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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더 쎄임 문> - 한국 공식 포스터



When : 2008년 10월 18일 19시00분
Where : CGV (오리)
(★★★☆)

  멕시코에서 날아온 '엄마 찾아 삼만리'.
  주인공 '카를리토스'역의 '아드리안 알론소'의 표정연기가 압권인 영화입니다.

  신기하게도, 분명
  '21C 폭스 써치라이트'에서 제작한 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화가 스페인어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우리에게는 스페인어든, 영어든, 불어든 뉘앙스의 차이만 있을 뿐, 자막을 통해 대부분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지라 별 차이가 없겠지만,
  단지 자막을 읽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외국영화가 흥행이 어렵다는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신기하달 수밖에요.

  암튼, 나오는 사람들도 거의 95% 이상이 히스패닉 계 혹은 멕시코인이구요. 영화에 흐르는 정서 자체도 멕시코에서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이기 때문에, 미국과 멕시코의 합작영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폭스 써치라이트'는 제작비만 부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암튼,
  멕시코에서 할머니와 둘이서 살아가는 9살 소년 '카를리토스(아드리안 알론소)'는 일요일 10시만 되면 집근처 공중전화로 갑니다. 돈을 벌기 위해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미국에 들어가 있는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전화를 받는 '카를리토스'는 엄마 '로자리오(케이트 델 까스딜로)'에게 뗑깡을 부리듯 언제 데리러 올거냐고 물어봅니다. 엄마도 나름대로 영주권을 얻기위해 일을 하며 짬짬히 공부를 하고 있지만, 영주권 취득은 어렵기만 하고, 딱히 정해진 일자를 말해줄 수도 없는 마음은 찢어질 듯 합니다. 
  이윽고 언제나 그렇듯 엄마가 전화하고 있는 곳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하는 '카를리토스'. 엄마는 매주 일요일 '도미노 피자'가게가 있고, 옆에 '빨래방'있고, '벽화'가 보이고, '파티 용품점'이 보이는 버스정류장 옆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이미 '카를리토스'도 알고 있지만, 언젠 물어보는 절차였습니다.
  그러던 중, 화요일 아침 갑작스럽게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버린 '카를리토스'는 틈틈히 모아 둔 엄마가 보내준 돈을 챙겨 엄마를 찾아 미국으로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카를리토스'가 가는 길은 험난한 여정의 연속입니다.
  국경검문소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혀, 자칫 팔려갈 뻔도 하지만, 언제나 좋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난관을 헤치고 조금씩 엄마에게 다가게되죠.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엔리케(유제니오 데베즈)'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줍니다. 어쩌면, 세상살이를 하나도 알지 못했던 9살짜리 소년 '카를리토스'에게 세상을 알려주고, 세상에서 보호해주는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엔리케'가 아닌가 하는데요.
  '엔리케'스스로도 '카를리토스'를 만나면서 많은 부분에서 변하기 때문에,
  넓게 본다면, 이 영화는 '엔리케'와 '카를리토스'의 로드 무비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영화의 많은 재미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바로 이 둘이 서로를 변화시켜 서로 닮아가는 그런 부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의 경우에는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는 주인공인 '카를리토스'가 아니라 '엔리케'였습니다.

  여튼,
  우여곡절과 함께, 엄마를 찾아간다는 내용은 당연히 눈물샘을 자극하는 그런 영화임에 틀림없고, 더군다나 가족들이 같이 봐도 좋을 만큼 건전한 내용들로만 가득한 영화인데,
  저는 왠지 영화가 슬프기 않았습니다.
  (딱 한 부분 눈물이 글썽여진 곳이 있었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이야기는 못하겠고요.. '엔리케'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이 영화에는 약자로서의 멕시칸들의 아픔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단지,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고, 차를 빼앗기고, 곤봉으로 맞고, 수갑이 채워지는데도,
  영화에서 이들은 아무도 흥분하거나 항의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렇게 정해져있는 것이라는 양, 도망가고, 도망가다 잡히고, 또 도망치고를 숙명처럼 반복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멍한 기분이 들고,
  '왜 저들은 한 마디 말도 안하는 걸까, 왜 저리도 미국에 오지 못해서 안달인 걸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머리로는 다 알고 있습니다.
  피폐해진 경제 상황으로 인해 자국에서는 더이상의 일자리를 찾을 수 없고, 달러에 비해 가치가 너무 낮은 '페소'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자유'는 소중한 것이고,
  그런 신체의 자유가 침해를 당하는데도 아무말 못하는 약자의 설움이 느껴져서,
  '카를리토스'의 아픔도 그 사회적 아픔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순수하게
  '모정의 그리움'이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극복되어야할 슬픔'이라는 굉장히 삭막한 느낌으로 영화를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재미도 있고 깔끔합니다.
  영화 보는 내내 눈물에 신경이 쓰여 주위를 훔쳐 봤더니, 몇 몇 분들이 우셨던 걸로 봐서 나름 최루성도 검증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머리 아프게 보지 마시고,
  그냥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보신다면 똘망똘망한 주인공의 얼굴과 표정연기에 감탄해마지않을 영화.
  볼거 다 보시고 더이상 볼게 없으시다면 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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