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의 계곡> 포스터
* 2010년 01월 31일 20시 00분
* 필름포럼(신촌)
(★★★★★)
올해 처음 보는 영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처음 포스팅을 하는 영화가 별 5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영화라는 것이 매우 즐거운 차이와 결여 입니다.
개봉한지는 좀 되었지만, 너무나 금방 내려가 버려서 아쉬웠던 차에 시간이 여유가 생겼고, 마침 '필름포럼'에서 상영을 하고 있어서 예매도 하지 않고 출발을 했었더랬습니다.
'필름포럼'에서 영화를 관람한 것이 몇차례 되긴 하지만, 한 번도 표가 없었던 적이 없었고, 외려 관람 인원도 10명이 넘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한 댓 명쯤 같이 영화를 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왠걸요..
오늘은 덜렁 저 혼자 였습니다.
더군다나, 마지막 타임이었던 관계로, 카운터 보시는 분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전기료도 안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관객이 한 명이라도 상영을 해야하는 것이 맞는 것이긴 하지만, 이처럼 좋은 영화를 상영해주는 곳에 도움이 되려면, 앞으로는 좀 이른 시간에 찾아와서 몇 사람이라도 보는데 껴서 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암튼,
<엘라의 계곡>은 제가 보고 있는 시사주간지의 영화평론가 '김세윤'이 적극 추천하기도 한 영화입니다. 이분의 추천작이 제 영화 취향과 너무나 잘 맞아서, 추천한 영화치고 실망하는 법이 없었기에 주저없이 선택한 영화였지요. (얼마 전에는 또 하나의 추천작 <페어 러브>도 보았는데, 역시나 참 좋은 영화였다는...)
영화는 트럭 운전사를 하고 있는 '행크(토미 리 존스)'에게 전화가 걸려오면서 시작합니다. '행크'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 했던 퇴역군인으로 아직까지도 군인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면서, 그의 두 아들도 모두 군인이 되기를 바랐던 인물입니다. 착실했던 아들들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모두 군인이 되었고, 그중 둘째 '데이빗'이 이라크 전쟁에 파병되어 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아들이 임무를 마치고 미국에 돌아와 특박을 나갔다가 복귀를 하지 않았다는 전화였지요.
아들의 행방불명 소식을 믿을 수 없었던 '행크'는 직접 아들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내부반에 가서 아들의 소지품을 찾아보기도 하고, 핸드폰 전화번호 목록에 남아있던 TD라는 클럽을 둘러보기도 하고, 아들의 전우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눠보지만 특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던 '행크'는 경찰서를 찾아가 아들의 카드 사용기록을 알아보려 하지만, 군인관련 사건은 헌병대 소속이라며 외면하는 여형사 '애밀리(샤를리즈 태론)'의 시선만 받고 돌아옵게 되지요.
그런데 마침 그 지역에서 토막 살인 시체가 발견되고, 그 사체가 '행크'의 아들 '데이빗'의 것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군과 경찰의 갈등 속에 흐려지는 진실을 밝히고자 '애밀리'와 '행크'는 사건을 함께 파헤치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서서히 드러나는 '이라크 전쟁'의 실상과 참전군인들의 정신적인 피해, 그리고 조국에 충성했던 '행크'의 가치관의 혼란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진행되는데요..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은 아버지의 애타는 부정
약간 범죄 수사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입니다만,
일단은 영화의 서두에도 밝히듯이 실제 사건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내용이라는 것이 영화를 쉽게 보지 못하게 만들고요.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여러가지의 시선들 중에,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면서 직접적인 당사자인 미국인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에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거나, 전쟁의 비인간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미스터리를 파헤쳐 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와 사건을 감출 수밖에 없는 체제로서의 국가와 군이라는 구조 그리고, 살인사건의 근본 원인이 되는 '전쟁'이라는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상황을 은연 중에 드러냄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지금 미국에서 하고 있는 많은 전쟁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래간만에 감동적인 영화를 보아서 그런건지, 사실적인 영화를 보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여러 가지의 생각을 해주는 영화였는데요.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감독 '폴 해기스'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큰 공을 들였을 것 같다는 점입니다.
일단은,
나이가 들면서 거의 강인한 미국의 아버지와 같은 이미지의 연기를 하고 있는 '토미 리 존스'를 주인공으로 서서히 그의 가치관과 신념이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그러하거니와 미국에서는 결코 좋아라하지 않을 내용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그렇고, 처음에 국가에 대한 '행크'의 신념을 보여주고자 등장했던 성조기가 맨 마지막에는 거꾸로 달리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상징적이었습니다.
잠깐이지만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는 '수잔 서렌든'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아픈 두 장면은 아들의 죽음을 아내인 '조안(수잔 서렌든)'에게 전화로 전하는 장면과 '애밀리'를 찾아왔던 한 여인의 죽음인데요. 배우들의 연기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주저앉아서 울음을 참지 못하는 아내의 슬픔을 보여주는 장면을 위에서 잡아내며 방안에 흐트러진 사탕들을 보여주는 장면도 세심하게 포착한 장면인 것 같고, 처음에는 별스럽지 않은 장면인 줄 알았던 '애밀리'와 '한 여자'의 만남이 나중에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는 것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앞에서 나온 모든 장면은 결말을 위하여 예비해 둔 것'이라는 형식주의 이론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여튼,
맘 같아서는 '마이클 무어'처럼 속시원하게 대놓고 전쟁을 반대하는 발언을 좀 심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영화와 다큐멘터리는 다른 것이고,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정치 · 경제적 관점에서 다룬 이라크 전쟁이라면,
이 영화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다룬 이라크 전쟁이라고 볼 수 있으니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아들 '데이빗'의 전우가 담배를 피우면서 하는 한 마디.
'모든 게 엉망이죠?'
라는 말 속에 모든 것이 함의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다른 '데이빗'에게 '다윗'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크' 엘라의 계곡은 바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의 배경
'토미 리 존스'와 '수잔 서렌든'의 연기는 역시 베테랑 답게 어디 하나 흠잡을데가 없습니다.
아들의 사체를 확인하며 절망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보다 잘 할 배우는 없을 것 같고,
아들의 죽음을 밝히지 못해 새벽에 일어나 침대에 걸터 앉은 아버지의 고뇌의 등을 그보다 잘 표현할 배우는 없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저는 그 동안 유심히 지켜보지 않았던 형사 '애밀리'역의 '샤를리즈 테론'도 너무나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네요.
모두다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어서, 영화의 50점은 그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튼,
뜻깊은 영화를 뜻깊은 시간에, 그것도 영화관에 혼자 덜렁 앉아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론 너무나 만족스럽고, 제발 이 땅위에서 전쟁과 같은 일들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요...
옷차림새까지 반할만한 샤를리즈 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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