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편지

힌세네가 보내준 편지



  16일 그토록 기다리던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7년 간의 교직생활 중 이토록 방학을 기다렸던 적이 없었던 것은 같은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생활을 하면 할 수록 점점더 방학을 기다리는 것은 같긴 하네요.)

  본래, 방학이라는 것은 학생에게는 휴식의 시간을 교사에게는 재충전과 교재연구를 위한 시간을 위해 존재함임이 분명하지만, 일반계 고등학교에 속한 교사와 학생들에게는 무의미한 말이긴 하죠... 우리 아이들도 15일 간은 보충수업을 나와야 하고, 또 희망하는 아이들은 학교에 남아서 자율학습을 해야하고 합니다. 의도와 목적은 물론 좋은 취지에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우리 모두 잘 알잖아요. 그 나이에 얼마나 뛰어놀고, 쉬고 싶겠습니까.. 과연 얼마나 효율적인가 하는 물음에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보충수업을 신청하라고, 자율학습을 신청하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저는 면피랍시고, 그냥 말없이 신청 용지를 돌리는 것만으로 애써 죄책감을 외면하고는 있는데요.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최대한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겠다는 다짐들은 담임이 되는 그 순간 한낱 구겨버린 종이만도 못한 것이 되고 마는 현실이 안타깝고, 또 그런 현실에 묵묵히 따라야하는 제 모습이 한심스럽기도 합니다.
  저 또한 학교를 다닐 때에 분명히 그런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은 '마지못해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면서도 진정한 "자율""보충"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제가 참....
 
  여튼, 교사에게도 방학은 정말 중요한 시간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러모로 지친 몸과 마음도 달래야 하고, 그간 쌓인 피로도 풀어야하고, 또 새로운 교수-학습 방법을 연구하여서 새학기부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준비를 하는 시간이겠지요. 그래서 방학 동안 이러저러한 연수들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교재연구도 해야하는 시간인데, 일단 저는 이번 방학은 최대한 편안하게 지내보고자 합니다.

  애써 핑계를 찾자면, 지난 학기가 너무 바빴고, 힘들었고, 작년부터 이래저래 쌓여온 일들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뒤죽박죽이 되어버렸고, 대학원 졸업을 위한 논문 초고도 작성을 해야하기 때문이지요.  학기 내내 꾸역꾸역 사모은 많은 책들도 쌓여있고, 보지못한 영화들도 많네요...
  그 모든 것을 다 해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선 순위를 가려서 하나 씩 해결해 갈 생각입니다.
  학기 중에는 야자와 대학원 수업으로 누구를 만날 시간도 없어서, 모든 것을 방학 때로 미루다 보니, 꼭 만나야할 사람들도 많습니다. 주말은 그 사람들을 만나면서 보내도 다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해봐야죠.

  아.. 그러고보니, 오랫동안 미루어왔던 자동차도 수리를 위해 정비소에 입고를 시켜야할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잔고장들이 있었는데, 타고다니는데 지장이 없다보니까 이 역시 방학 때로 미루어놓았었거든요.
  그래도 방학인데 여행도 가야겠죠...

  이런 무슨 방학이 6달이 되어도 모자랄 만큼 많은 일들이 쌓여 있다보니, 마음이 조급해지고 말았습니다. 무엇부터 시작을 해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최대한 편안하게 하지만 계획적으로 보내야겠다고 맘 먹었습니다.
  일들을 정리해서 우선순위를 매겨봐야겠네요.
  제가 원래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천하는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쩔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방학이란 것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꼭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위의 편지는 제가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하고 있는 '힌세네'라는 소녀가 보내 준 편지입니다. '에티오피아'에 사는 '힌세네'는 우리나이로 9살이 된 소녀인데, 대필로 저에게 편지를 보내주었네요.
  처음 후원을 시작했을 땐, '볼리비아'에 사는 '미구엘'이라는 6살 난 소년이었습니다. 똘망똘망하고 귀엽게 보이는 그 '미구엘'이 축구를 좋아한다길래 축구공이라도 하나 보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만 까먹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후원금이 보내질 때마다 무언가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미구엘'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더이상 후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힌세네'로 바뀌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저는 '미구엘'이 정말 이사를 가게 된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으니, 그 말을 곧이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디에 알아볼 수도 없었지요. 물론, '미구엘'이 예쁘게 잘 성장해주기를 바라지만, 무언가 안좋은 생각과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힌세네'로 바뀌게 되었고, 이번엔 정말 무성의하게 후원금만 입금하는 것이 아니라 편지라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또 미루고 미루다가 이렇게 먼저 편지를 받게 되었네요...
 
  후원금 몇 만원 넣는 일 정도야 진짜 사소한 몇 번의 클릭만으로 가능 한 일 아니겠습니까..
  한 번만 해놓으면 매달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돈 정도야 무슨 후원이겠습니까. 그건 가진자가 못 가진자에게 베푸는 호의 정도가 아닐까요..
  제가 너무 과격하게 생각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저는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아이를 찾아가 손이라도 붙잡고 어깨라도 두드려주면서 따스한 말 한마디는 못하더라도 멀리에서나마 '너'라는 존재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힘을 주어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또 머뭇거렸네요..
  이렇게 이런 사소하고도 개인적인 일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서 정말 편지를 쓰고자 하는 제 마음 때문입니다.
  더이상 바쁘다는 핑계로, 깜빡했다는 핑계로 미루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한 제 마음 때문입니다.

  꼭 써야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모르는 바쁘고 정신없는 삶이 지나가더라도, 한 삶이 또다른 한 삶의 손을 잡아주는 것과 같은 그런 일들을 그냥 넘겨서는 더이상 저의 삶도 무의미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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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lovis 2010/07/19 23:3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는 그 돈을 꼬박꼬박 보내고 또 챙겨줄 자신이 없어서 후원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ㅎ
    또 하다가 그만두면, 그 아이는 후원순위가 맨 마지막으로 밀린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친구들과 하려다가, 그만두었답니다.... ;;;
    꼭 편지를 보내세요!

    • 차이와결여 2010/07/20 08:07  address  modify / delete

      아.. 그런 것도 있군요.. 설마 그럴까 싶긴하지만, 그래도 왠지 믿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ㅠ
      좀더 열심히 응원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