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개봉당시 전단지



* 2009년 0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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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애 최고의 영화 중 한 편!

  이 영화를 언제 처음 봤던 것인지는 역시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도 대학교 때 였으리라고 짐작됩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대학교에 입학하던 1995년은,
  그 1~2년 전부터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던 노래방과 그 노래방의 여파로 또 생겨나던 비디오방이 처음 모습을 보이던 그런 시절이었지요.

  지금이야, PC방도 있고, DVD방도 있고, 찜질방도 있고 참으로 다양한 '방' 들이 존재하지만 당시만 해도 '노래방', '비디오방'은 정말이지 놀거리 없던 10대, 20들에게 오아시스와도 같던 곳이었습니다.

  아~~ 이야기가 또 다른 곳으로 새는 것 같긴 하지만, 그 시절을 떠올려보니, 처음으로 셀프서비스의 커피 전문점들이 등장하기도 했었고, 지금은 중년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나 갈 것 같은 콜라텍의 전신인 '락카페' 같은 문화들도 있었습니다. 하나 하나 이야기 하자면 또 끝이 없을 것이므로, 셀프서비스 커피 전문점과 '락카페'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여튼,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학교 앞에 몇 군데의 비디오방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었는데, 지금이야 멀티 스크린에 프로젝션으로 쏴서 정말 작은 영화관 처럼 만들어 놓았지만..(사실 안가본지 꽤 오래 되어서 지금은 어떤지 잘 모름.) 초창기엔 평면TV도 아닌 이십 몇인치 쯤 되는 브라운관에 헤드폰을 쓰고 겨우 칸막이만 되어 있는 공간에서 사우나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의자에 앉아 말그대로 비디오를 보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러던 비디오방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여서 좀 지난 뒤에 생긴 비디오 방은 푹신한 쇼파에 큰 멀티비전의 시설을 갖춘 고급 비디오방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것도 시설이라고 값이 조금 비쌌지요.
  그렇게, 노래방처럼 우후죽순식으로 퍼지던 비디오방들도 한정된 수요에 경쟁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파격할인 행진을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혼자오면 3천원 둘이 오면 5천원, 테이프 두 개짜리는 7천원 이러던 것들이, 무조건 기본 2천원에 한 명 추가에 천원씩, 이렇게 바뀌게 되어서 그야말로 거저먹기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과다출혈 경쟁으로 인한 문화적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면서 공강시간이나 심심할 때면 아무렇지 않게 혼자 비디오방을 찾아가 2천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의 최대의 호사는
  주머니에 있는 오천원짜리 한장을 들고 비디오방 아래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카프리' 두 병을 사고, 안주로 '포카칩'을 산 다음 남은돈 이천원으로 비디오방에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6.25사변 때의 일이야.. 싶은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니까요...진짜 그 때가 그립습니다.

  여튼, 그렇게 본 영화들이 한 해에 100편도 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저도 연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과 본 영화들을 빼곡히 기록해 놓은 다이어리가 있었거든요.. 대충 세어봤더니 거의 100편에 육박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게 1학년 때...

  아마도 어린 시절 어머니 아버지 무릎을 베고 봤던 '주말의 명화', '명화 극장'과 더불어 그 비디오방 들이 제 얼마 안되는 영화적 소양의 풍부한 자양분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고,
  당시엔 그렇게 영화를 보다 보니, 각종 잡지 특집란에 실려 있는 '숨겨진 명작 100선', '여름에 꼭 봐야할 비디오 50' 이런 것들의 리스트를 지워가며 찾아보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말이죠..

  여튼,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도 그때 봤던 영화 중에 한 편입니다.
  우연히 골라보게 되었지만, 감명해마지 않았던, 보고 나서 한동안 영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공책마다 내 이름 대신 'Fried Green Tomatoes At the Whistle Stop Cafe' 라고 써놓고 다녔을 정도이니까요.

'잇지'의 자상하던 오빠 '버디 드레스굿'


  영화는 쉽게 말해 안이야기와 밖이야기가 있는 액자식구성입니다.
  밖이야기는 현재를 배경으로, 갈수록 늘어가는 체중과 권태로운 부부생활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하루하루에 지쳐가는 맘씨 착한 아줌마 '에블린(케시베이츠)'이 숙모님을 만나러 간 요양원에서 '니니(제시카 텐디)'할머니를 만나면서 시작합니다. '니니' 할머니는 숙모님께 외면받고 혼자 슬퍼하고 있는 '에블린'에게 다가와서 다짜고짜 자신의 젊었을 적의 이야기 '휘슬스탑 카페'가 있던 작은 마을과 그 마을에 살던 '잇지(메리 스튜어트 메스터슨)''루스(메리 루이스 파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게 되지요. 그 이야기는 대충 이렇습니다.

