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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속삭임> 공식 포스터



* 2008년 11월 30일 16시 40분
* 씨네큐브 (광화문)
(★★★★)

(이 글에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큐브'에서 열리고 있는 '루이 말' 감독의 특별전 중 첫 번째 상영작 <마음의 속삭임>입니다.
  제가 '루이 말'이라는 감독을 알게된 것은 '쥴리에트 비노쉬'가 나오는 <데미지>를 통해서 였는데요. 그 영화가 개봉됐을 당시에는 하도 외설 논쟁이 많아서 시끄러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 때 저는 그런 영화를 볼 수가 없는 어린 나이였었구요.

  그래도 두 남녀가 벌거벗은 채로 서로 다리를 엇갈려서 앉아 있는, 그리고 절정에 다달은 듯 상체를 뒤로 젖히고 있는 '쥴리에트 비노쉬'의 모습 만으로도 너무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포스터를 보면서 누가 볼까 가슴 졸여하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지금은 너무나 커버렸지만요.

  암튼,
  당시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너무나 좋아했었던 그녀였기에 <데미지>역시 보고 싶었으나, 극장 매표원을 속이고 들어갈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여짓껏 그 영화를 제대로 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개봉판은 많은 부분이 삭제 되어서 상영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서요. 차일피일 미루다가 역시 못보고 스쳐간 영화가 되고 말았군요..

  그런 문제적 감독의 영화 <마음의 속삭임>.
  영화를 보기 전부터 '마음의 속삭임'이란 말의 울림이 매우 맘에 들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만나게되는 감독의 영화이기에 뒤에보게 될 <라콤 루시앙>, <굿바이 칠드런>등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감독 스스로 자신의 '최초의 영화'라고 일컬었을 만큼 감독의 모든 역량이 골고루 녹아 있는 영화를 만나게 된다는 것 또한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지요.

  영화는
  1950년대 프랑스 '디종'이라는 도시에서 시작합니다.
  15살 소년인 '로랑'은 흔히 우리들이 말하는 사춘기의 혼란을 겪고 있는 아이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보다 개방적인 프랑스의 상황인지라,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섹스'와 '키스'가 친구들 사이에 화제로 오르기도 하고, 심지어 집에는 학교에서 쫓겨난 두 명의 형들이 있기도 한, 중산층 '부르주아지' 출신의 소년이지요. 집에는 두 형 말고도, 엄격하기 그지 없는 의사 아버지와 마음 씀씀이가 천사보다 더 고운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정 배경 속에서 '로랑'은 카뮈를 읽고 자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가게에서 '찰리 파커'의 음반을 훔쳐 들으며 재즈만이 최고의 음악이라 여기는 등 다른 아이들보다 좀더 감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인데, 부모님이 집을 비운 사이에 벌어진 파티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형들의 여자 친구와 첫키스를 하게되고 나아가 형들 손에 이끌려 술집의 여자와고 첫 섹스를 경험하는 등 그가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고, 형들의 짖꿎은 장난으로 '로랑'은 그런 과정마저도 순탄하게 흘러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발견된 병으로 인하여 아버지와 두 형과 떨어져서 엄마와 단둘이 온천으로 요양을 가게된 '로랑'은 자신을 괴롭히던 '아버지', '형들'의 손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자유롭게 여자애들을 만나고 스스로의 힘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방법을 찾아가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를 방해하는 마지막 남자가 있었으니, 그는 엄마의 '애인' 이었습니다. '디종'에서 만나는 것도 모자라서 '온천'에까지 쫓아온 그 남자가 엄마를 데려가자 '로랑'은 큰 질투를 느끼게 되는데, 아버지에게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 질투로 인하여 엄마를 바라보게 된 '로랑'은 엄마가 돌아오게 된 날 피치 못할 우연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화를 본 것이 11월 30일이었으니까 보름이나 지나서 리뷰를 올리고 있는지라 세세한 부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서 좀 자세하게 줄거리를 적어보았습니다만,

  영화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는 약간은 들떠서 부유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무엇하나 안정적이지 못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형들, '로랑' 모두가 조금씩 떠 있는 듯 그 실체가 잘 잡히지 않고 영화적인 것으로만 여겨지는데, 이는 '로랑'이라는 소년의 자아의식이 그렇기 때문이며, 배경으로 삼고 있는 1950년대는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프랑스 자체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도 영화의 분위기에 일정부분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영화가 진행되어 가다가 결말에 이르러 '엄마와 아들의 정사'라는 파격적인 부분에 도달해서는 이제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이 결말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현대적, 영상적 버전일 뿐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했습니다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엄마와의 잠자리를 끝내고 다른 아이를 찾아가 하룻밤을 지새우고 돌아오는 '로랑'을 뜻밖에도 '아버지'와 '형'들이 맞이하게 되고, 잠자리에서 막 나온 듯한 부시시한 모습의 엄마가 '로랑'과 눈을 마주치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웃음 터트리고 온 가족이 화기애애하게 웃음을 웃던 장면,
  시종일관 불안정하고 유쾌하지 못하게 진행되던 영화 속의 이야기가 일순간에 사라지며 마치 그 웃음으로 '로랑'의 성장을 격려해주기라도 하듯 하는 온 가족의 유쾌한 분위기에 감독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파격적인 모자 간의 정사라는 것 때문에 영화가 종영되고도 관객들이 나즈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또한 재미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전부를 이해하라고 하기엔 무리이겠죠??

  하지만, 저는 어떠한 테크닉이나 영화적 에피소드나, 과도한 이야기 전개 없이 꿋꿋하게 할 이야기만을 해 나가는 이 때쯤의 프랑스 영화들이 매우 좋아서 재미있게 봤던 작품입니다.

  그의 다음 영화도 그래서 기대가 되지요..
  포스터는 지금 봐도 너무 멋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감독의 자전적인 작품이라고 하던데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자전적인 건지... 궁금함을 참을 수 없는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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