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 없는 5일> 메인 포스터
* 2010년 11월 03일 수요일 20시 35분
* CGV 오리
(★★★★☆)
가끔씩 아이들과 '사랑'과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지금의 저의 생각으로는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지만, 아이들의 순수하고 순결한 마음으로는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죠.
예를 들면 '불륜' 혹은 '바람핀다는 것'.
제가 결혼을 한 부부일지라도, 결혼한 뒤에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거나, 남편, 혹은 아내 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라기 보다는 목소리 큰 아이들)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절대 당위의 개념으로 이야기 합니다.
제가 아무리 '만약'이라고, '혹시라도' 라고 강조해도, 아이들은 '무조건 그럴 수는 없는 것'이라고, 범죄라고 이야기 하죠..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고 이 어린 것들...' 싶다가도, 저도 그 나이 때에는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르고, 그게 바로 순수함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부럽기도 합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현실적이로만, 이해타산적으로만 생각하게 된 걸까요...
제게도 첫사랑이 있었고, 그 때는 당연히 순수했었을 겁니다..(아닌가..ㅎ)
그 때는 '사랑한다면' 끝까지 곁에 있어주는 거라고, 무조건 믿는 것이고, 어디든 함께 하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어긋나고 싸우고, 나이를 먹고, 직장을 다니고 자주못만나고, 또 헤어지고 하면서 그런 온 순간을 함께해줄 거라는 다짐은 마음으로 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언제라도 네 곁에 있을게." 따위의 거짓말은 함부로 약속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런데, 이혼을 한 부부가 30년 동안을 바로 옆 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죽은 '노라'의 집에서 '노라'의 삶을 깨닫게 되는 '호세'
여기 그런 부부가 있습니다.
'호세'와 '노라'는 젊었을 시절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이였고, 둘 사이에 아이도 있었지만, '노라'가 오래전부터 앓아왔던 정신질환으로 이혼한지 30년이나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창만 열면 바라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30년을 살았죠. '호세'는 아이를 맡고 있는 '노라'를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노라'가 앓고 있던 병은 때때로 가출을 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살을 시도하게도 하는 '우울증'.
그녀를 사랑했지만, 병원치료도 거부하는 그녀를 볼 수가 없었던 '호세'는 '노라'와 이혼한 뒤 항상 그녀를 퉁명스럽게 대했고, 모든 잘못은 '노라'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녀가 자살을 하고 말았죠. 이제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아무도 그녀가 자살할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던터라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노라'의 죽음을 계기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집안일을 봐주었던 '파비아나', 아들 며느리 내외, 랍비가 보낸 유대교인, 주치의 '누르코', 처제 '리아'까지... 하지만 우연히 발견하게된 사진 한 장을 통해 '노라'의 바람을 의심하게된 '호세'는 슬퍼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의 부정을 확인해주는 확실한 물증을 찾기 위해서 온 집안을 뒤지게 되는데....
영화는 처음부터 단서를 하나 던져 놓고 시작합니다. 마치 미스터리극인 것처럼 진실찾기에 몰두하게 만들죠. 물론 곳곳에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유머와 유대교 장례문화를 둘러싼 소동은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사건들도 '호세'의 진실찾기 만큼 커다란 소동은 아닙니다. 외려 작은 집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인지라 다소 지루해질 수 있고 늘어질 수 있는 이야기에 재미를 부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노라'의 죽음을 통해 모이게된 사람들 유월절 요리를 준비합니다.
결국, <노라 없는 5일>을 보는 관객들은 영화의 맨 처음 단정하게 차려지는 10인용 식탁의 테이블 세팅을 보고 '노라'의 세심한 마지막 선물에 감탄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사진 한 장을 통해서 '노라'가 정말 '호세'를 사랑했을까?의 의문으로 옮겨가게 되고 나아가 도대체 '노라'는 무슨 생각으로? 라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는 33살의 여성 감독 '마리아나 체닐로'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감독의 조부모들은 이혼한 채 바로 옆에 붙어 사셨고, 할머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사진을 액자에 끼워서 집안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이 영화를 사랑은 '배려'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머리가 나빠서인지 아니면 남자의 입장으로만 봐서 그런건지 '노라'의 보다는 '호세'의 행동에 집중하여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저렇게 심통맞은 노인네가 어디있담."
"30년이나 이별하고 살았다면서 아직도 미움이 남아 있단 말인가?"
"도대체가 삐뚤어진 양반이구만.."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떻게든 아내를 빨리 장사지내려하고, 유대교 신자인 아내의 장례를 기독교 묘지에 묻으려하질 않나, 유대교 랍비에게 모욕을 주어 보내버리지 않나, 도대체 아이와 같은 행동을 하면서 모든 잘못을 죽은 아내에게 떠넘겨 버리려고 하는 '호세'의 모습이 철부지 같기만 했죠.
하지만, 결국엔 그 모든 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흔히 어린 남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여자애를 괴롭히듯, 애정이 없으면 장난도 치지 않듯, '호세'의 미움은 자신도 모르는 또다른 사랑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죠.
영화는 관객들에게 어떤 생각을 주입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여러분은 한번 감상해주세요' 정도의 표현만 하죠.
영화의 내용도, 시종일관 작은 소동들의 자잘한 웃음과 함께 심각하지 않게 진행됩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결말을 맞았을 때, 관객들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수수깨끼의 정답을 엿보게 된 것 마냥, 무릎을 치고 감탄사를 연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잔잔한 결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보기 드물게 서정적인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라'의 세심한 배려의 한 장면 유월절 요리 재료들을 준비하고 조리법을 적어 두었군요.. 집요해...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만드는 수많은 관계가 있고, 또 그만큼의 사랑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도 한 마디로 정의 될 수는 없는 것이겠죠.
사랑을 '배려'라고, 혹은 '희생'이라고, 혹은 '헌신'이라고 아니면 또다른 말로 정의한다고 해도 모두 틀릴 수도 있고, 모두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정의의 이면에는 어두운 가슴 한 쪽에 밝은 햇살이 비치듯 따스해져 오는 느낌이라는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 합니다.
<노라 없는 5일>은 바로 그 따스함에 관한 영화이고, 그 따스함을 제대로 표현해낸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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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영화일꺼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건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 요즘 많이 합니다.
정말 점점 더 모르겠네요...
사랑이 뭔지.
사랑은.. 사랑인 거죠.. ㅎㅎ
영화 재미나요.. ^^
기회되시면 꼭 보셨음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