  '니니'가 살던 마을에는 '드레스굿' 집안이 있었는데 그 집안의 막내 꼬마인 '잇지'는 말괄량이 꼬마 숙녀였습니다. 그런 '잇지'를 다룰 수 있는 것은 그의 오빠 '버디(크리스 오도넬)'였지요. '잇지'는 오빠를 무척이나 따랐습니다. 잘생기고, 유쾌하고, 자상하던 오빠 '버디'는 이러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잇지'를 보살펴 줬고, 당연히 '잇지'도 그런 오빠를 잘 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오빠가 열차에 치어 죽게 되고, 그 광경을 지켜 본 '잇지'와 오빠가 사랑하던 여자 '루스'는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결국 '루스'는 잠시 마을을 떠나게되고, '잇지'는 방황 속의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보다 못한 '잇지'의 부모님들이 '루스'에게 '잇지'를 방황 속에서 건져내어 줄 것을 부탁하게 되고 '루스'는 마을로 돌아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잇지'와 '루스'는 다시 마음을 열게 되었지만, '루스'는 이미 결혼할 사람이 정해져있었고, 다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게 되지요. 딱히 맘에 들진 않았지만, '루스'의 행복을 바랐던 '잇지'는 그녀의 결혼을 멀리서 축복해 주고 다시 자기만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심부름으로 '루스'를 찾아간 '잇지'는 '루스'의 삶이 그렇게 행복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남편이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잇지'는 '루스'를 그 곳에서 데려나오게 되고, 기차길 옆에서 '휘슬 스탑'이라는 카페를 열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스틸 컷

자상하고 아름다운 여인 '루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스틸 컷

꿀벌의 연인, 토완다 '잇지'


  끝은 아닌데요. 다 이야기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요.
  이런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고, '잇지'와 '루스'의 이야기에 빠지게 된 '에블린'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자주 '니니' 할머니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띄엄띄엄 전해집니다.
  딱 보시면 아시겠지만, '잇지'와 '루스'의 이야기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면서 살아가는 두 여인에 대한 이야기 이지요. 언제나 씩씩하고 용감한 '잇지'와 연약한듯 강한 외유내강형의 '루스'가 서로 의지하고 서로 닮아가면서 당차게 살아가는 이야기 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 말고 아직 말씀드리지 않은 후반부에 또다른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힌트를 드리자면 '루스'의 남편이 큰 거 한 방을 터트리는데요. 그 이야기에는 또 말못할 휴머니즘을 깔고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50년 전의 이야기를 마치 어제의 일처럼 이야기하면서 삶의 마지막까지 행복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 같은 '니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에블린'도 서서히 변해갑니다.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그런 자신감을 기르기 위해서 그 전까지는 하지 못했던 다이어트도 하고 운동도 하고요. 이제까지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삶의 주도권을 자신에게 옮겨오게 합니다.

  아마 영화를 보시게 된다면 '잇지'와 '루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서히 변해가는 '에블린'처럼 영화를 보는 여러분의 마음도 조금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 느끼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야기 안에서 펼쳐지는 '잇지'와 '루스'의 우정과 이야기 밖의 '니니'와 '에블린'의 우정 모두가 아름답게 느껴지실 겁니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스틸 컷

이젠 폐허가 된 휘슬스탑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스틸 컷

번성하던 때의 휘슬스탑


  이 영화를 정의하는 말들은 많이 있습니다.
  '여성 영화'라고 하기도 하고, 개봉했던 1991년이 우리나라에선 한창 페미니즘이 유행하던 시기라, '페미니즘 영화'라고 하기도 하지요. 뭐 딴에는 저도 이 영화를 본 후에 <델마와 루이스> 같은 여성들이 주인공인 영화들을 챙겨보기도 했으니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분명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더욱 공감하고, 통쾌해하고, 이해할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정에, 사랑에, 휴머니즘에 남자와 여자가 어디있겠습니까. 보고 좋으면 그만인 것이지요.

  저는 갑갑하거나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면, 이 영화가 생각나고는 했습니다.
  일단은,
  사람들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다른 걱정은 하지 않더라도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 있었던 영화 속의 시절이 부럽기도 하고요. 그 두 인물들의 꾸밈없는 삶이 보기 좋기도 하고요. 또 '에블린'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쇼핑센터 주차장에서 '토완다!'을 외치면서 통쾌하게 차를 몰던 그 장면이 보고 싶기도 해서요.(무슨 장면인지 궁금하시죠?)
그렇게 제 마음 속에서는 100점 만점에 200점을 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에블린'역의 '케시베이츠'는 정말 자신 그대로를 연기한 것과 같이 완벽하고, '니니'역의 '제시카 텐디'여사야, <드라이빙 미스데이지>를 능가하는 정말 멋진 연기를 보여주십니다.
  '잇지'역의 '메리 스튜어트 메스터슨'과 '루스'역의 '메리 루이스 파커'도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개성 강한 두 역할을 아주 멋지게 연기해 주어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살아있는 네 명의 인물들을 연기가 아닌 실제로 보는 듯 했는데요. 아마, 그것은 제가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는 이미 원작 소설이 퓰리처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었던 것이라니, 스토리는 검증된 것이고요. 어떤 평을 읽어보니, '잇지'와 '루스'가 '루스'의 아이를 키우면서 한 집에서 살아가는 설정을 통해 동성애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고는 하는데, 원작이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영화에서는 그냥 단순한 여성들 사이의 우정이라는 생각입니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스틸 컷

