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연인들> 공식 포스터
* 2008년 12월 17일 18시 10분
* 씨네큐브 (광화문)
(★★★)
위드블로그에서 <굿바이 칠드런> 시사회 리뷰어로 선정해준 바람에 '씨네큐브'에 갈일이 생겨서 겸사겸사 보게 된 <북극의 연인들>.
흔치 않은 스페인 영화라 조금 생소한 느낌들이 없진 않았지만, 꽤 흥미있게 보았습니다.
얼마 전, '씨네큐브'를 찾았을 때 보았던 전단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시사회에서 보고는 감동하여 영화를 위한 노래를 작곡했다느니, 하는 너스레들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구요.
앞으로 해도, 뒤로 해도 똑같은 이름을 가진 '오토(Otto)'와 '아나(Ana)'가 우연과 같은 운명을 살아가면서 만나게되는 사랑이 북극의 설원 풍경과 어우러져서 애틋하게 다가온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씨네큐브의 두 개의 상영관 중에 작은 상영관(2관)에서 상영되었는데요. 생각보단 꽤 사람이 많았습니다.
'안녕, 난 아나라고해.' '난, 오토' <북극의 연인들> 스틸 컷
'사람은 누구나 몇 개의 원을 그리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한 개의 원을 그리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마무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와 같은 의미의 '오토'의 독백과 함께 영화는 하루종일 해가 지지 않는 북극의 태양의 궤적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어린 소년이었던 '오토(펠레 마르테네즈)'는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아이였는데, 그를 태어주던 아버지는 오토에게 좀더 살게되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엄마와 이혼을 하게됩니다. 그런 아버지가 싫었던 오토는 하교길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무시하고 친구가 차버린 축구공을 쫓아가다가 우연히 '아나(나야와 림리)'를 만나게 되고 '아나'가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되버립니다. '아나'는 얼마 전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매일을 눈물로 지새우던 어머니를 외면한 채 아버지의 죽음을 되돌리고자 가는 길과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던 거죠. 그렇게 뛰어가다가 숲에서 넘어졌는데, 그 뒤에 '오토'가 와 서있었습니다. 그녀는 '오토'를 바라보며 아버지가 돌아온 것이라고 믿어버리게 되죠. 그렇게 짧은 우연으로 마주친 둘이었지만 운명은 그리 간단하게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양 아이의 부모가 서로 좋아하게 되어버린 겁니다. 쉽게 말해서 두 아이는 그 때부터 남매사이가 되어버린 거였습니다. 하지만 둘은 서로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오랫동안 숨기고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밤 내방으로 건너와. 용기를 내!' <북극의 연인들> 스틸 컷
이야기의 발단부 정도 되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하게 바라보면 이야기는 흔하디 흔한 이복남매 간의 러브스토리 처럼 느껴집니다만, 영화에 여러 가지 장치를 설정하여 흔한 이야기를 흔치 않은 이야기로 바꾸어 냅니다.
일단, 영화의 장면을 '오토'의 시선과 '아나'의 시선으로 나누어서 같은 이야기를 각각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식으로 구성해놓아서, 그들의 우연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음을 강조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구성은 더이상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그만큼 사건을 객관화하여 바라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흥미로운 방식인 것 같습니다.
또한 그들의 이름에서 연유하듯 처음과 끝이 이어져있는 그들의 삶의 궤적이 정확히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시절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불교의 '연기설', '윤회설'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조금은 이질적이긴 해도 신선했습니다.
'나의 운명은 끝났어요.' <북극의 연인들> 스틸 컷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오토'의 독백이 영원을 상징하는 '원'을 이야기 하며 운명을 인정하는 태도라고 한다면, '아나'가 처음 독백하는 장면에서는 우연을 긍정하고 있습니다.
'나는 수많은 우연들을 경험하며 살아 왔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이자리에 오래 머물 것이다. 가장 중요한 우연을 기다리는 것이다.'
역시 영화에서 두 번이나 나오는 대사인데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저런 느낌의 대사를 하면서 '아나'는 '오토'와의 우연한 만남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지요.
이렇게 각기 다른 '우연'과 '운명'의 자아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닿아가는지에 대해서 영화는 여러가지 상징적인 장면들로 표현하고 있는데, 제게 가장 인상깊게 남아 있는 장면은
'북극'에서 인생 최고의 운명적 만남을 기다리고 있던 '아나'가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데, 하늘 위로 '오토'가 조종하는 비행기가 지나가면서 호수면에 비행기의 모습이 비춰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비행기는 비스듬히 날아와서 벌거벗은 '아나'의 두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듯 다가가는데, 그 때 문득 '아나'가 무언가 운명적인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감하게 되는 장면이었는데요.
그 비행기가 미끄러지듯 빨려들어가듯 수면 위에 비춰지는 장면이, 몽환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으로, 그리고 애로틱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여튼, 그렇게 많은 상징적인 장면과 끊임없이 흐르는 애상적인 음악이 매우 인상적인 영화.
때문에, 이야기가 쏙쏙 들어오지는 않아서 집중하긴 어려웠지만, 뭔가 알지 못할 묘한 여운을 남겨주는 영화 였습니다.
'우연'과 '운명'의 회오리에 휩쓸리는 두 사람 <북극의 연인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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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북극의 연인들 _ 우연과 운명의 러브스토리
Tracked from the Real Folk Blues 2008/12/19 15:04 delete북극의 연인들 (The Lovers From The North Pole, Los Amantes Del Circulo Polar, 1998) 우연과 운명의 러브스토리 이 영화는 <섹스 앤 루시아>를 연출했던 훌리오 메뎀 (Julio Medem Lafont)의 1998년 작입니다.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국내에는 올해 12월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개봉하게 된거죠. 사실 큰 관심이 있던 영화는 아니었는데, 친한 블로거 분이 오프라인에서 전해준 '괜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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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 영화를 논하면서 '운명'과 '우연'에 대해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네요 ^^;
너무너무 좋았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런 클리셰를 갖고 있는 영화들 가운데서는 나쁘지 않았던 괜찮은 작품이었던것 같아요~
네. 맞아요.
'오토'와 '아나'의 첫 대사들이 와서 꽂히면서 '운명'과 '우연'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더라구요. ^^
'아쉬타카'님 말씀대로 이 계절에 딱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좀더 애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건 제 취향이 너무 신파적이라 그런 거겠죠. ^^
댓글, 트랙백, 방문 모두 감사드립니다.
얼른, <굿바이 칠드런> 포스팅하고 놀러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