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주의보

<대설주의보> 책표지

 

* 대설주의보

* 윤대녕, 문학동네

 

  '윤대녕'의 신작 소설집 <대설주의보>를 아껴가며 읽었습니다.

 

  사실,

  첫 번째 이야기를 읽고 났더니,

  쉽게 술술 읽히는게,

  가슴 한 켠에 아련함을 남기는 게,

  그 옛날 어떤 때로 나를 옮겨놓고야만 마는 게

  참 좋은 이야기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원하는 대로 읽다가 보면 너무 빨리 읽어버릴 것 같아서,

  아껴가면서 보았답니다.

 

  내가 처음 '윤대녕'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21살 때 였나 봅니다.

  정확히는 20살인지, 21살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한창 푸르르던 그 때,

  푸르름이 넘쳐 가슴 한 켠에 이유모를 '상실감'을 자라게하고,

  괜히 그런 덧없는 감상에 빠져서

  약간은 냉소적으로

  또 약간은 불안스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그 즈음이었습니다.

 

  젊다는 건 그런 건가 봅니다.

  그 땐, 마치 스펀지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요.

  하나에 빠지면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말아서,

  즐거움의 크기도, 우울함의 크기도 지금 내가 느끼는 것들 보다 몇 배는 컸었습니다.

  여튼,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고자 들른 터미널에서 우연히 집어 든 신문에 난 광고에는 <은어낚시 통신>이라는 '윤대녕'의 책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빠져있기도 했기 때문의 그의 에세이 <캥거루 통신>을 당연히 기억하게 되었고, '이건 또 무슨 어줍잖은 패러디냐' 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남아 돌던 나는 결국 <은어 낚시 통신>을 사게 되었고, 그 때부터 '윤대녕'의 이야기들에 담겨져있는 '상실감', '상처' 그리고 '끝없는 만남과 인연' 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예,

  그의 소설에는 항상 어딘가 결핍, 결락되어있는 인물들이 나오고, 그들은 항상 타인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운명'이라기엔 좀 작고, '만남'이라기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인연'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런 관계가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어딘가 삐뚤어져보이고,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인물들의 모습이 좋아보였고 나중에는 '인연'이라는 이야기 자체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해피엔딩이라고 보기 어려운 그의 소설들은 당시 세상을 냉소하던 내생각과 어울려 매우 매력적인 이야기들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추억의 아주 먼 곳>,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남쪽 계단을 보라> 등을 읽다가 어느 순간 더이상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습니다.

 

  내 기억으론 그 때가 군대에서 제대한 때 즈음 일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더이상 세상을 냉소 할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전까지 세상은 '냉소'의 대상이었지만,

  그 때부터의 세상은 '두려움' 혹은 '치열함'으로 상징되는 '괴물'이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이미 주변부를 돌아보기에 바쁜 나는 그이의 이야기들이 현실이 아닌 판타지로 생각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뜬구름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과 같은 허망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오늘

  식상해 보이던 그의 이야기가

  갑자기 다가왔습니다.

 

  시간은 흘렀습니다.

  흐른 시간 동안 나는 변했습니다.

  내가 변한 동안 '윤대녕'도 달라졌습니다.

 

  마치 한 편의 이야기와 같은 몇 편의 소설들 속에는 이제 작은 희망을 발견할 정도의 결말도 등장합니다.

  해피엔딩이라고 규정하기엔 뭣하지만, 희망의 작은 싹을 보여주면서 독자 스스로의 결말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의 그러한 소설에는 바늘 끝으로 가슴 한 가운데를 콕콕 찌르는 듯한 짜릿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대개의 주인공들이 점점 나와 나이대가 비슷해져가기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판타지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이제는 그런 '윤대녕'의 이야기가 다시 읽고싶어졌습니다.

 

  어서, 빨리,

  가로수의 꽃잎 들이 채 떨어지기 전에,

  그의 소설 한 권을 더 사서 읽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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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lovis 2010/05/04 17:1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 글을 읽고, 정말 오랫만에, 읽고싶은 책이 생겼는데...
    큰 마음 먹고 나간 도서관에는 이 책이 없더군요.

    저는 한번 책을 읽어보고 사는 스타일이라서,
    덜컥 구매는 못하겠고... 얼른 읽어보고싶고...
    고민입니다.. ㅜㅠ

  2. herenow 2010/05/06 12:0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윤대녕, 수색 그 물빛 무늬.
    저는 그 제목이 제일 생각나요. 윤대녕 소설들을 읽긴 했지만 크게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기억나는 구절이나 장면이 없는 걸 보면 말이에요.

    그래도 차이와결여님 글을 읽고 나니 그의 소설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책을 아껴 읽게 되는 심정, 저도 잘 알지요.
    저도 아껴가며 그의 책을 읽고 싶네요. ^^

    • 차이와결여 2010/05/07 00:06  address  modify / delete

      아.. 그렇네요..
      참,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이었어요. ^^
      저는 그 소설을 읽어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저도 나중엔 처음 만큼 많이 좋진 않았어요.. 한동안 멀리 했었죠..

      그런데, 요번 것은 괜찮더라구요..
      아마.. 제가 나이를 먹었나 봅니다..ㅎ

    • 차이와결여 2010/06/29 21:48  address  modify / delete

      뒤늦게 답글이라 민망하지만,...

      우연히 알게되었어요..

      '수색, 그 물빛 무늬'는 '이순원'의 작품인 것을요..^^;;

      'herenow'님도, '저도' 바보~ ㅎ

    • herenow 2010/06/30 01:50  address  modify / delete

      그러게요. 바보네요, 저. ^^ 히히.
      왜인지 모르지만 항상 윤대녕하면 '수색'이 떠올랐어요. 왜일까...

  3. clovis 2010/05/17 14:5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대설주의보 책 사서 오늘 다 읽었습니다!!ㅎㅎㅎㅎ
    오랫만에 읽은 '계속 읽고 싶은 책' 이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ㅎㅎ

    • 차이와결여 2010/05/18 01:11  address  modify / delete

      거봐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라고 했잖아요. ^^

      재밌게 읽으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원래 책은 추천하기가 정말 힘든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