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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겉표지



* 바다의 기별  김훈 에세이
* 김훈, 생각의 나무
* 위드블로그 서평 캠페인 참여 도서


  전직 한국일보 기자 이자, <시사 저널> 편집장, 소설가, 자칭 자전거 레이서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김훈'의 신작 에세이집 <바다의 기별>입니다.

  저는 솔직히 그의 소설들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칼의 노래>를 그럭저럭 읽었고, <현의 노래>는 사놓기만 하고 말았으며, <남한산성>은 서점에서 잡았다 놓아다 하다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사태는 아무래도 제 독특한 특성을 반영한 상황일 것이 분명한데요, 처음 '김훈'이라는 이름을 접한 것은  에세이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에 관한 서평을 서점에서 접했던 것이었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있는 그의 모습에서 뭔가 진중한 느낌을 가졌엇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어렸었지요. 그 다음에 '김훈'의 이름을 다시 들었던 것은 <칼의 노래>에 대한 각종 매체의 극찬이었습니다. 당연히 귀가 얇은 저는 혹하는 마음을 가지고 <칼의 노래>를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서사는 지루했고, 장면은 스펙터클하지 못했으며, 대화는 대중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새로운 문체를 만들었다고 유려하고 장중한 문체라고 매체들은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한참이나 낭창하고 가벼운 일본소설들에 빠져있던 저는 그 마저도 고루하고 진부한 것으로 여기고 겨우겨우 다 읽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귀가 얇은 저는 그의 다음 작품 <현의 노래>를 사게 되었고, 그간의 선입견을 모두 없앤체 읽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여전히 서가에 꽂혀만 있는 상황입니다.

  대신, 그가 전에 섰던 <시사저널>의 편집자의 변은 좋아했습니다.
  어쩔수 없이 태생이 그러한지라, 기자로써의 명석하고 냉철한 시선과 문체는 주간지라는 성격에 제대로 들어맞았으며 시대의 핵심을 찌르는 그 무엇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정적인 글쓰기보다는 서사적인 글쓰기에 다소간의 비유와 해석적 시선이 곁들여진 문체가 아주 감칠맛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그런데도,
  그의 책이 나왔다고 하면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쩌면 애증의 결과일지 모릅니다.
  애써 외면하지 못하고,
  나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탄하는 '김훈'의 문장을 혹시 내가 스쳐지나가듯 읽은 것이 아닌가, 내가 놓친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바다의 기별>을 잡았습니다.

  책의 목차를 보니,
  몇 몇 편의 에세이들과 뒤에는 수상소감이, 혹은 책의 서문이...
  '이거 순 날림 아니야?'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물론 에세이, 수필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 자유로운 글쓰기들이 모두 포함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어느 정도의 달변과 달필의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아니면, 어느 정도의 분량을 채울 정도의 저작이 있지 않는 한, 한 작가의 서문이나 수상소감등을 모아서 책을 엮는 경우가 흔치 않기도 했고, 거기에다 그가 했던 '강연'의 원고까지 추려서 함께 묶여있으니, 그의 문체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탐색해보고자 했던 저에게는 일방적 배신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까지 다른 책들에서 받았던 느낌들과는 달리 그의 첫 마디 '바다의 기별'이 '쾅'하고 가슴에 울리었습니다.

  다시 '사랑'의 메모장을 연다. '시선'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강'이라는 단어도 적혀 있다. '시선'을 적은 날은 봄이었고, '강'을 적은 날은 가을이었다. 봄에서 가을 사이에는 아무런 메모도 없었다. 메모가 없는 날들이 편안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시선' 밑에는 '건너가기'라고 적혀 있고, '강' 밑에는 또 '혈관'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농수로'도 있고, '링거주사'도 보인다. 불쌍해서 버리고 싶은 단어들인데, 버려지지가 않는다.
  내가 당신과 마주앉아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당신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서 나를 바라보았고, 당신의 시선이 내얼굴에 닿았다. 당신의 시선은 내 얼굴을 뚫고 들어와 몸속으로 스미는 듯했고,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나의 목소리에 이끌려, 건너와서 내게 닿는 당신의 시선에 경악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부름으로 당신에게 건너가고 그 부름에 응답하는 당신의 시선이 내게 와 닿을 때, 나는 바다와 내륙 하천 사이의 거리와, 나와 코끼리 발바닥 사이의 시간과 공간이 일시에 소멸하는 환각을 느꼈다.

