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를 것 없는 학교 생활이지만,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에 길들지 못했는지, 하루 종일 무언가에 쫓기듯 살고 있다.

  아침에는 출근 시간에 쫓기고, 수업시간에는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시간표와 여러가지 잡무와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느라 긴장하고, 저녁 때는 보충수업, 자율학습, 그리고 퇴근 시간에는 빨리 가서 자야한다는 압박감...
  주말에는 밀려오는 과제들에, 구해지지 않는 대학원 교재와 씨름을 하고, 또 한 주의 시작...

  아마도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퇴근길에는 적적한 기분이 드는 것 같다..
  왠지 적적하고, 왠지 혼자 남는 것 같고, 왠지 외롭기도 한 것 같은 기분...
  그러다가 몇 몇 이별의 순간들이 떠오르고는 한다..

  학기가 시작되며 여러가지 새로운 만남들이 가득한 이 시점에, 이별의 순간들이 떠오른 다는 것은 왠지 역설적이긴 한데,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암튼, 그렇다...

  가만히 음악을 듣고 오다가 불현듯 기억나는 어떤 순간.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서 기억이 정확하지도 않을테고, 또 감정의 과장 같은 것들로 인해 많이 왜곡되었을테지만, 어쩐지 그 때의 기분만은 생생하게 살아나서 가슴 언저리를 조금 아리게 하는 그런 때도 있는 것 같다.

  흔히들 남자는 첫 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하던데,
  내 첫사랑은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희미하고,
  난, 첫사랑은 없고 오직 참사랑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가장 최근의 이별이 생각나는 빈도면에서 가장 많다. 물론, 그 전 이별도 많이 생각나고 안좋은 이별도 괜찮았던 이별도 많이 생각나는데,

  안타깝게도 가장 최근에 했던 이별은 방법적인 측면에서 아주 올바르지 못해서 그 부분에 대한 죄책감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뭐,,, 방법이 옳지 못했을 뿐, 그 다음의 찌질한 순간들은 없었으므로 내용적으로는 괜찮은 이별이었다고 생각이 되지만, 하여간 아무리 많은 이별을 했다고 해도, 이별은 너무나 어렵다...
  요새는, 사랑도 무슨 공식처럼 법칙처럼 생각하는 경향들이 강해서, 서점에 가보면 연애의 기술을 고치하는 책들도 많이 있던데,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대, 단 한 번도 비슷한 사랑은 없었고, 따라서 이별의 방식도 가지가지 였다.

  여튼,
  가장 최근의 이별은 정말 엉뚱하게도 장난처럼 끝나버렸고, 얼굴도 보지 못하고 전화로 이별을 해버렸는데, 사실 서로간의 감정의 골이 그다지 깊지 않았으므로 만나서 잘 끝냈어야 했다.
  이별을 확인하는 말 한마디를 하루 정도 늦춘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내가 한참이나 나이 많은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애들처럼 유치하게 끝냈다는 것에 좀 씁쓸한 생각을 감출 수는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실상은 내 마음 속에서도 이별은 그 전화통화를 하던 날이 아닌 몇 일 뒤의 어느 날이었다.
  왠지, 엉뚱하게 장난처럼 끝나버린 사랑 앞에서 조금 당황하고 있던 다음날, 불현듯 그사람과 약속했던 것들 중에서 해주지 못했던 선물이 생각났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 브랜드의 속옷...
  왜 하필 그 시점에 그 선물이 생각이 났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선물은 그녀가 아주 맘에 들어했었고, 나도 꼭 해주고 싶었는데, 몇 군데를 돌아다녀봐도 품절이 되었거나, 칫수가 맞지 않아 자꾸만 어긋나던 것이었다.

  이미 근처에 가볼만한 곳은 다 둘러봤고, 아예 서울 쪽의 큰 상점을 가거나, 본점을 찾아가지 않으면 구입할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수고까지 한다는 것은 또 그 당시의 상황에 맞지 않는 것 같아 포기하려고 했을 때, 우리 동네에 그 상점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고 말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갔더니.. 역시.. 떡 하니 기다리고 있는 속옷..

  그 순간에도 살까 말까 고민을 한참 하다가 결국 사게 되었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전해주고자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는 그녀.
  결국, 그녀의 집 현관 손잡이에 걸어주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그 때의 내 행동이 정당하거나, 옳다거나, 하는 생각을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솔직히 그녀가 그 선물을 받고 어떤 참담한 기분이 되었을지 혹은  아무 생각이 없었을지, 아니면 고맙게 생각했을지
  지금 생각을 해봐도 알 수는 없다.
  어쩌면, 알량한 내 자존심이,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어줍잖은 생각으로 합리화 되어서 나타난 이기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내 행동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의 집 앞에서 그녀의 이름을 포스트 잇에 적으면서 떨리던 내 손과,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그 짧은 순간에 내 마음 속에 일어나던 작은 울림과,
  이제는 그나마 그녀에게 닿던 작은 실오라기 같은 관계 마저도 내 손으로 끊고 말았다는 그 생각들이
지금도 선연하게 기억이나고 가슴을 아리게 하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음에, 행복하길 바란다는 하지못했던 그 말을 머릿속으로 대신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던 그 날의 기억도 아직 선명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닥 유쾌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싫은 것도 아녀서, 거의 매일 여러 가지들을 돌아가면서 생각하고는 하는데,

  내가 이런 생각,
  마치 원죄를 참회하는 것과 같은 이런 상태에 빠지는 것은, 일상에 찌들어서인건지,.. 그래서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봄날이 되어서 이상한 봄기운에 봄바람이 날려고 하는 것인지.. 실은 그게 궁금하다.
  뭘까.. 이런 내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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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코 2009/03/17 01:1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가장 후자가 아닐까 싶은데요?^^

    조용히 다른사람을 일기를 몰래 본 기분인데
    이 기분도 나쁘지는 않군요^^

    • 차이와결여 2009/03/17 13:24  address  modify / delete

      역시 후자일 가능성이 큰 것이군요.. ^^

      아무리 생각해도 봄바람은 남자들이 더 많이 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어차피 공개된 일기니까요.. 답글도 남겨주시고.. 편안히 쉬다가 가셔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