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멈추는 날> 공식 포스터
* 2008년 12월 23일 18시 20분
* CGV(오리)
* 위드블로그 리뷰 캠페인 당첨 관람
(★★☆)
'키아누 리브스', '제니퍼 코넬리' 주연의 환경, 재앙, 묵시록, SF, 블록버스터 <지구가 멈추는 날>을 보고 왔습니다.
서두부터 이렇게 어이없게 시작하는 경우는 참 드물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일단, <지구가 멈추는 날>은 동명 제목의 1951년 영화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을 원작으로 하는 리메이크 영화 입니다. SF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봤을 것 같은 외눈박이 로보트가 광선을 작렬하고 있는 바로 그 영화 이지요.
원작이 발표 되었을 당시에는 세계 2차 대전이 원자 폭탄의 투하로 인하여 종료되고 사람들은 인간이 본질이 과연 '선'인지 '악'인지 혼란스러워 하면서,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 내부에서 발현되는 실존적 인식과 그 의미를 탐구하는 '실존주의'와 같은 철학이 유행하던 때였습니다.
이미 인간 존재 자체가 위기의 끝에 내몰려본 경험을 해본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외계 존재의 출현이 또다른 절망적 상황의 상징으로 나름 의미가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원작의 내용과 설정을 되살려 현대적 의미에서의 위기 상황인 '환경 문제', 혹은 '참된 생산성'은 결여 된채, 오직 '소비'와 '소멸' 만을 일삼은 현존 인류에 대한 경고적 메시지로 이 영화를 리메이크 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그런 컨셉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 잘 다듬어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두 배우가 출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박한 평점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아쉬움이 많은 영화입니다.
(이 포스트에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었을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줄거리까지만 읽어주세요.)
마치 또다른 지구와 같은 외계에서 온 '방주' <지구가 멈추는 날> 스틸 컷
다른 박사들과 함께 센트럴 파크에 내려 앉은 그 물체에 다가간 그녀는 외계에서 온 것과 같은 생물체를 만나게 됩니다. 의사들에 휩싸여 안으로 옮겨진 그 생명체의 이름은 '클라투(키아누 리브스)' 지구를 구하기 위해 다른 문명을 대표해서 지구에 내려오게 된 것이라고 말하죠.
이와 같은 시작인데요. 역시 헐리우드 영화 답게 일단 위기 상황을 모두 설정해놓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제는 '주인공들이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위기에 빠진 지구와 인류를 구하는가' 하는 것만 남은 것이 되겠죠.
그리고 이미 결말이 뻔히 보이는 이러한 영화를 우리는 주인공들이 위기상황을 헤쳐나갈 때, 느끼게 되는 대리만족을 얻기 위해서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 또한 명약관화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왠일인지 이 영화는 그런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 같습니다.
인류를 위험에 빠트리겠다고 찾아온 '클라투'가 몇 번이나 하는 대사는 바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왔다.' 라는 것인데요. 이것은 다른 말로 '인간이 지구를 죽이고 있다'라는 말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이 지구를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클라투'를 심문하려다 옷을 빼앗기는 아저씨, 혹시 <터미네이터> 오마쥬?? <지구가 멈추는 날> 스틸 컷
물론 인간이 지구에게 있어 악한 존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말하듯, 우리들은 그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이 잘못인 건지 좀더 명확하게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간에 나오는 중국인 할아버지가 하는 대사, '인간은 너무도 파괴적이야' 라는 것이 힌트가 될 수도 있겠는데, 바로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또다른 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을 사랑하게 됐어.' 라는 것은 너무 빠른 결말의 노출이 아닐까요...부정에 대한 부정, 결국은 아무런 설득력도 없어져버린 무의미한 대사, 의도야 어땠건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튼, 주제의식이야 그렇다고 치고, 캐릭터의 설정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선한 의지'를 대표하는 인물이 주인공인 '헬렌'이고 '헬렌'과 '제이콥'의 관계일 것입니다. 반면, 인간의 '악한 의지'를 대표하는 인물은 '케시 베이트'가 연기한 '국방장관'이 아닐까 싶은데요. 좀 너무하다 싶기도 하지만, '케시 베이츠'의 필모그래피에서 이 영화는 빼는 것이 좋을 정도로 그저그러한 연기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대본에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겠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힘으로 '클라투'를 제압하려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떼를 쓰는 아기와 같다고나 할까요. 나중에 조금 달라지는 것 같긴합니다만, 역시 설득력 있는 캐릭터라고 보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선'과 '악'의 대립 역시 한쪽으로 너무 많이 기울어 버린 탓에 영화에는 긴장감이 부족하게 되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화려한 비쥬얼 미식축구 경기장이 폐허가 되는 장면 <지구가 멈추는 날> 스틸 컷