(p. 19)

  내 빈곤한 '사랑'의 메모장은 거기서 끝나 있다. 더 이상의 단어는 적혀 있지 않다. '관능'이라고 연필로 썻다가 지워버린 흔적이 있다. 아마도, 닿아지지 않는 관느의 슬픔으로 그 글자들을 지웠을 것이다. 너의 관능과 나의 관능 사이의 거리를 들여다 보면서 그 두 글자를 지우개로 뭉개버렸을 것이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p. 20~21)


  자신이 살고 있는 일산의 곡릉천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쓰여진 그의 깨달음은 세속적 사랑을 넘어서는 것이겠지만, 그게 깊이가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진실의 핵심만은 다가오는 것이어서,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속수무책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것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바다의 기별'을 읽고 유년시절의 소방관과 관련된 '무사한 나날들'을 읽고, 벽초의 <임꺽정>과 관련된 '칠장사 기행'을 읽고 '말'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인 '글과 몸과 해금'을 읽고 '박경리'선생님과 관련된 기억의 글 한 자락을 읽고 하며 나가가다 그가 강연했던 원고라는 '회상'과 '말과 사물'을 만나서야 그 문체의 실체를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요즘 신문이나 저널을 읽기가 너무 어려워요. 왜냐하면 그 언어가, 이 사회적 담론이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에,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이 사회의 지배적 언론과 담론들이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 거예요. 그걸 뒤죽박죽으로 말을 하니까 이런 언어는 인간의 소통에 기여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이런 언어가 횡행할수록 인간 사이에는 소통이 아니라 단절이 심화되는 것이고 이 단절이 지금은 거의 다 완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p. 134)

  신념의 언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자기 주변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태도입니다. 젊은이들은 자기 주변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힘이 너무 부족해요. 우리 젊은이들은 자기 주변과 세계를 정서적으로 인식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세계를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던 아이들이 자라면 그 아이는 대개 그 세계를 이념적으로 이해하는 그런 인간이 되어버리더군요.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언어의 훈련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소설을 쓰는 사람도 이 세계를 과학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걸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것이죠.....
나는 내가 쓰는 언어가,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아주 명석한 사실에 입각한 과학성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이루어내기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p. 149~150)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였기에 그의 글들은 정서적이기 보다는 사실적인 것에 더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보다 유려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보다 이성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학인으로써 문학을 창작하는 사람이 문학적인 요소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겠죠.
  그가 생각하는 '명석한 언어'의 세계라는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언어와 별개의 것은 아닐테니지만 그만큼 고민하고 깊이있게 단어들을 선택하고 배열하고 '조사'의 쓰임에 따라 달라지는 말의 깊이와 뜻에 집착했던 결과였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칼의 노래>를 쓸 때, '하루 글을 쓰고 나면 몸이 버거워 이틀을 쉬었다'고 말했던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튼,
  이 한 권의 책만을 가지고 '김훈'의 모든 것을 평가하고 재단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그러한 재주도 또한 저에게는 전혀 없는 만큼,
  이제까지 재미없게만 받아들여졌고, 왜 그렇게들 좋다고들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김훈'의 글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의의가 있고요.

  아직 '김훈'을 접해보지 않은 분들이 가볍게 그의 글들을 접해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말한 한 권의 책으로서의 가치는 좀 떨어지는 편이긴 하지만,
  '김훈'을 좋아하는 분들이시라면 아껴서 읽고 싶은 책이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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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버제로 2008/12/17 06:5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는 칼의 노래 좋아해요.
    이유는 뭐라고 하기가 힘든데. 여기 나와서 처음 읽은 한국 소설이었고
    정말 5-6번은 읽은거 같아요. 더 많이 읽었을수도 있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가는 이순신장군에게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을때라 그랬을수도 있고.

    바다의 기별. 궁금하긴 하군요!!ㅋ

    • 차이와결여 2008/12/17 07:20  address  modify / delete

      많은 분들이 좋다고 하셨으니까요..

      모든 게 다 그렇듯,
      기대가 크면 실망하기 쉬운 법인데, 제가 아마 그때, 좀 그런 상황이었나 봅니다. ^^

      그곳에서 처음 읽으신 것이었다니, 남다른 느낌이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요새는 외롭지 않으시죠??
      힘내세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