크리스마스 기념 염색을 한 '니니'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스틸 컷

자신감을 너무 많이 회복한 '에블린'



  여튼,
  누구라도,
  좀 답답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거나, 내가 왜 이렇게 사는 지 모르겠다거나, 아니면 그냥 볼 영화가 없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혹은 어떤 경우에 보더라도 절대 실망할 영화는 아니니까요.
  아직 안 보신 분은 가까운 대여점을 찾으셔서 꼭 보시길 바랍니다.

  모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보니, DVD도 특가 세일을 하던데요. 2,900원인가...
  직접 구입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긴 글을 주절거렸는데요. 끝까지 읽어주셨다면 참으로 감사합니다.


  덧붙임 : 보신분들에게 질문 하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니니' 할머니가 '잇지' 인 것 같은데요. 맞나요?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스틸 컷

'루스'와 '잇지'의 행복하던 한 때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스틸 컷

이게 실제의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잇지의 개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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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성* 2009/02/24 15:5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정말 예전에 주말의 명화 같은데서 몇 번 했던 거 같은데 안 봤나봐... 기억이 안 나네...
    꼭 한번 보고싶은걸... 주말의 명화에서 또 안하려나... ㅋㅋ
    근데 왜 오빠가 답답한 일이 있으신가?
    어제 오늘 글이 우울모드네...
    이제 시작을 앞두고 부담감땜에 그러신건가?
    뭔진 몰라도 급하지 않고 항상 여유로운 오빠 모습이 젤 멋진 거 알지??? ㅎㅎ

    • 차이와결여 2009/02/25 14:56  address  modify / delete

      오.. 재밌는데. 왜 안봤을까나..ㅋㅋ

      나중에 기회되면 보시길..

      그리고, 쉿! 우울하다고 얘기하면 정말 우울해져..^^

  2. hoooook 2009/04/24 11:0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제 생애 최고의 영화로 꼽습니다.
    몇 년 뒤 '흐르는 강물처럼'이 개봉 됐을 때 '후라이드 그린토마토'가 많이 생각 났었어요..

    요즘 대한항공 광고 중에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하면서 미국 남부 관광상품을 광고하는데 후라이드 그린토마토 얘기가 나오는데...요즘 들어 다시 생각나는 영화예요^^;;

    • 차이와결여 2009/04/24 20:08  address  modify / delete

      와우!

      같은 취향을 가지신 분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hoooook'님 ^^

      아.. 요새 대한항공 광고에서 그랬군요.. 저는 슬쩍 지나쳐서 봐서 몰랐어요 ^^

      얼마 전에 다시 봤는데, 역시나 재밌더라구요.

      시간 나실 때, 다시 한 번 보시면 그 때는 못봤던 새로운 면들을 보실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더 좋아하시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

      댓글 감사드려요~~

  3. jihooooomi 2009/10/23 09:3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영화의 많은 비밀들이 밝혀지는데요. 거기서 니니할머니가 잇지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 차이와결여 2009/10/30 00:04  address  modify / delete

      방문을 감사드려요. 'jihooooomi'님.

      그렇군요. 맨 마지막에 상징적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냥 그걸 믿으면 되는 거였군요. ^^

  4. 비밀방문자 2009/10/23 09:4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차이와결여 2009/10/30 00:06  address  modify / delete

      예예, 그 부분은 이 영화의 반전이기도 한 부분이니까, 비교적 자세히 설명이 되어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슬쩍 보면 모르는 부분이기도 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고마워요 'jihoooooomi'님 :)

  5. 잇지 2010/01/06 05:0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영화에서는 니니가 잇지인 것처럼 나오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니니와 잇지는 전혀다른 인물입니다.
    원작도 참 재밌었는데,
    구할 수 있다면 강추입니다.

    • 차이와결여 2010/01/08 13:41  address  modify / delete

      아.. 그렇군요.. 저는 영화에서만 보아서,

      영화의 결말이 참 절묘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소설은 다르군요... 소설도 찾아 읽어보고 싶습니다. ^^

      구해봐야겠어요~~ 감사해요~~