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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일본 포스터



* 2009년 1월 6일 17시 45분
* 스폰지 하우스 (중앙)
(★★★★★)

  '수오 마사유키' 감독,  '카세 료' 주연의 법정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보고 왔습니다.
   계획대로였다면 벌써 봤어야 할 영화였지만,
   이래저래 바빴던 관계로 오늘에서야 보고 말았네요.

   영화를 보는 동안에 참으로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가 개봉했을 초기에 보고와서 블로그를 작성했어야 이처럼 좋은 영화를 조금이나마 많은분들에게 알리는데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면서요.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영화는 <셀 위 댄스>를 본 것이 전부였는데, 그 영화에서도
   '아, 이 감독은 자기가 이야기 할 것을 정말 정성스럽게 표현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한 컷 한 컷이 모두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서 어느 장면 하나를 뺄 것이 없는 그런 느낌.
   뭐 그렇다고 화면이 아름답거나, 이야기가 퍼즐 맞추기처럼 조직적이라는 것은 아니고,
   딱, 할 이야기들만 하는데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함이 없달까요.. 군더더기가 없달까요. 그런 느낌입니다.
   아울러, 한 장면을 찍는데도 한 천번쯤은 생각하고 찍었을 것과 같은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이와 같은 느낌은 영화의 처음 시작에서부터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에 일본 고등재판소가 비춰지는 것까지 쭉 이어졌다는 게 제가 받은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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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치한 맞잖아' 난데없는 상황에 당황하는 '텟페이'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스틸

  영화는 빠쁜 출근길 최대 탑승인원의 250%가 넘는 만원 전철 안에서 시작합니다.
  '카넷코 텟페이(카세 료)'라는 청년이 말쑥하니 정장을 차려 입은 채 전철에 오르고 도착지가 되어 문이 열리고 몇 발자욱을 내딛지만, 이내 자신의 소매를 잡는 한 소녀를 바라보게 되지요. 그 소녀는 '텟페이'가 치한이라고 말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연약해 보이는 그 소녀를 도와 역무원을 부릅니다.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텟페이'는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해보지만, '역무원'은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하자며 '텟페이'를 데리고 갑니다. 자신이 결백하다고 믿었던 '텟페이'는 사무실에 가서 대화로 잘 해결하면 되리라 짐작했지만, 사무실에 도착한 역무원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경찰에 연락을 취할 뿐이었지요.
  그 때, 급히 올라탄 열차 문에 옷이 끼어서 움직이느라 실례를 범한 탓에 사과의 인사를 나누었던 옆 자리의 여성이 사무실로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은 문에 옷이 끼어서 그걸 빼려고 했을 뿐이에요. 범인이 아니에요."

   하지만 역무원은 들은채만채 그녀를 돌려보내고 '텟페이'는 경찰서로 이송됩니다.
   가뜩이나 '치한' 업무가 많은 경찰서에서는 그런 '텟페이'의 모습도 여느 '치한'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 짐작하며 쉽게 일을 처리하려 하지만, '텟페이'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형사들 앞에서 간단히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벌금을 내면 쉽게 풀려날 수 있을 일이었지만, '텟페이'가 계속 혐의를 부인하는 탓에 이내 유치장에 송치되게 되는데,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26살의 청년 '텟페이'에게 유치장에 들어와 있는 한 사람이 당번 변호사를 만나라고 권유를 하지요.
   그렇게 만난 변호사 마저 '재판'은 어려운 일임을 이야기하며 '텟페이'에게 자백할 것을 은근히 권유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결백을 믿어 의심치 않는 '텟페이'는 변호사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길고 지리한 법정 싸움이 진행되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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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들에게는 말을 조심하는게 좋아' 텟페이에게 조언을 하는 '아라카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스틸


   아무래도 법정의 이야기다 보니, 이야기의 시작을 자세히 아셔야 이해가 쉬울 듯 하여 좀 자세히 적었습니다만, 영화의 러닝타임이 140분이 조금넘는 긴 영화이고, 제가 위에 쓴 줄거리 다음부터가 진정으로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아마 스포일러가 되지는않을 듯 하니, 영화를 보실 분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라고 해서 지루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요 근래 1년 동안 본 영화들 중에서, 이만큼 집중해서 본 영화는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아마 충분히 흥미진진하게 영화를 보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암튼,
   이렇게 영화는 모든 것을 미리 밝혀놓고 시작합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한 사람이 있고, 그는 힘이 없는 한 개인일 뿐이고, 그는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워야하고, 그를 도와주는 선량한 마음의 변호사가 있고...
   어디선가 많이들 본 스토리라인 일 겁니다.
   대개의 법정 영화가 이런 구도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가 보는 이로 하여금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는 그 죄의 보편성 입니다.
   우리가 범죄라고 하면 쉽게 떠올리는 강도나 강간, 살인, 사기와 같은 미치지않고서는 나에게는 전혀 일어날 일이 없는 커다란 범죄가 아니라 전철 안에서의 추행이라는 어찌보면 너무나 일상적이고, 너무나 사소하여,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억울하게 치한으로 몰려봤거나, 추행을 당해봤을 수도 있다는 그 보편적인 성격.
   누구나 그런일을 당할 수 있고, 할 수도 있을 거라는 그 사소함 때문에 어쩌면 더 쉽게 영화에 내용에 빠져들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텟페이'가 '치한'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고, 아니길 바랐으며, 또 아닌 것으로 끝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만약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옴짝달싹 안하고 영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요.
   그만큼 영화의 스토리는 흥미진진하게 흘러갔고, 영화를 다 보고나선 박수라도 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텟페이'를 도와주게 되는 선량한 변호사 '아라카와 마사요시(아쿠쇼 코지)'의 대사에도 나오는 것 처럼,
   이 영화에는 '형사재판'이라는 것을 통해서 일본 사법체계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어서 더욱 놀랍습니다.
   우리 나라 수사과정도 비과학적이고, 어떤 경우에는 증인 진술 만으로도 유죄가 결정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의 경우도 비슷한 듯 합니다.
   어찌 보면, 사법체계와 같은 것도 일제시대를 통하여 우리 나라에 전해진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테니 어쩜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를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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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를 찾습니다' 좌로부터 미츠이시 켄, 모타이 마사코, 야마모토 코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스틸


