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한 주는, 중간고사를 대비하여 시험문제를 출제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시험문제를 출제한다는 것이 별거 아닌 줄로 알았는데, 교사가 되어보니,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1학년 국어과목만 해도, 수업을 하시는 분들이 4분이나 되기 때문에, 그 선생님들이 출제하신 문제들을 모아서 편집하고, 교정을 보고, 그에 따른 몇 가지 제출물들을 챙겨야 하는데, 그 중에 한 분이 돌아가면서 Form에 맞게 편집을 하곤 한답니다.

  이번에는 제가 편집을 맡기로 했지요.
  그런데, 보면 볼 때마다 계속, 오타가 보이고, 이상한 편집이 보이고, 빠진 글자들이 보이고, 이상한 발문이 보이고, 오답이 보여서...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9장짜리 시험지를 50번은 본 것 같습니다.

  내일이 제출일이기 때문에, 오늘까지는 완벽하게 해놓아야 해서 좀 전까지 보았는데요.. 아.. 이제 중간고사의 '중'자만 들어도 토가 나올 지경이라니까요..

  여튼, 일 주일 내내 찜찜했던 마음이 이제 조금 편해진 것 같습니다.
  내일 출근하면 출력해서 선생님들끼리 돌려보고, 마무리 하면 되겠지요.

  어제도, 대학원에 다녀왔는데요.
  저녁 8시에 끝나고서는 '김제'를 거쳐 '목포'까지 다녀왔습니다.
  대학 동기의 부모님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인데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 날에 세상을 뜨셔서, 게다가 놀토가 껴있었던 덕분에 장거리였지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아직 그리 많지 않은 연세신데, 사진으로 뵙게 되었다는 사실이 좀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고, 동기 녀석들의 수척해진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이러저러 해서 몸이 고단하긴 하지만, 조금씩 재미를 찾아가고 있는 대학원 생활입니다.
  이제 1학기 째인 초짜가 뭘 얼마나 알겠습니까마는, 과제도 좀 잘하고 싶고, 세미나시간에는 질문도 좀 하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공부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원래 제가 그런 자리에서는 아무말 않고 앉아있는 편인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인지, 아니면 갑자기 궁금한 걸 못참게 되었는지 마구마구 질문을 해대고 있지요.

  뭐 어떻든,
  이번 학기에 소논문을 하나 써야 하는데요. 강좌명이 '한국 현대시 연구'라.. 평소 젤 궁금하게 생각했던 '윤동주'를 테마로 잡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윤동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가 왜 '저항시인'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은데요. 이게.. 막상 하려고 하니 막막하군요.
  아직 우리 나라에는 '저항시' 또는 '저항문학'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내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라, 시작부터 헤매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독립운동을 했냐 안했냐로만 '저항문학'을 구분하자면 별 것 아니겠지만, 그보다는 '윤동주'시에 나타나는 반성과 성찰을 '저항의식'의 산물로 볼 수 있느냐, 아니면 그냥 서정적 자아의 내면적 독백일 뿐이냐를 구분해야 해서, 그에 대한 자료도 필요한데요. 누구 도움을 주실 분 없으신가요?? ㅎㅎㅎ
  여튼, 그런 생각이니까, 틈틈히 짬나는대로 도서관을 뒤지면서 '시학''서정적자아''서정문학'에 대한 정의들을 찾아봐야겠습니다.   너무 재미없는 이야기만 한 것 같네요.

  아...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드디어, 제가 '선'... 이라는 것을 보게되었는데요.
  이 무슨 줏대없는 행동이냐...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지금은 아이들 둘이나 낳은 생활력 강한, 내가 좋아라하는 초등학교 동창녀석이 전화를 걸어서 대뜸 '소개팅'을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봤었더랬어요.
  당연히, 안하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를 해서는, 저번에 그 분이 다녀갔는데, 옆에서 보던 사촌 언니도 정말 괜찮고, 참한 분이라고 극찬을 했다고하면서 또 하라는 거에요.
  그래서 의례적 멘트를 또 날렸지요.

  '좋은 분이신 것 같네, 그런데 왜 나에게? 나보다 더 좋은 분 많을 테니, 좋은 분 소개시켜줘라~~'

  그런데, 지난 금요일날 또 전화를 해서,
  이야기 다 해놨으니까, 제발 한 번만 만나보라고 하더라구요.
  정말 곤란하더라구요. 나 때문에 친구가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친구가 날리는 결정적 한 방.

  '야! 내가 너 튕긴다고 XX이한테 말했더니, 그럼 누구 사귀는 사람 있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야!'

  그 말에 욱해서,
  나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한다고 약속을 해버렸습니다. ㅎㅎㅎ
  단순한 '차이와 결여' 입니다..

  원래 약속은 오늘이었는데요.
  이래저래 해서, 수요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아.. 생각만해도 부담스럽고, 생각만해도 나가기 싫어지고, 여튼, 풀지 못할 숙제를 받아놓고 하기 싫어서 딴 짓만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지라, 뭐하는 사람인지, 나이가 몇 인지, 어떤 취향인지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았는데요.
  나가서 뭘 해야지요?? 크흐...

  생각할 수록 끝까지 거부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담부터는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말할까봐요.. 훗...

