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직업인지라, 하루에 부모님과 마주앉아서 식사 한 끼 제대로 할 적이 없고, 좀 일찍 귀가라도 하는 양이면 아버지는 '왠일이냐'라는 반응을 보이시고, 어머니는 '아들 왔어? 왜 이르케 일찍왔어?' 라고 말씀하시는 쌩뚱맞는 상황이 매일 같이 벌어지고는 한다.

  그렇게 일찍 들어가는 날에도, 아버지는 거실에 누우셔서 '1박2일', '패밀리가 간다', '무한도전'등의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있는 채널 모두 돌려가며 밤늦게까지 시청하시고, 12시가 넘으면 7080 가요프로그램, 혹은 '인간극장'과 같은 휴머니즘 가득한 프로를 불 꺼놓고 시청하시다 조으시고, 어머니는 드라마를 보러 안방으로, 나는 컴퓨터를 하러 내 방에 처박히니, 사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둘러놓고 있지만, 각자의 영역이 확실한 우리 가족의 모습이다.

  그렇게 지내오던 도중, 얼마 전부터 속탈이 나서 병원신세를 지고 있었던 나를 보다 못한 어머니가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차려주시는데, '그냥 두시라고 내가 알아서 먹겠다고' 고집을 부릴까하다가, 어차피 조금 있다가 좋든 싫든 집을 나가게 되면 하시고 싶어도 못하실텐데, 굳이 혼자 밥차려 먹을 능력도 없는 놈이 우겨대는 것이 웃기기도 하여 그냥 차려주시는 밥을 낼름낼름 받아먹고 나오는 참 민망스러운 모습으로 뻔뻔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요즈음이다.

  하여, 그렇게 아침을 차려주시고 5분쯤 곁에 앉아서 주저리 주저리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머니와 나의 대화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한데, 사정상 내 후년은 지나야 집에서 나갈 수 있는 나는 민망한 마음에 이렇게 말하였다.

  "내 후년에는 우리집도 이사가야 하니까.. 그땐 장가를 가든 안가든 나가서 살거야."
  "그래, 그땐 엄마 아빠도, 시골로 내려가서 살아야 하니까, 너도 여기서 터잡고 살아~."
  "여긴 너무 멀지, 학교 가까운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어? 기름값이 얼만데, 그 동안 아파트값이나 확~ 올라서 대출 안받고 판교나 수지쯤으로 갔음 좋겠당."


  우리 집은 동탄신도시 제2지구에 포함되어서 2년 정도 있으면 좋든싫든 땅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한 푼 두푼 모은 돈과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작년에 이 근처에 작은 집을 하나 장만해둔 터라 이런 대화가 오고 갔던 것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몇 숟가락을 떠먹고 있는데,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시던 어머니가 그러신다.

  "이그, 여자로 태어났어야 고생안하고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받아먹고 살텐데, 남자로 태어나서 이 고생이다."

  ㅋㅋㅋ
  우리 집은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남자들 뿐이 없는 집이기도 하고, 내가 장남인 관계로 어머니가 각별히 아끼시는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뭐 남다르게 남아선호사상을 가진 집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남자도 부엌일을 하지 않으면 장가가기 힘들거라는 아버지의 협박 속에서 이래저래 눈치를 보며 부엌일을 거들면서 살아왔던터라, 어머니의 저 말씀이 다만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평소에 딸이 있었다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고 하실거라던 말씀을 생각해볼때 한참이나 생뚱한 말이었다.

  "그러게 말야, 여자로 태어났으면 남자들 후리고 다녔을텐데 말야.. 무지 아쉬워~~"
  "뭐?? 후려??"


