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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끈은, 왜?>




* 구두끈은, 왜? -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떠오른 참을 수 없는 물음들
* 니컬슨 베이커, 문영혜 역, 강


  '정혜윤'의 책 <침대와 책>에서 알게된 <구두끈은, 왜?:The mezzanine>이라는 소설책입니다.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떠오른 참을 수 없는 물음들'이라는 긴 부제가 붙어있기도 합니다.

  소설은,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볼일을 마치고 회사로비로 들어선 주인공이 자신이 근무하는 'mazzanine'층 -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고 아랫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층, 우리나라의 개념으로 볼때, M으로 표시되는 중간층 인 듯-으로 올라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 앞에 들어설 때, 떠오른 생각으로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그의 볼일이란 것은 점심시간이 시작하기 전 피로를 풀기 위해 벗어두었던 구두를 챙겨신고 끈을 묶으려는데 갑자기 끊어져버린 구두끈을 근처 CVS라는 잡화점에서 사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소설은 한시간의 점심시간 동안 주인공이 하게된 생각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생각, 사유, 사고의 깊이와 관심이라는게 정말이지 세세한 부분까지 미치고 거기에는 자신의 지나온 역사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지금의 사고가 존재하게된 연유를 밝히는 것까지 정말 온갖 종류의 다양한 생각들을 펼치고 있어서 마치 한 사람의 머릿 속에 들어가서 그의 생각의 강물을 따라 배를 타고가며 지나가는 풍경을 보듯이 소설은 읽혀집니다.

  또한,
  이 사람의 생각이라는게 어찌보면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편집증적 증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가 설명하는 예들,
  '걸어가면서 손가락으로 달려가는 사람 만들기', '에스컬레이터 안전선 안에 정확하게 발 올려놓기' 등의 버릇들이나,
  (저는 이와 똑같은 버릇이 있습니다.)

  '여자들이 겉옷을 벗지 않고 브래지어를 벗는 장면을 보고 놀랐다'라던가, '화장실 소변기 앞에서 주위 사람들 때문에 볼일을 보지 못했던 기억'과 같은 예들을 접하다 보면, 주인공의 생각이라는 것이 남들과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상시에 하고 있는 생각의 깊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때문에,
  책을 읽어가는 도중 수시로 어이가 없다는 이유로 웃음을 짓거나, 작가의 번뜩이는 재치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에 맞장구를 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불과 단 한 시간동안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변화라는 것이 그 범위와 깊이와 방법에 있어서 거의 무한대적인 것이어서 세상의 모든 일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놀라운 인식의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매우 특이한 이 소설은,
  인간의 사고를 소재로 하는 '심리소설'의 '생각의 흐름'과 같은 방법으로 진행되는데, 그 안에 정확하고도 일관된 서사적 틀을 유지하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습니다.

  또 한가지,
  이 소설은 두께가 비교적 얇은 편이고 본문은 페이지의 3분의 2 정도밖에 차지않고 나머지 부분은 각주가 대신하고 있는 특이한 구조인데,
  이 각주라는 것이 또 하나의 사유의 세계이어서 어떤 경우에는 자잘한 글씨가 4페이지를 넘어가는 각주가 있을 정도입니다.
  이 소설이 이런 형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소설 자체가 일종의 후일담 형식이어서 자신이 어느 날 했던 생각을 정리하여서 회고하며 기록하는 형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본문은 그날 한 시간 동안의 이야기이고,
  각주는 부분부분 보충해야할 이야기들이어서 소설과는 또다른 재미를 부여해주고 있습니다.
  마치 각주의 바다를 헤메고 다니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하여튼, 그러한 이유로 생각을 따라가면서 왔다 갔다 읽어야 하기 때문에 진도는 매우 더딘 편입니다.
  하지만 정말 기발하고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사실 저는 띄엄띄엄 읽어서 앞부분을 몇 차례 다시 읽는 수고를 거쳐야 했는데요.
  평상시에 읽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이고,
  쉬지 않고 쭉 읽을 수 있도록 여유가 있을 때나, 휴가 철에 딱 어울리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머리아픈 내용도 아니고 가볍게 읽을 수 있으니까 아마 그때가 딱일 겁니다.

  갑자기, 휴가를 생각하니,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남태평양의 어느 해변가에서 파라솔 밑에 벗고 누워서 야자수 열매로 만든 음료와 함께, 이 책을 들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는데요..
  사실 휴가만 있어도 좋겠습니다.

  여태까지의 일반적 소설에 흥미를 잃으신분들이나,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
  생각하기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입사를 하면 첫 주에 내 이름을 박은 명함 천 장이 인쇄된다. 단지 그러는 것이 관습이라는 이유로. 영업이나 채용 업무를 주로 하는 사원이 아니고서는, 아마 회사에 다니는 내내 명함을 30장 이상 뿌리기도 힘들 거다. 첫해에는 거의 친척들에게 나눠준다. 그후 나눠줄 일이 있다 해도, 대부분의 경우 명함을 줌으로써 관계는 더욱 서먹해질 것이다. 명함의 기능은 사실 한 가지다. 처음부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회사 입장에서 신뢰를 보여주려는 것. 입사하고 처음 석 달 정도는 자신이 쓸모없이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33)


33) 회사를 그만둘 때 책상을 치우면서 가장 망설여지는 일 중의 하나는, 아직도 새것 냄새가 나는 958장의 명함을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다. 관처럼 생긴 검은 케이스에 옆으로 누운 명함들. 내버릴 수는 없다. 명함과 명패, 그리고 급료명세서 몇부야말로 내가 한때 매일 이 건물에 나타났으며 이곳에서 정신을 완전히 빼앗긴 복잡한 문제들과 씨름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한때 나를 지배했고 며칠 밤을 야근하고 잠꼬때까지 하게 만들었던 문제들은 결국 공허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p.141)


  이런 식입니다. 어때요? 읽어보고 싶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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