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다음(www.daum.net)

<자유로운 세계> 포스터



When : 2008년 10월 5일 14시 00분
Where : 필름포럼(Film Forum)
(★★★★★)


  <빵과 장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유명한
  '켄로치' 감독의 신작 <자유로운 세계: It's a free world...>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보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상영관이 너무 적어서 영화를 보기 위해선 먼 서울 원정길을 해야했지요. 어쩔 수 없이 주말을 기다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상영을 하고 있는 영화관은 '필름포럼''상상마당 Cinema' 두 곳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트선재센터 아트홀' 에서도 상영을 하더군요.)

  어디로 보러 갈까 고민하다가, '필름포럼'이 자리를 옮긴 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터라 '필름포럼'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홈페이지에 가서 확인을 해봤지만 간단명료한 설명이었고, 연대 앞 어디쯤 이라는 것만 알고 출발했다가 이대후문 정류장에서 내려서 반대로 올라가며 찾은 탓에 땀이 범벅이 되어서야 겨우 시간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크래딧이 올라오는 동안 입을 가리고 나지막히 숨을 토해내면서 받은 감동은, 그런 어려움들을 모두 날려주었고, 한 편으로는 벅찬 감동을, 다른 한 편으로는 복잡해져버린 머릿속으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한동안 허둥댔던 것 같습니다.
(결국 다음 영화를 바로 앞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봤어야 함에도, 혼란해진 판단력 탓에 착각하여 종로3가 '중앙시네마'까지 가고 말았다는... 하루종일 헤매고 다녔습니다..ㅎㅎ)

  서두에 먼저 말씀을 드리자면,
  이 영화는 우리 모두가 보아야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취업을 앞두고 있는 20대와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갈 10대 후반들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다소 감상적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고, 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과장하여 말하는 듯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극적이야기들은 단순히 상황 설정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문제들이며 우리의 삶과 밀착해있는 문제들인 까닭에 영화를 보면서 제가 느꼈던 생각, 고민, 걱정들을 여러분들도 똑같이 느낄 것이라는 생각에 영화가 가지는 힘을 믿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스포일러가 담뿍, 담뿍 담겼습니다. 영화를 볼 예정인 분들은 다음 단락까지 넘어가주시길 당부드리니다.)


  영화는 영국의 한 직업소개소의 유능한 직원인 '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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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세계> 스틸컷

(Kierston Wareing)'
의 업무과정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엔지'가 하는 일은 영국에 들어와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다양한 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을 구두심사하고 그들의 능력 및 경력을 고려하여 일정한 직업을 알선해주는 역할입니다. 일을 시작한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나름 인정을 받고 있는 유능한 직원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녀를 모욕하는 상사에게 불손하게 대했단 이유만으로 그녀는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게 됩니다. 33살의 그녀에겐 사랑하는 '제이미'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남편과는 이혼한지 오래였고,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서 아들을 맡아주고 있었죠.
  그녀는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같이 동거하는 친구 '로즈(Juliet Ellis)'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더이상 명령받는 일은 하지 않을거야. 그들이 나의 명령을 듣도록 할거야.'
  그렇게 노동자였던 '엔지'는 대학을 졸업했으면서도 전화상담원을 하면서 박봉에 시달리고 있던 '로즈'를 꼬득여 '엔지와 로즈의 직업소개소'라는 회사를 차리고 스스로 '자본가'의 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당연히 많은 큰 회사들 속에서 발로 뛰고, 잠도 못자면서 일할 수밖에 없었지만 좀체로 '직업소개소'는 자리를 잡지 못하였고, 아들 '제이미'마저 학교에서 사고를 치면서 생활은 힘들어져만 갑니다. 이제 곧 중학교에 입학하게 될 '제이미'를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 안정된 수입원을 얻고 '제이미'와 함께 살아야만 하는 '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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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세계> 스틸컷

지'는 우연히 한 폭력집단의 직업소개소에서 비자가 없는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적으로 소개하였다가 받은 처벌이 '경고장'에 그치게 되었음을 알게되고는 옆에서 말리는 동업자 '로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 큰 수익이 생길 수 있는 '불법 이주노동자' 알선사업에 점점 빠져들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주노동자들을 소개했던 한 건설회사가 사기를 당하면서 노동자들에게 급여를 줄 수 없게 되자 '엔지'는 큰 위협에 시달리게 되는데...



  꽤나 자세한 줄거리였습니다마는, 저 이야기가 전부가 아닙니다.
  '켄로치'감독은 하루가 다르게 모두가 불행해지는 사회로 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날카로운 메스를 대어 도려내듯 아픈 곳을 건드리는데요.