  황당해하는 어머니를 두고 출근을 하면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여자로 태어났으면 정말 재밌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별스러워서, 나 정도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야 흔하고 흔하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마인드를 가지고 여자로 살아간다면 과연 나의 평판이 어떨지 꽤나 궁금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어떻게 하면 남성들에게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지는 제대로 알고 있으니까, 나름 멋있는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교사는 직업으로 삼지 않았을 것 같고, 그렇고그런 회사에 다니면서, 과장이나 대리 정도의 직함을 가지고, 지금쯤 또다른 회사에 다니는 서른 중반의 사내와 연애도 하고 있을 것 같다.
  이제까지의 연애는 크고 작은 거 포함해서 한 열 댓번은 했을 것 같고, 그 중에 두 번쯤은, 목숨까지 걸었을 정도의 열정적인 사랑이었을게다.
  그간 이래저래 치장하고 문화생활을 즐기느라 모은 돈이 별로 없어서 걱정이지만, 결혼을 한다고 해도 당분간은 직장을 그만 둘 생각이 없을 것이고, 그래서 미리 연인에게 다짐을 받아두고 시작했을 것 같다.
  슬슬, 나이가 부담이 되기 시작해서 곧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고 있지만, 결혼을 위한 결혼은 하지 않을 것이며, 시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싫지 않고 오히려 이쁜 며느리라는 소리를 듣고 싶으나 기왕이면 분가해서 살았으면 하고 남친을 꼬실 것이다.
  때가 되니, 부모님께도 죄송한 마음에 돈으로라도 호강시켜드리고 싶어서 이리 저리 알아보지만, 완고한 아버지 때문에 항상 문제이니까 연말쯤에는 내려가서 아버지를 설득해봐야겠다 생각할 것 같다.
  결혼하고나면 아이를 갖는 것이야 당연한거고, 여자로써 남자들은 경험할 수 없는 생명의 신비를 만끽해볼 준비는 되어있지만, 내 모든 것을 아이에 걸어야겠다고 생각할 바에는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무엇때문에 살아야 하는 것인가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이왕 살고 있는 거 후회없이 살아야겠다는 마인드와 소소하더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위해서 원하는 것은 모두 해볼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외모도 중요하지만, 그 만큼 내용도 차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끊임없이 내 소질을 닦기위해서 나에게 투자하겠다는 마음 가짐으로 살아갈 것이다.

  오... 쓰다보니까 무지 재미있는데....  끝이 없을 것 같다..
 
  저렇게 말같이만 된다면야 무슨 고민이 있겠냐만은 상상은 여기까지...
  진짜 이상적인 여자로 표현되어 있지만... 내 머릿속에는

  왜 자꾸만 내 사진에 긴 생머리가 겹쳐져 클로즈업 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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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버제로 2008/12/19 04:2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기대되는데요!ㅋㅋㅋㅋㅋ
    포샾으로 처리된 사진 기대하겠습니다!! 곧 올려주실꺼죠?ㅋ

    • 차이와결여 2008/12/19 09:04  address  modify / delete

      ㅎㅎㅎㅎㅎ
      잔인하세요..ㅋㅋ

      아.. 기대에는 부응해야 함이 올바른 태도일텐데요..

      너무 어렵겠습니다..

      기대를 접어주세요..ㅎㅎㅎㅎ

  2. 카르페 디엠 2008/12/21 12:3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제가 포토샵을 쬐끔 만질 줄 아는데..아쉬운대로 조~오기 위에 있는 사진으로다가
    한번 작업해볼까요?
    블로그에 올린다는 확답만 주시면 얼릉 포샵질 들어갑니다~
    실버제로님의 기대를 무시하지 말아주세요~큭큭

    • 차이와결여 2008/12/21 22:43  address  modify / delete

      아... 너무 하십니다. 정말..ㅋㅋ

      '카르페 디엠'님이나, '실버제로'님과 같이 좋으신 분들에게 제 망가진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은 아무렇지 않지만,

      혹여나 처음 들어왔다가 깜짝 놀라실 분들을 위해서 참아주세요..ㅋㅋㅋ

      절대 안올릴거에염..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