'클라투'가 인류를 멸망시키기위하여 사전 작업으로 행하는 것이 바로 '방주'입니다. 어쩜 그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요. 오로지 지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만을 제거해야 하므로, 다른 생명체들은 보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 장면은 꼭 있어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저는 이 장면 때문에 또 조금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인류를 제외한 다른 생명체를 구원하고 인류의 문명을 없앤다. 그러면 이야기는 환경문제로 귀결되는 것이겠습니다. 우리에게 자원을 조금 덜 소모하고, 좀더 걸어다니고, 지구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 경각심을 을 일깨우는 영화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만 '방주'에다가 동식물들을 담을 뿐, 결국에 결론은 '인간의 선한면'입니다. 인간을 믿는다는 거지요. 참으로 대단한 긍정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그리고, '방주'라는 이름의 등장입니다. '방주'에 생명체를 다 싣고 나면 뭐가 오냐는 물음에 '국방장관'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대홍수'
네, 갑자기 성경을 끌고 들어오는 겁니다. 그러면, '클라투'는 재림예수가 되는 건지요. 아니면, 인류를 멸할 적그리스도가 되는 건지요. 그냥 서양인들의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기독교 신앙의 발현이라고 보아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결국 지구와 인류의 생존이 '클라투'의 손에 달려있다고 본다면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겠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시종일관 이도저도 아닙니다.
메시지를 전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화려한 볼재미를 주지도 않고,(50년대 영화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터라 거인 '클라투'의 액션(?) 장면은 로봇물의 그것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스토리가 화려하지도 않은,
우리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경고하지도 않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도 않고, 좀 덜 쓰고 살으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닌,
메시지로 본다면, 올초 개봉하였던 <지구>에 한참이나 못미치고,
비쥬얼로 본다면, <트랜스포머>와 비교도 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묵시록적인 의미로 본다면, <터미네이터>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정쩡한 컨셉의 영화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다만 안타까울 뿐입니다.
푸른 눈이 이뻐보이긴 처음, 코는 백만불짜리 코, <지구가 멈추는 날> 스틸 컷
'제니퍼 코넬리' 역시 그다지 돋보이지 않는 그만그만한 연기를 보여주었는데요. 다음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 라니, 그녀의 화려한 모습을 다시 한 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영화를 보면서도 느꼈던 것인데요. 그녀의 깊고 푸른 눈과 오똑한 콧날은 정말 백만불짜리 였습니다.
사람이 코만 보고도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쿨럭;;)
여담이지만, '클라투'라는 이름은 '키아누 리브스'의 극중 이름이기도 하고, 거대한 로봇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위기에 빠진 '키아누 리브스'를 구하기 위해 거대 로봇이 손을 뻗었을 때, '키아누 리브스'가 외칩니다.
"클라투, 바라다 닉토!"
그러자 딱 멈추죠. 저것은 원작에도 나오는 대사 입니다.
아주 오래된 캐나다 그룹 중에 바로 이 '클라투'의 이름을 따서 그룹명을 지었던 밴드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통해서 알게되었던 그룹인데요. 아트락이라고는 하는데, 저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고, 어린 시절 그들의 오묘한 노래를 들으면서 거대 로봇 'Klaatu'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라서, 잊었던 옛추억을 되살려 주었다는 면에서는 개인적 의의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2008.12.26 22:06 수정
몇 줄 위에서 말한 거대로봇의 이름이 '클라투'라고 한 것을 수정합니다.
다른 여러 블로그들을 참고하여 보니, 거대 로보트의 이름은 '고트'라고 하는 군요.
짧은 지식으로 혼란을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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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지구가 멈추는 날 _ 인간은 극한에 몰려야만 말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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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지구가 멈추는 날, 양분된 극단적인 반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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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보기에는 너무 허무하기만한 설정과 전개와 결말이었네요.
전 결말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전개 과정을 통해 전혀 설득시키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마치 원작을 그대로 옮겨와서 CG만을 입혀놓은 것과 같은 느낌으로 만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불가피하게 수정한 것도 있겠지만) CG의 힘을 너무 맹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에요. ^^
역시 혹평이로군요... 그래도 전 대체로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글 엮어놓겠씁니다.
네, ^^ 기대가 많았던 탓이었나 봅니다.
'초하'님께서는 괜찮게 보셨군요. 포스트에 가서 봐야겠습니다..
'트랙백'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