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진



  오래간만에 학교를 등교했습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방학을 마치고 돌아온 것 마냥 들떠있고, 적응안되고, 여튼 정신 없는 어수선한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올해, 특히 2학기 때에는 저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숨가쁘게 달려왔었던 것 같았어요. 9일간의 연휴를 보내고 돌아오니 물론 간만에 일찍 일어나서 피곤한 기색은 있었지만 얼굴에 모두들 생기가 돌더라구요. 분명히 휴식이 필요했던 시기이긴 했나봅니다. 저도 오늘 수업을 하는데, 어디선가 의욕이 샘 솟았는지 평소와 달리 말도 덜 더듬고, 침착하니 한 가지라도 더 알려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부디 이러한 자세가 오래가야 할텐데 말이죠...

  오늘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서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걸까?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혼자 밥을 먹었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정상적(?)이었다면 내 앞에 앉아 있었어야할 누군가들이 쭉- 스쳐지나가더군요.
  그러면서, 만약 지금 그 누군가들을 만나고 있었다면 달랐을까 하는 생각들이 또 나더군요.
  몇 년 전까지는 쭉- 누군가를 만나왔었거든요. 거의 쉬는 틈이 없었답니다.
  한 사람과 헤어지고 난 다음에는 최소한 1년은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혼자 생각하고는 했었는데, 언제나 지킬 수 없었습니다. 금방 누군가가 좋아지기도 했고, 누군가가 좋다고 하기도 했어요. 그런 일이 생기면, 딴에는 열심히 제 마음 속을 들여다 봤죠. 내가 지금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것인가. 이 사람이랑 잘 안되었으니 저 사람에게 위안 받으려고 하는 것인가. 지난 날의 잘못들을 충분히 반성하고 달라졌는가....
  그 땐, 나름 자신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의 누군가를 훨씬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다시 시작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결과는 모두 내 곁에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 하나 더군요.

  아마 그 시절에는 제가 '원하는 대로 믿고 싶었던 마음'을 전과 달라진 모습이라고 착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그럴 수는 없는 것일텐데도 말이죠.  때로는 헤어질 때, 차마 못할 말도 들어봤고, 차마 못할 소리를 하기도 했었는데, 그런 것들이 조금씩 쌓여서 내 속에 앙금으로 남아 있었을텐데 말이죠.
 
  문제는 그거였던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가진 성향일지도 모르지요. '원하는 대로 믿고 싶은 것',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어제 월정사에 갔을 때, 이런 저런 풍경들에 카메라를 대고 셔텨를 누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내가 느끼는 것만큼 사진에 담아지지가 않을까..'

  그러다가 문득 또 깨달았죠.
  사진이라는 것은, 입체도 아니고, 소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니까 오감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건데 제가 좋다고 느끼는 풍경들은 소리도 담고 있고, 향기도, 바람도, 그 모든 것들을 담고 있는 풍경을 그 안에서 느끼고 있는 제가 오로지 한 순간의 빛 조절만으로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요....
  그래놓고는 나는 모든 것을 느끼고 있는데, 왜 사진에는 담기지가 않는지, 왜 내 감동의 깊이까지 표현되지 않는 건지, 당신은 왜 느끼질 못하는 건지 한탄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나에게 솔직해지는 거였습니다.
  나에게 솔직해져서, 나의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나의 존재를 깨닫고, 그리고 그 능력에 맞도록 떳떳해지는 것..
  그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었어요. 100장을 찍어 한 두 장을 건지는 요행을 바라면 안되는 것이었어요. 기술적인 부분이야 나아질 수 있겠지만, 한계는 명확한 것이겠지요..  만날 구도만 탓하고 있던 제가 좀 안타까웠습니다.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히 저에겐 저에게 짜여진 사랑의 모습이 있었고, 그 부분을 맞추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그와 나의 속 깊은 모습보다는 주위에 보여지는 모습에 더 신경썼었습니다. 내가 좋으면 그도 좋은 줄 알았어요. 다른 부분들에는 신경쓰지 않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한 번도 제대로 그 마음을 알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겠지요..그 정도는 아니었겠지요..

  여튼,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어요...

  실은,
  이번 학기에 논문을 못쓰게 되었어요.
  게을렀던 제가 논문 제출 절차를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았거든요.
  제출기한이 10월 7일까지였습니다.
  그동안 준비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부족한 제 능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시한입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방학 동안 게을러서 아무 것도 보고 알려 하지 않았던 제 잘못이 제일 큰 것 입니다. 그건 분명한 거죠..
 
  어쩌면, 저는 말했던 것과는 달리 공부를 하는 척하는 제 모습을 보고 싶은 거였는지 모르겠어요.
  이미, 새로운 지식을 쌓아보겠다는 다짐과는 한참이나 멀어져버렸고, 어느덧 학점을 채우기 위해 수업을 선택하고, 과제를 제출하고 있는 제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후회가 많이 됩니다.

  좌절하고 있을 수 만은 없는 것이겠죠.
  한 번 제대로 망쳤으니, 이제 주의하고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일정도 꼼꼼히 체크하고, 미리 준비도 하고...
  기왕 이렇게 된거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입니다.
 
  저라는 인간은 간사해서 왠만한 댓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열심히 하지 않는 못된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분발해서,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리고 자꾸만 내 안을 들여다 보게 되네요...

  이미 아침 저녁으론 선선해졌어요.
  가을입니다.

 

Trackback Address >> http://cha2.co.kr/trackback/337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clovis 2010/09/30 09:3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느 사람이, 자기 주관을 넣지않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믿을까요...?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고 말씀드리는 거지만
    '차이와 결여'님은 정말 멋진 분이신 것 같아요. 그래도 자기를 이렇게 최대한 객관화 시켜서
    바라보고 계시잖아요? 저도 '차이와 결여'님의 블로그에 들어오면서 자기 객관화 해보기 시작했답니다.. ^^

    저는 그래서 사진을 잘 안찍어요..
    그 '느낌'이 안오거든요.. 그렇게 못찍으니까 아예 안찍고 눈에 담아두려고 노력하는거죠...

    • 차이와결여 2010/09/30 09:48  address  modify / delete

      '하루키'의 말을 인용하자면,
      저라는 사람도 글로 써서 정리하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글로 써보면서 제가 해야할 것들, 알아야 할 것들을 확인하는 거죠.
      그 확인이 인식 자체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여튼, 저는 미련이 많아서, 내 것을 쉽게 포기하고 버리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사라져가는 순간의 느낌들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찍고 남기려고 하는 거에요..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