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턴 프라미스> 공식 포스터
* 2008년 12월 20일 16시 40분
* 씨네큐브 (광화문)
(★★★★★)
어쩌다 보니, 요새 계속해서 '씨네큐브'를 찾게 되는 '차이와 결여'입니다.
이번에 본 영화는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작품 <이스턴 프라미스> 입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는 아마도 <플라이>를 본 것이 전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 년 전 개봉했던, <크래쉬>는 어찌어찌 하다가 그냥 지나가 버렸고, 얼마 전에 개봉했던 <폭력의 역사> 또한 볼 기회만 잡다가 그냥 지나갔던 터라, 조금 궁색한 변명이 되어 버렸지만, 아마도 그런 점에서 좀더 순수하게 <이스턴 프라미스>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리뷰는 영화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하고는 상당히 먼 리뷰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내가 알고 있는 것들로 이 영화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질문을 던져봅니다만, 그래도 간략하게나마 몇 마디를 해야겠다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일단, <이스턴 프라미스>라는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검색을 해봤는데, 각종 매체에서 이 영화에 대한 극찬을 내놓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FILM2.0에서는 "장르의 철학자, 크로넨버그의 예수 탄생 스토리"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로 특집기사를 내었던데요. 여러 가지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조합하여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얼굴도 예쁘고, 연기도 잘하고, 작품 고르는 눈도 좋은 '나오미 왓츠' <이스턴 프라미스> 스틸 컷
여튼, 줄거리부터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런던의 후미진 어느 거리, '아짐'이라는 사람이 운영하고 있는 이발소에 손님이 이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 '아짐'의 조금 미숙아인 조카가 들어오고 '아짐'은 그에게 손님에게 면도를 해드릴 것을 주문하죠. 하지만, 그것은 손님의 목을 베어버리라는 신호였습니다. 그렇게 이발소에서 비참한 살인이 일어나고 있을 때, 근처 한 약국에는 행색이 초라한 한 젊은 여자가 산만큼 부푼 배를 안고 맨발로 걸어들어와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한 눈에 봐도 제정신이 아님을 알아챈 약사가 마약은 팔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하혈을 하고 그자리에서 쓰러져버리고 맙니다. 그런 그녀는 근처에 있는 조산원으로 긴급 이송되고 그곳에서 일하던 조산원 '안나(나오미 왓츠)'는 산모와 아기를 모두 살려보려고 애쓰지만, 결국 산모는 숨을 거두고 말게 됩니다.
아이를 유산했던 경험이 있었던 '안나'는 그 아이에게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친척을 찾아주고자 아이 엄마가 가지고 있던 가방을 뒤져서 일기장을 찾아내게 되지만 그 일기에는 러시아어가 쓰여 있었습니다. '안나'역시 러시아계 였지만, 러시아어를 읽을 수는 없어서 집으로 돌아와 '삼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안나'의 행동이 못마땅한 '삼촌'은 쉽게도와주지를 않습니다. 어쩔수없이 그녀의 일기장 갈피에서 찾아낸 음식점 명함을 보고 그곳을 찾아가는 '안나'.
음식점 문앞에서 부터 험상 궂은 '키릴(뱅상 카셀)'과 그의 운전수 '니콜라이(비고 모텐슨)'를 만나게 되는 '안나'는 무언가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음식점 주인 '세묜(아민 뮬러-스탈)'을 만나게 되는데...
'아이에게도 좋은 일일거야' 거래를 제안 하는 '세묜' <이스턴 프라미스> 스틸 컷
그 다음부터가 이야기의 진정한 시작입니다.
'안나'가 아이를 불행에서 구하기 위해 범죄의 폭력의 중심으로 한발 한발 다가 간다고 하면, 그녀가 덫에 걸리기를 기다리는 '보리 v 자콘' 파 보스 '세묜'의 느리지만 신중한 움직임이 시종일관 긴장감으로 흐르는 가운데,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키릴'의 광기 어린 모습과 가슴 속 깊이 욕망을 내재한 것과 같은 냉혈한의 모습으로 나오는 '니콜라이'의 이야기가 숨가쁘게 진행됩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듯 폭력에 대한 이야기 하나로만 이야기하기에는 좀더 다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 듯 합니다.