  우선 '엔지'는 작년부터 우리의 입에 그렇게나 오르고 내렸던, <88만원 세대>의 한 구성원입니다. 물론 영국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적절한 비유일 순 없겠습니다마는, 영화의 상황을 우리 나라의 상황으로 옮겨온다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순수하게 열심히 일했고, 일한만큼 보상을 받길 원했고, 단란한 가정을 소망했던 '엔지'의 모습을 아무도 뭐라 할 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힘을 가진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고, 이제는 그 '힘을 가진자'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합니다. 그런 엔지의 주변에는 그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업자이자 친구인 '로즈', 그리고 '엔지'의 아버지.
'로즈'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기본 윤리라는 관점에서 친구를 걱정하고,
'아버지'시대를 앞서살았던 선험자로서 딸의 모습을 걱정하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오로지 '돈'을 벌어야만 자신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엔지'는 점점 자신만을 알아가는 사람으로 변해가는데요. 그런 '엔지'의 변화는 꼭 인물의 성격이 변해서라기 보다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현실의 상황이 그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였다고 보는 편이 옳을 듯 합니다.

  그즈음
  '아버지'와 '엔지'가 나누는 대화에서 저는 우리의 불안한 미래를 엿본듯 하여서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항변하는 딸에게 아버지가 말합니다.
  '그럼 너하고 제이미만 잘 살면 된다는 이야기냐?'
  '아버지, 세상에는 수십억의 사람들이 있어요. 나하나 그렇게 산다고 해서 세상에 영향을 주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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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렇게 말하는 '엔지'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 '엔지'를 그렇게 만든 건 부모님들의 탓, 아니 부모세대의 탓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인류가 가졌던 최고의 풍요를 누려온 사람들이었고, 그 때는 근면성실만 하다면 그에 따른 댓가가 주어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온갖 풍요를 누린 탓으로 '엔지'세대에게는 줄어든 일자리, 심화된 경쟁이 남겨져 '근면성실'함만으로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말들은 사치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켄로치'는 이런 혼란스럽고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은유와 상징을 사용하길 거부합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밑바닥으로 파헤치고 들어가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뒤에 적당한 위치에 배열함으로써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영화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은 내모습이거나, 내 주변 친구의 모습이거나,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거나, 가까이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참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대로 등장합니다.
  그 속에서 처음에는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자' 였던 인물들이, 자본을 얻기 위해 다른 이들을 '착취하는 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악순환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꽤나 아픕니다만, 외면할 수 없는 이 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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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충격적이었던 엔딩까지를 보고 난 뒤에는,
  '어떡하나, 큰일이네' 라는 생각으로 한참을 멍했고,
  크래딧이 끝나갈 즈음에는
  '켄로치'감독의 냉정함, 현대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연출력에
  '이래서 켄로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서,
  제가 다소 감상적인 관람평을 썼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한 마디로 감상평을 적자면, 정확한 비유가 될 순 없겠습니다만,
  '신자유주의' 혹은 '자유시장경제'를 비판한 경제학 서적을 기초로 각색된 영화 한편을 보았다는 느낌 입니다.
  아! 그렇다고 따분하거나 지루할 거라고 지레 짐작하진 마세요. 영화 자체는 스토리 전개도 빠르고 매우 긴장감있게 진행되어서 지루하다고 느낄 틈이 없었습니다.

  부디
  영화의 힘을 믿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여 확대개봉, 장기상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합니다.

  제겐 이 영화가 올해의 최고의 영화임이 거의 확실합니다.


@ 필름포럼-상영일정&찾아가는 길

@ 상상마당-상영일정&찾아가시는 길

@ 아트선재선터 아트홀-상영일정&찾아가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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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르페 디엠 2008/10/06 16:5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참..............................!
    글 잘 쓰시네요
    이렇게 맛깔스럽게 글을 쓰시니 여길 안들어올 재간이 없죠!
    신은 왜 저한텐 글에 대한 열정만 주시고 재능은 주지 않으신걸까요?
    나의 전생은 살리에리였을까요..ㅋㅋ
    제 예상으로 여기 블로그 올해 가기전에 파워블로그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블로그 인기의 첫째도 글솜씨 둘째도 글솜씨 셋째는 그외 다른 부분^^
    그나저나 그 위치 찾기가 악명높다는 필름포름에 다녀오셨군요
    여기 다녀온 사람들은 다들 한마디씩 하더라구요..동생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던데요
    이영화 신문에서 리뷰보고 보고싶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안나고...
    상영이나 오래하기를 바래봅니다~

    • 차이와결여 2008/10/06 19:25  address  modify / delete

      아니 이 무슨... 과찬의 말씀이세요..너무 부끄러워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


      이런 칭찬은 초등학교 교내 글짓기대회 이후 한번도 글짓기상을 받아보지 못한 저에겐 최고의 찬사를 주신겁니다.

      잊지못할거에요. '카르페 디엠'님. ^^

      저는 다분히 현실적이고 소망이 적은 남자라, 천재적이기보다는 인간적이었던 '살리에르'에 연민이 가요. 얼마 전 강좌에서 '살리에르'에 대해 굉장히 좋게 말씀하셨던 황동규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암튼,
      정말 '필름포럼'찾느라 고생했어요. 물론 반대편으로 올라가 버린 제 잘못이긴 하지만요.
      나중에 귀뜸주세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그리고 칭찬 너무 감사드려요. 훗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