하듯 그려지고 있는 '경찰'의 무능력입니다.
범죄영화에서 모든 일이 다 해결된 뒤에 싸이렌을 울리며 나타나는 '경찰'의 모습이야 너무나 익숙하긴 하지만, 요즘 들어 한국영화에서는 '경찰'은 풍자와 조소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소싸움' 잔치의 성공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당직이 아닌 날이면 술마시고, 아가씨랑 낚시를 가고, 취미생활에 빠져있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경찰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요. 이는 좀더 크게 생각하자면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고, 나아가서 국가권력에 대한 조롱과 조소가 아닌가.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대리만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필성'과 그의 친구들. 약방의 감초
두 번째로, 이 영화에는 행복한 사람들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데요. 주인공 '필성'은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이고, 수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정직까지 받는 인물이고, 그의 아내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사랑하는 남편에게 대신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그런 인물입니다. 도망자 '송기태' 역시 자세히 밝혀지진 않지만 사연이 많은 인물이고, 그를 사랑하는 다방 종업원 '경주' 역시 탈주범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고요. '필성'을 도와주는 친구 '용배' 역시 화물 운반을 하는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나 매일같이 동생들과 카드나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더군다나 약간 모자라게 나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등장인물 모두의 삶은 팍팍하기만 합니다.
서울서 파견나온 경찰들은 그 나름대로 팍팍하고, 예산경찰서 경찰들은 또 그 나름대로 팍팍하지요.
영화의 초반부에 '로또'를 사러들어간 단골 가게 주인이 '필성'에게 즉석식 복권을 두 장 거저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영화가 전체적으로 일관된 분위기를 가진 것은 아니나, <거북이 달린다>의 중요한 하나의 모티브는 바로 이런 '소시민적' 일확천금의 꿈입니다.
이런 모습은 IMF 시절 어깨 처진 가장들의 모습이 동정의 대상이 되던 그 때 이 후, 처음 보는 모습인데요. 그만큼 요새 우리들의 체감경제가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겠지요. 이런 영화들이 자주 나오고 그 모습에 우리가 공감한다는 것은 절대 좋은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앗! 팔과 다리가 수갑에 채워있지 않아요~ 옥의 티?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는 '절대로 멋을 부리지 않는다'는 미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배경인 '예산'은 가본지 오래되었긴 하지만, 그다지 번화하다고 할 수는 없는 소읍이고요. 충청도 서부는 그리 높은 산도 있지 않고 큰 강이 흐르는 것도 아니어서 밋밋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멋진 장면을 잡아내기가 쉬운 일도 아니었겠지만, 영화자체가 그리 멋을 부리고자 한 장면들이 없습니다.
주인공 '필성'도 그리 뽀대가 나는 인물도 아니고, 당연히 사건을 해결해가는 모습도 육감과 고집에 의지하는 그런 인물이지요.
하지만 거기에서 오묘한 맛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조금 벗어나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만날 것 같은 변두리지역, 그 곳에서 정말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 그들이 펼쳐내는 그리 허황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서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를 욕심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보여주는 정직함.
그래서 이 영화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딱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잔머리 굴리지 않'고, '겉 멋을 부리지 않는다'는 미학이 아닐까 합니다.
여튼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매우 엉성한 이야기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 하듯 '김윤석'의 연기는 출중합니다. 그는 그리 잘나지도 않고, 약간은 어눌한 듯 하면서도, 속 깊은 정을 담고 있는 남편 혹은 아버지이면서 한 편으로는 우직한 형사의 연기를 제대로 보여주지요.
아마도 '필성'의 역할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절대로 이런 분위기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김윤석'은 전작과 엇비슷한 역할을 선택하면서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자신이 잘 할 수 있은 것을 제대로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윤석'의 빛발하는 연기에 가려져있긴 하지만, 많은 조연배우들도 나름의 위치에서 깔끔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필성'의 친구 '용배'역의 '신정근'님은 사극에서 많이 봤던 분인데요. 이번에 제대로 망가지는 역할을 보여주셨고, 관객에게 큰 웃음을 주셨습니다.
또 '필성'의 후배, 특공무술관장역의 '김희원' 도 의미있는 찌르기 한 방으로 박수치며 웃게 만들어 주었죠.
'필성' 아내 역의 '견미리'도 모나지 않는 연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스틸 컷에서 조차 멋있어 보이는 언밸런스 캐릭터 '송기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송기태'역의 '정경호'인데요.
워낙에 다른 캐릭터들과 상반되는 역이기도 하고, 대사도 짧고, 또 유일하게 멋을 부리고 있을 법하지 않은 튀는 역할인지라, '전체적인 영화 분위기와 잘 맞지 않는다, 탈주범이 너무 멋있게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어진 배역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잔인하지도, 인간적이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설정으로 말미암아서 겉도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고나 할까요..
암튼, 열심히 노력한다라는 느낌을 아직까지는 갖게해주는 배우이니까요 좀더 지켜봐야 겠지요..
아..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네요.
왠지 마치려니 허무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 마디로 정의 하자면, 돈내고 보아도 절대로 아깝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김윤석'의 맛깔나는 연기를 볼 수 있다는 덤도 있는 영화.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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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거북이 달린다' 어쩔 수 없는 '추격자'의 그림자
Tracked from badnom.com 2009/07/03 08:03 delete<거북이 달린다>는 분명 <추격자>와 그 궤를 달리하는 영화임에도, 김윤석이란 배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추격자>의 그림자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런 점에선 <거북이 달린다>가 억울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세히 따져보면 <거북이 달린다>는 <추격자>보다 더 큰 그릇으로 관객을 감싸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물론, 그럼 점에 있어서 전형성에 머문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거북이 달린다>로썬 최선의 선택이었다. <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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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영화를 보셨군요!^^
저는 이 영화를 볼 수 있으려나요??
한국가는거 이제 2달도 안남았습니다. 비록 방문이지만 말이죠 ㅋ
안녕하세요. '실버제로'님 ^^
오.. 2달 있으면 일시 귀국하시는 군요 ^^
그때까지는 못 붙어 있을 것 같지만, 더 좋은 영화들이 나오겠죠 ^^
들어오시는 날까지.. 건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