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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겉표지



* 동물원에 가기
* 알랭 드 보통, 정영목 역, 이레

  강남 교보타워에 차를 대놓고 친구와의 약속을 기다리다가 바람을 맞고, 주차비도 할인 받고, 저녁 먹을 때 심심함을 달래고자 책을 구입하고자 했습니다.
  마땅히 읽을 만한 책이 없었죠.
  그때, 작가별로 모아놓은 코너에서 '알랭 드 보통'을 발견하고 두 권을 구입했죠. <동물원에 가기>,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언젠가는 구입할 책이었으니까, 이런 기회에 구입하게 된 것이 억울하진 않지만, 아마도 '알랭 드 보통'이 아니었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것 같은 책이 바로 <동물원에 가기> 입니다.
  이건 무슨 시집도 아니고, 굉장히 작은 판형에 겨우 140페이지의 분량, 거기에다가 매 페이지마다 3분의 1 정도는 여백이더군요.
  이리저리 떠들러 보면서 살까말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한 권 밖에 안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책이란 말이지?'

  왠지, 이번에 사두지 않으면 살 때 고생 좀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덜컥 구입을 했습니다. 물론, '알랭 드 보통'의 책이 그리 쉽게 절판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두요...

  여튼,
  책의 겉 모양새는 썩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역시나 '알랭 드 보통'이야 라고 느낄만 해서, 사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 했습니다.

  뒤에 나오는 역자의 말을 보니, 이 책은 좀 유명한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70명의 문인들을 선정,기념 출판을 한 책 중에 70번째로 출간된 책이라고 했습니다. 뭔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알랭 드 보통'이 그만큼 상징적인 인물임을 알려주고 있는데, 여튼 그러한 기념 출판물이기도하고, 간단한 에세이집이기도 해서,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라던가,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진 않지만, '알랭 드 보통'도 나름 편안하게 쓴 글들을 모은 듯 해서, 마치 '알랭 드 보통'과 마주앉아서 커피를 한 잔 놓고,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듣는 듯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랭 드 보통'의 글쓰기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더군요.

  처음에 실려 있는 '슬픔이 주는 기쁨''공항에 가기'는 말 그대로 평소 우리가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사물이나 감각들을 새롭게 바라봤을 때 그 일상적 사물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매우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이야기 해줍니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참으로 부러웠던 것은, 저또한 그렇고, 누구라도 느끼는,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스쳐가는 수많은 감상들 중 어느 한 가지를 끄집어내어서 이토록 정확하게 표현해내는 '알랭 드 보통'의 능력입니다.
  아마도 공부를 많이 하고 부단히 연습을 해야 하는 거겠지요?

  암튼,
  그 다음에 나오는 '진정성'에서는 마치 이제까지의 그의 사색적 연애 소설들, <우리는 사랑일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말하는 것들> 의 원초적 형태의 단편소설을 보는 듯한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모를 글을 읽으면서 또 몇 번이나 무릎을 쳤는지 모릅니다. 

1.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자신 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 상대를 향한 강력한 욕망은 유혹에 필수적인 무관심에 방해가 된다. 또 상대에게 느끼는 매력은 나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함에 자기 자신을 견주어 보기 때문이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모조리 잃었다는 뜻이었다.
(p. 43)

  아.. 정말이지 '알랭 드 보통'은 천재입니다. ㅎㅎ

  그렇게 '동물원에 가기''일과 행복', '독신남' 등의 이야기들을 쭉 읽어가면서, 그게 진짜 '알랭 드 보통'의 모습이건, 아니면 꾸며낸 이야기건 간에, 남들에게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 혹은 자신이 느끼는 바를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남들에게 나를 이해시키는 노력도 덜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아주 하찮은 것으로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뭐 사랑이라는 말이 좀 그렇다면, 기질에 따라서는 반한 상태, 병, 착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른 사람을 항하여 뜨겁게 고조된 그런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차가 뉴캐슬을 지날 무렵 나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 여자들은 홀로 있는 남자들의 절망에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미래의 충성과 이타심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로맨스라는 면에서는 잘나가는 유형의 남자들을 의심할 만한 이유도 되겠다. 그런 남자들은 넘치는 매력 때문에 내가 겪었던 이런 희비극적 과정을 알지 못한다. 말 한마디 붙여볼 기회도 주지 않고, 사과 주스 팩과 내 머릿속의 결혼 계획만 뒤에 남겨놓은 채 다음 역에서 내려버린 여자 때문에 며칠씩 마음 아파하는 그 과정을.
(p. 98~100)

  굉장히 짧은 분량의 책이라서요.
  돈을 주고 사기에는 좀 아까운 생각이 없진 않지만,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과감하게 구입하셔도 그다지 돈이 아깝지는 않을 것 같구요.
  사실 서점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서 읽어도 대충 한 두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으니까, 그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로써, '알랭 드 보통'의 책은 <행복의 건축>, <불안> 두 권만 구입하면 되는 것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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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동물원에 가기

    Tracked from 미도리의 온라인 브랜딩 2009/03/19 19:37  delete

    ㄴ 지난 주에 우리 가족은 동물원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과천 서울 대공원을 향했는데 올림픽대로에 줄지어 선 차량 행렬에 깜짝 놀라 일산 주주 동물원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주주는 체험형 동물원을 표방하는 곳으로 직접 동물들에게 먹이도 줄수 있고 만져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코끼리나 기린 같이 덩치가 큰 동물은 없지만 마침 중국 기예단이 원숭이와 사자와 함께 공연을 하고 있어 코앞에서 사자도 볼 수 있었고, 오랑우탄, 파충류, 나귀, 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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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도리 2009/03/19 19:3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속았다싶긴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