겉으로는 아이를 구하기 위한 휴머니즘을 깔고, 그 선한 의도를 해하려는 악의 무리로 범죄조직을 설정해놓은 것은 뭐 그리 낯설지않은 구도입니다만, 아이를 구하려는 '안나'의 선한 의지는 주변 상황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맹목적이고, 그런 아이를 위험에 빠트리는 범죄조직의 악행 역시 극단적입니다. 그 극단의 끝자락에 서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니콜라이'입니다.
완벽한 러시안 조폭 '니콜라이' <이스턴 프라미스> 스틸 컷
이런 두 극단의 감정이 서로 뒤엉키며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저는 단 한순간도 편하게 영화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의 이야기가 그러하듯 이 극단의 선과 악이 어디선가 접점을 이루게 되고 그 접점이 폭발하게 되는 순간이 어디가 될지 숨죽이면서 지켜보게 되었던 것이죠.
영화를 본 분들이면 누구나 명장면으로 이야기하는 '사우나 격투씬'이 주는 날 것의 처절함도 오히려 저에게는 그 폭발의 접점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여겨졌고, 그만큼 잔인한 사람이 과연 어떠한 결말로 인도될 것인가, 우리에게 내재된 악, 폭력의 끝은 어디 인지, 과연 아이는 구원을 받고, 선한 의지는 지켜질 수 있는 것인지가 더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니콜라이'의 진정한 정체가 밝혀지면서 다소 희미하게 마무리 되는데요.(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진정으로 이 영화에 감탄을 하게 된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감독이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처음 장면부터 지문을 없애기 위해서 손가락을 잘라낸다거나, 이를 뽑아버리는 잔인함, 그보다 더 처절하고 끔찍했던 '사우나 격투씬', 그 뒤에 숨겨진 '세묜'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 가에 대해 화면을 통해 충분히 봤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났을 때, 뭔가 미진한 감정이 일면서,
'이대로 끝내서는 안돼! 무언가 더 있어야 해!'
라고 생각하고 있는 저를 깨달았을 때 바로 이 영화의 위대함을 알게되었던 것입니다.
그건 바로 내 안에 있는 '폭력성'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너무 감상적이어서 그렇게 느꼈을 수는 있었겠습니다만, (아니면 근본적으로 악하던가요.)
영화를 보고서 한참 동안이나 멍하게 화면을 바라보던 주위의 여러 관객들을 바라보면서 그들도 뭔가를 느끼는 것처럼,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은 분명히 이 영화가 영화에서 보여준 것 그 이상으로 어떤 것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명장면 중 명장면 '사우나 격투씬' <이스턴 프라미스> 스틸 컷
아무튼,
주요 등장인물 네 명, '나오미 왓츠', '뱅상 카셀', '비고 모텐슨', '아민 뮬러-스탈'의 연기는 최고의 찬사를 받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캐릭터에 완벽하게 젖어들어서 '나오미 왓츠'가 아닌 '안나'로서의 연기를, '비고 모텐슨'이 아닌 '니콜라이'로서의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지만, 거기에 그들을 조련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연출력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금세기 최고의 걸작'이라는 카피에 충분하고도 남을 명작이 탄생했다는 것, 그리고 그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할 뿐입니다.
신경질적인 보스의 아들 '키릴', 오래간만에 보는 '뱅상 카셀'<이스턴 프라미스> 스틸 컷
질문 하나 :
'이스턴 프라미스'는 무슨 뜻일까요?
혹시 영화에서 '니콜라이'가 '안나'의 삼촌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나오던 '러시아의 생리' 라는 말이 아닐런지요...
아시는 분 가르쳐주세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본문에 쓰셨잖아요? 기독교적 세계관이라고...
동방박사의 약속 내지는 예언..뭐..이런게 아닐런지
니콜라이는 진정 업무의 연장으로 조직에 더 파고든건지
'폭력'의 맛을 잊지못해 남는건지..^^
나오미 왓츠 참 괜찮은 배우 같아요
분위기도 있고..저는 킹콩에서 오히려 이 배우의 묘한 매력에 끌리더라구요
저두 영화에서처럼 블랙패션으로 바이크 몰고싶어라~
전작 폭력의 역사 종로 어디 영화관에서 재상영 계획이 있던데요
아.. 그게 맞는 것이군요.
저 위에 FILM 2.0의 리뷰에 '동방박사의 예언'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렇담 역시 기독교적 세계관 없이는 영화를 제대로 관람할 수 없는 것이군요.
스포일러가 될까봐 저도 미처 이야기 하지 못했는데요. 마지막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좀 궁금합니다.
아.. 폭력의역사 '미로 스페이스'에서 하던 것 같던데, 시간이 안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