   아무튼, 수사과정에서의 형사들의 유도심문이라든가,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전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서 든지 유죄를 입증하고자 불리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검찰, 자신의 위신을 위해서 유죄판결을 꺼려하는 재판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합리한, 자신의 무죄를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는 피고인이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불합리함.
   이와 같은 사법체계의 문제점들을 이 영화는 피해가려고 하지 않고 정면 승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법정의 배치구도를 주의깊게 보신적이 있다면 아시겠지만, 그 높은 곳에서 피고인을 내려다보듯 위치하여 신만이 할 수 있다는 인간 심판의 기능을 행사하는 권위의 사법부, 허나 정작 사법부 자신들의 죄는 누구에게 심판 받아야 하는지요.

   아마도,
   인류의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만들어진 그런 배치와 구도일테지요.
   우리 나라의 예를 봐도, 죄인은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또나, 암행어사는 동헌 높은 곳에 그것도 권위있는 자세로 의자에 앉자서 호통을 칠 뿐이고,
   서구의 예를 봐도, 아무리 배심원이나 다른 무엇이 있다고 해도 최종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은 항상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을 보면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첫 번째 재판 장면에 '텟페이'의 친구가 비니를 눌러쓰고 방청석에 앉자, 서기관이 모자를 벗으라고 이야기하는 짧은 장면을 통하여 법정에 대한 굉장한 거부감을 느끼고 기분이 몹시 상했습니다.

   도대체, 그러한 압도적인 분위기에서 자신의 죄를 추궁당하고 자신을 변론해야한다는 것은 차라리 죄를 인정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암튼,
   여지까지 법정에 설만한 일은 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어야 겠지만,
   몇 년전에 검찰청에 잠깐 들릴일이 있었는데,
   몇 번 검사실을 찾아가 문을 열고 사무관이랑 이야기를 나누는 그 짧은 시간동안에도 엄청난 압박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법은 만민 앞에 평등하다는데, 은연중에 법 앞에서 움추러들게 되더군요.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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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죄라는 것은 오직 나만이 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스틸


   여튼,
   영화는 상당부분을 12차에 걸친 재판과정에 할애하고 있고, 또 상당부분은 지하철 장면에 사용되고 있어서 아마 촬영을 하는데에는 그다지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는 볼거리 보단 내용이니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200% 만족하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거기에, 짧게 짧게 출연하는 배우들의 비중도 상당합니다.
   '텟페이'의 어머니로 출연하는 <안경>, <카메모 식당>의 재간둥이 아주머니 '모타이 마사코'.
   '텟페이'의 자취방 관리인으로 짧게 출연하는 '다케나카 나오토'
   얄미운 두 번째 재판관으로 나오는 '코히나타 후미요'
   또다른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으로 나오는 '미츠이시 켄'

   주인공인 '카세료'와 변호사 '야쿠쇼 코지'를 제외한다고 해도 그야말로 호화스런 캐스팅입니다.
   당연히 그들의 연기는 흠잡을데 없이 훌륭하지요.
   나름 적재적소에서 튀지않는 연기를 통해 이야기를 빛나게 해주고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길고지리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을 중간중간에 변호사가 피고인의 가족들에게 재판의 과정을 설명해주거나, 재판관이나 검사의 심리를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관객들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는
   '나도 재판에 나가게 되면 저렇게 해야지'하는 생각도 가지게 해주었고,
  제 옆자리의 '법과 사회'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께 추천도 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좋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좋은 영화를 보게 해준 배우와 스텝과 감독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영화.

   너무 감상에 빠져 극찬을 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칭찬해주고픈 영화였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본 영화관에서는 내일까지 상영일정이 잡혀있더군요.
   아마도 다른 영화관에서 순회상영을 하지 않을까요?
   시간 되시면 꼭 한 번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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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aisnlee 2009/01/11 23:5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텟페이'라는 청년이 정말 무죄라는 확증이 없없기 때문에 더욱 아라송한 영화로 기억되네요.
    (사실 관객 입장에서는 거의 무죄로 알지만 '정작 진실을 아는 이는 나 뿐이다'라는 말이
    오묘하게 들리더군요. 영화에서 명쾌하게 정의를 해주지 않아서 조금은 헷갈리더군요)

    하지만 그걸 떠나서 딱딱할것만 같은 법정영화가 물흐르듯 흘러가는 걸보고 감독님의
    연출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ㅋ

    '카세 료'군도 이 영화 이후로 무지하게 좋아하고 있다는 ㅋ
    (저는 미리 말씀드리지만 남자입니다 -_- 게이는 아니고요 ㅋㅋ)

    • 차이와결여 2009/01/12 08:21  address  modify / delete

      생각해보니, 그런 면도 없잖아 있긴 하네요. ^^

      '텟페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추행하는 장면이 사실대로 표현한 부분이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영화는 범죄 스릴러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저도 '카세 료'가 좋습니다. 저 역시 남자지만요. ^^
      댓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