  지금 생각같아서는, 별다른 후기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만,
  궁금해하신다면, 후기를 올려드리도록 할게요. 물론, 상대방 분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존중하는 입장으루다가요..

  아... 이렇게라도 해서 나가야할 의미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분한테 괜히, 죄 짓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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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버제로 2009/04/27 00:1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시험지가 9장이나 되다니...;; 상당히 충격적인데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거의 언어영역수준이군요...
    잠시 생각해보니 언어영역은 훨씬 길군요! ㅋㅋㅋㅋㅋ
    윤동주...
    제가 도와드릴수있는건 없군요. 워낙 전공이 다른지라... 그래도 궁금했던것들을 글을 써보며 정리할 수 있는 기회만으로도! 좋은것이 아닐까요??

    선은...ㅋ
    기대하지 않고 나갔다가 좋은 인연으로 연결되시길 바랍니다!
    글쎄... 선이라는거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또 한사람 안다고 생각하고 나가심이...;;;
    화이팅입니다~~

    • 차이와결여 2009/04/27 10:13  address  modify / delete

      ㅎㅎㅎ

      언어영역은 16면, 우리 학교 시험은 9면이에요. ^^

      거의 반쯤은 되는 군요. 언어가 원래 지문이 길어서리..

      다른 시험도 마찬가지겠지만, "국어"과목이라, 오타나, 말 안되는 것도 엄청 신경쓰인답니다.. 직업병인거죠..

      선은...
      저도, 편하게 맘 먹고 나갈려구요.
      운이 좋아서, 형식적인 만남이 아닌, 좋은 친구하나 만들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게 어딨겠어요 ^^

      세상이 모두 내 맘대로만 된다면야 ㅎㅎ

      평소 좋아하는 노래인데, 올려놓고 보니 딱 지금의 나한테 하는 노래네요.

      "실버제로"님두 화이팅요~~

  2. 괜찮아 2009/04/27 13:0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동병상련이네요. 전 사회 과목을 맡고 있는데요.
    그림, 사진, 지도 등이 들어가는 문제가 대다수이다보니 오타 발견하는 것 만큼이나 출력상태가 신경쓰여요.
    아무튼... 원로 선생님과 파트너인 지금은 모든 시험 문제의 편집을 제가 맡고 있는지라..
    셤 기간만 되면 초 까탈모드에 돌입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_-;;; 셤 끝나기전까진 늘 불안+찝찝-.

    각종 '팅'들, '팅'에 가까운 분위기들... 대략 2년간 잠정 휴업중입니다.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ㅋㅋ

    • 차이와결여 2009/04/27 15:10  address  modify / delete

      아하, 사회선생님이셨구나... ㅋㅋ

      맞아요. 양 옆자리에 사회 선생님과, 과학 선생님이 계시는데, 지도랑, 그래프 같은 거 무지 신경쓰시더라구요. ㅋㅋㅋ

      화이팅입니다..

      뭐.. '팅' 이런거, '선' 이런거.. 저도 언제 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ㅎㅎ

      2년 전에는 어떻게 하셨어요? 알려주삼.^^

  3. 실버제로 2009/04/29 07:2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근데 요즘 학교선생님이라 그러면 인기많지 않나요??
    제친구들 보니까 선생님이라고 하면 엄청 인기가 많은 분위기던데...;;
    자유롭고 싶으신걸까요??ㅋ

    저 고등학교때 1,2학년 담임하셨던 선생님이 그때는 올드미스셨는데, 지금은 7살짜리 아들이 있으시다하시더군요...ㅋㅋ
    뭐 다 때가 있나봅니다.^^

    그냥 편하게 가세요. ^^

    • 차이와결여 2009/04/29 23:51  address  modify / delete

      안정적 직장이란 면에서는 나름 인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그게 또 여자선생님이냐, 남자선생님이냐에 따라 조금 다르기도 하고,

      뭐 소심하다는 측면도 고려되어야 하구.
      다들 다르죠 뭐..ㅋㅋ

      자유라뇨.. 저는 구속을 좋아한답니다..

  4. 카르페 디엠 2009/04/29 17:4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블로그는 손 놓고 계신 줄 알았더니
    짬짬이 사생활 폭로중이시군요?^^
    실버제로님~ 결이님은 자유롭고 싶으신 게 아니라
    제가 보기엔 엄청 눈이 높은거예요
    마음속에 이미 몇가지 '기준'을 갖고계신 듯..ㅋㅋ
    이번 소개팅만 해도, 친구분의 평가에다 사촌누나라는 분의 평가까지 확인한 후에
    결정적으로 '사귀는 사람 확실히 없음의 증명'이라는 해괴한(?) 명분까지 획득하는
    그야말로 이성관계의 9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히히

    • 차이와결여 2009/04/29 23:53  address  modify / delete

      '카르페 디엠'님의 한 마디, 한 말씀에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니까요..^^

      정말 제가 눈이 높은 걸까요?
      십 몇 년을 아니라고 우겨오다가 얼마 전부터 눈이 높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은 했는데,

      마음 속의 '기준'이라는 것도 나름 수긍하는 측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기준'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도대체 내 안의 그 '기준'은 뭘까요? ㅋㅋ

      이성관계의 9단 이라는 평은 너무 높게 평가하신 듯...
      어설픈 3단 쯤 될까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